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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도개 Sep 21. 2023

결국은 버텨야 한다

참을성 없는 사람의 이야기

이제 진짜 마지막 관문이다. 이 관문만 통과하면 나는 아름다운 피치공주를 구해 금의환향할 수 있다. 나는 소름 끼치는 날개 달린 오리와 귀여워서 죽이기 망설였던 유령도 해치웠고  대포알도 밟아가며 여기까지 왔다. 영롱한 버섯과 미치광이 별의 유혹도 뿌리치고 하수구 파이프를 타고 이리저리 헤매며 동생도 친구도 펫도 잃은 채 홀로 마지막까지 온 것이다. 이제 내가 못할 것은 없다. 이러한 자신감으로 나는 마지막 문을 활짝 열었다.


마지막 관문은 내가 상상도 못 한 것이었다. 다 때려 부실 작정으로 만반의 준비를 했건만, 쿠파는 생각보다 교활했고 내 약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눈앞에는 인덕션 위에 물이 담긴 냄비와 계란 4개가 놓여있었다. 정확히 반숙으로 삶은 계란을 만드는 것. 이게 마지막 미션이었다. 나는 등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한 번도 반숙을 성공해 본 적이 없다. 아니 반숙은커녕 완숙도 해본 적 없다. 항상 흰자가 흐물흐물할 정도에 노른자는 주르륵 흐르는 반반반반숙을 만들어 내고 마는 것이다. 나는 비빔면이 끓는 시간을 기다리지 못해 바삭바삭한 비빔면을 먹고, 밀가루 내 나는 너구리를 먹는 인간이다. 삼겹살이 익는 것도 기다리지 못해 항상 덜 익은 고기를 먹고, 얼음이 어는 것도 기다리지 못한다. 숙성 같은 건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김치도 익기 전에 다 먹어 치운다. 그런데 반숙이라니, 이 얼마나 악랄한가. 나는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계란을 집어 냄비에 넣었다. 결국은 버텨야 된다. 나는 할 수 있다.


"아니 처음부터 이렇게 했으면 우리 귀여운 오리랑 피라냐, 유령친구들이 죽을 필요가 없었잖아요. 왜 일을 어렵게 해요."

"고작 반숙도 못 만드는 놈일 줄 몰랐지. 내가 심부름센터에 쓴 돈이 얼만데 아무도 몰랐다니까. 최측근 정도 돼야 아는 거지 뭐. 누가 알겠어. 요시가 삼겹살이 익기도 전에 처먹는걸 얼마나 증오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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