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와 흑석 선생 - 齊人歸女樂

제18미자 편(第18微子篇) - 4

by 누두교주

21세기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의 법무부 장관이 “명을 거역했다”라는 표현을 공식적으로 사용한 사실이 있다. 나는 이 사람이 한문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시대를 착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깐 한 적이 있었다. 동시에 법무부 장관이 검찰 총장에게 명을 내리고, 검찰 총장은 예이~ 하고 행하는 나라인 줄은 미처 몰랐었다. (아니면 추 씨가 착각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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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법무부 장관은 다른 건 몰라도 이런 헛소리는 하지 않아 고맙다.


그런데 현직 법무부 장관이, 첼로를 연주하는 술집에, 대통령과 변호사 수십 명이랑 같이 가서 새벽까지 술을 퍼마셨다는 대정부 질문을 받은 사실이 있었다. 질문한 국회의원 겸 거대 야당 대변인은, 기본적인 사실 확인도 없이, 녹취록까지 틀어대며 작정한 듯 들이댔다. 난 그 용기에 감동했었다.

현직 법무부 장관은 질문 사실을 즉각 부정했다. 동시에 사실 확인도 없는 무책임한 대정부 질문에 질문 태도에 대해 개탄하며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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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또 다른 법무부 장관은 위 두 사람과는 결이 다른 행동양식을 보였다.


지금 중국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라는 동네 주변은, 공자 당시 노(魯) 나라였다. 공자는 54세 때, 노나라 법무부 장관(사구(司寇)라고 불렀다)을 한 적이 있었다. 그는 법무부 장관직 수행을 잘해서, 나라의 질서가 잡히고 잘 다스려졌다. 그러자 근처 제(齊) 나라에서 이를 걱정, 공자를 제거할 계책을 꾸몄다.


그 계책은 노래 잘하고 춤 잘 추는 여자(歌姬舞女) 80명과 좋은 말 120마리를 보낸 것이다. 그야말로 모란봉 예술단과 최신형 스포츠카를 무더기로 보낸 것이다. 그러자 노나라 임금은 물론, 실권자(季桓子-계환자)까지도 여기에 홀딱 빠져 3일 동안 무단결근했다.


노나라 임금이나 계환자는 공자보다 계급이 높으니, 공자가 그러지 말라고 명을 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렇다고 노래와 춤을 공연하는 데 가서, 3일 무단결근 사실을 탄핵하기엔, 노나라 정치 현실이 오늘날 대한민국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현대 중화인민공화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공자는 다른 선택을 했다.


제나라 사람들이 여자 악공들을 보내왔다. 계환자가 이를 받고서는 사흘이나 조회를 열지 않자, 공자는 노나라를 떠나갔다.①


자신의 조국인 노나라의 통치 엘리트들의 행태에 실망한 공자는 법무부 장관직을 버리고 출국해 버린 것이다.② 이것이 주류 해석이다.


그런데 과연 그랬을까? 나라가 잘못된 방향으로 간다고, 국무위원인 법무부 장관이 그냥 가버리는 게 옳은 행동일까? 결론적으로 적국(또는 경쟁 상대국)의 작전이 완벽히 성공한 것이 아닌가? 왜 아무도 공자에게 경솔하거나 무책임하다고 비판하지 않을까?




얼마 전 나는 중국의 문·무를 대표하는, 공자와 관우의 사직 행태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공자는 고기 안 준다고 삐쳐서 인수인계도 안 하고 근무지 이탈했다. 관우는 전쟁에 이기면 준다고 약속한 과부를 조조가 가로채자, 빡쳐서 어제까지의 전우를 여섯 명이나 살해하고 토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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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실을 미루어 봤을 때, 공자가 조국을 떠난 이유는 분명히 다른 곳에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공자가 그런 행동을 한 이유는 노래 잘하고 춤 잘 추는 여자(歌姬舞女) 80명과 좋은 말 120마리 중 자신에게는 하나도 나누어 주지 않은데 불만을 품을 것이다. (어쩌면 제나라에서 그것을 노리고 공자에게 주지 말라고 했을 수도 있다) 나누어 주지 않은 것은 둘째치고 공연에 초대하지도 않았다.


공자는 부인과 이혼한 홀아비 신세였다. 공자의 아버지는 70대에 10대 처녀와 세 번째 결혼을 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아직도 한창인 50대 홀아비 공자에게, 제나라 처녀 몇 명과 말 몇 필 주는 것은 매우 마땅한 일 아닌가?


그래서 공자는 목을 빼고 3일을 기다렸다. 그런데 그걸 안 줬으니 아무리 성인군자라도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고 보니, 배울 만큼 배운 현직 국회의원이자 거대 야당의 대변인이, 왜 기초적인 사실 확인도 거치지 않고 매우 무모하고 쓸데없이 강력하게 들이댔는지 이해가 됐다.


그는 첼로를 연주하는 nice한 청담동 bar에 자기만 빼고 갔다고 상상한 것이다. 그래서 열받았던 것이다. 미루어 짐작컨대 그는 첼로 마니아이며, '동백 아가씨'도 잘 부를 수 있는 사람이다. 노래방 가서 내가 잘 부르는 노래를, 내 앞에서 다른 사람이 불러 댈 때의 기분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래도 그렇지, 문제 제기는 경솔했고, 사실 확인 과정은 무책임했으며, 일의 마무리는 비겁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 울 수 없는 언행이다.


그래도 공자는 3일 동안은 참았다.



대문 사진 : 북한의 예술단이 중국에서 공연하는 모습이다. [사회주의가 좋다]라는 노래를 중국어로 부르고 있다는 자막이 보인다. 아마 제나라 여자 악공들도 노나라 말로 공연했을 것이다. 그런데 공자는 그 공연도 못 봤다. (출처;https://me2.kr/avgXI , 검색일, 2023. 02.13.)


① 김학주 역주 『논어 論語』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서울. 2009. pp.318 -319. 원문은 다음과 같다. 齊人歸女樂, 季桓子受之, 三日不朝, 孔子行.


② ibid. p.330.


③ 杨伯峻。『論語譯註』中华书局. 北京. 2019. p.191. 원문은 孔子就离职走了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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