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①라는 책을 출장길 공항에서 산 기억이 있다. 산 이유는 ‘공자는 이미 죽었는데 뭘 또 죽이나’하는 의문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정작 이 책에는 공자 이야기는 별로 나오지 않는다. 칼국수에 칼 안 들어가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런데 이번엔 ‘주자(朱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제목을 걸어 놓고 우파적 시각에서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는 논리를 산만하게, 그리고 약간은 감정적으로 나열하고 있었다.
주자도 이미 죽은 사람이다. 주자는 지지리도 못난(대부분의 중국 왕조가 그랬지만) 송(宋) 나라의 학자로 당시 송나라의 문제 해결을 위해 공자를 불러내 약(정치, 사회문제의 해결책) 팔던 사람이다.② 그런데 결과는 주자도 죽었고 송나라도 망했다.
다른 건 잘 몰라도 공자는 최소한 위선적인 삶은 살지 않았다. 예를 들어 ‘한 번 발동 걸리면 밥 먹는 것도 잊고 즐거움으로서 근심을 잊으며 늙음이 곧 닥쳐온다는 사실도 모르는 사람’③을 죽여서 나라를 살릴 수 있을까?
자기의 계획과 주장을 진솔하게 말하고 최선을 다해 실천하면 좋으련만, 스스로가 켕기는 것이 있고 구린 구석이 있으니 수천 년 전에 죽은 사람들을 소환해 포장재로 쓰는 것 아닌가? 그리고는 터진 입이라고 ‘엣 성현(聖賢)의 말씀’이라며 객관적 당위성을 담보하려는 꼼수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