가을을 위한 커피

by 누두교주

항상 계절의 끝자락에 이르면 묵은 계절이 지겹고 다음 계절이 기다려진다. 그러니 지금쯤은 가을이 슬슬 기다려지는 때가 된 것이다. 매년 가을을 처음 만나는 방법은 달랐다. 어떤 해는 책을 사기도 했고 어떤 해는 옷을 사기도 했다. 또 어떤 해는 추석 전 성묫길에 성큼 다가온 가을을 만나기도 했다.


올해 가을 준비는 커피콩을 사기로 했다.

여름 내내 베트남 로부스타를 마시며 그 단순하고 강열 한 맛에 행복했었는데 지금은 조금 지겹다. 혼자 조용히 있고 싶은데 시끄럽게 말을 시키는 느낌이 부담스럽다. 더위에 지친 입안에 번지던 진한 쓴맛과 무지근한 떫은맛이 한약 재탕을 먹는 것처럼 지루하게 느껴지던 참이다.

새 가을에는 뽀송하고 가벼운 느낌으로 살고 싶다. 진지하고 엄숙하지 말고 경쾌하고 명랑했으면 좋겠다. 장중하고 우아하기보다 장난기 가득 찬, 자잘한 웃음이 많아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에티오피아(Ethiopa) 예가체프(Yigacheffe)를 주문했다. 나는 자두, 살구는 그 신맛이 싫어 먹지 못한다. 하지만 그 향(香)은 그윽하기 그지없다. 항상 짧은 시간 잠깐 코끝을 스치고 가는 자두 향은 경쾌하고 산뜻하며 명랑하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예가체프는 자두향, 살구향 그리고 캐모마일 향도 느낄 수 있다.

시골집 봄 사진이다. 보름이(개) 뒤로 자두꽃이 만발해 있다.


언제가 무심코 마신 커피에서 자두 향을 느낀 적이 있었다. 그래서 바리스타에게 원두 종류를 물어봤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자두꽃을 보면 예가체프가 생각난다. 하지만 자두꽃 살구꽃이 지천인 봄에 예가체프를 마시는 것은 자두 에게나 커피 에게나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다. 그대신 봄에는 자두꽃을 보고 자두 향을 맡고 가을에는 예가체프를 마시며 자두 향을 쫓는 즐거움이 더 낫지 않을끼?




에티오피아 커피는 절반 이상이 1500미터 이상의 고지대에서 수확된다고 들었다.① 지리산 노고단이 1,507 미터이니 노고단만큼 높은 곳에서 자두 향을 품고 새콤하고 경쾌한 맛을 지닌 커피콩이 맺힌 것이다. 그 녀석들과 올 가을 한철 지내는 것은 아주 근사할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해 낸 내가 무척 대견하다.

이번 주말에는 그라인더와 에스프레소 추출기를 전부 분해해 청소를 열심히 해야겠다. 말끔히 닦고 뽀송이 말린 후 꼼꼼히 다시 조립해 가을 한 철 함께 지낼 그 녀석들을 맞이할 작정이다.


식탁 곁에 붙일 새로운 메뉴도 디자인했다. 단순, 무식이 올가을의 모토(motto)인 만큼 내용과 철자법도 새 가을의 모토를 따랐다.


올 가을을 위해 내가 직접 만든 커피 메뉴이다. 단순, 무식하게 만들었다.



① 3,000미터가 넘는 곳(백두산보다 높다)에서 생산되는 커피도 있다. 하라(Harrar)라고 하는 커피이다. 내가 60세가 되는 가을날 마실 커피로 찜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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