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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온 오리 May 16. 2024

어린 아들이 눈물을 흘렸다. 빨리 정리하라고...

담임 선생님한테 말해 달란다. 자기 요즘 힘들다고...



"쓸게 없어."


아들의 말에 속상도 했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있는 숙제 주제에 대해 정리를 좀 해 주면 되지 않을까 싶어 나는 물었다.


"울 아들이 생각하는 가족이 누구지?"


"엄마,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근데 엄마 사촌 누나들도 가족이야?"


"가족은 가족이지. 그런데 그 가족에 대한 장점이 뭐라고 생각하는데? 장점은 어딜 같이 다닌 추억이 아니라 성격, 성향에 대한 걸 말하는 거잖아!"


"알아. 그런데 내가 요즘 힘든데, 장점이 없다는 게 아니라 뭘 써야할지 모르겠어. 쓸게 없어. 요즘 침대방에만 들어와 있는데..."


아들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나는 안아 줬다. 아들이 참고 있던 마음이 터진 거 같다.





 






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얼른 침대 방문을 닫으려 했다. 아들은 잠시 나를 쳐다보고 다녀오겠단 표정으로 거실로 나갔다. 나는 아들이 걱정돼 방 문을 꽉 닫지 못했다.

아빠한테 가까이 와서 인사하란 명령을 실행하기 위해서 아들은 남의 편이 들어 오면 드레스 룸으로 간다.

나는 하기 싫으면 안해도 된다고 말해 줬지만 아들은 하기 싫은 건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하고 싶은 것도 아니지만 아빠는 그냥 아빠니까 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아빠랑 굳이 같이 놀고 싶지는 않단다. 아빠가 "뭐했어?, "왜 아빠랑 안 놀아?"라고 말 거는 것도 조금은 불편하긴 하단다.


인사를 하고 나면 아들은 얼른 침대 방으로 들어와 방 문을 닫는다. 아들과 나는 거실에서 리모컨을 손에 들고 소파에 다리를 뻗고 누워서 TV를 보는, '내가 이 집의 가장이다.'라고 과시하듯 여전히 자기 중심적이고 강압적인 행동으로 불편함을 주는 남의 편을 피해 칩거 아닌 칩거에 들어 간다. 남의 편과 부딪히기 싫어 패밀리 침대가 놓인 침대 방 안에서 방문 꼭 닫고 나가지 않는다.

날은 더워지고 있고, 답답하고 불편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더구나 어린 아들은 침대 방 안에 있는 화장실을 평소에 싫어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거실 화장실로 문 열고 나가서 쓰지 않고, 침대 방안 화장실을 쓰기 시작했다.


"너는 너 하고 싶은 대로 눈치 보지 말고 편하게 다녀. 엄마 때문에 아빠 들어 오면 침대 방에 들어와 있는거야?"


"아니."


"너도 불편해서 들어와 있는 거야?"


"응."


나는 남의 편과 상간녀가 점점 더 원망스럽고 미웠다. 상간녀는 자신의 아이들은 평상시처럼 아무 영향 안 받고 생활하고 있기에 내 아들이 힘들고 불편한 것에 대해선 나 몰라라다. 지 자식들만 안 힘들게 원래대로 일상 생활 하면 된 거다.

내가 자신에게 위자료를 청구했다는 이유로 나를 돈이나 받아 먹으려는 사람 취급하는구나 싶을 정도다. 법원에 낸 답변서만 봐도 정말이지, 남의 가정을 함께 파탄내 놓고, 남의 아이를 힘들게 해 놓고, 남의 아이 눈에서 눈물 나게 해 놓고 자기 자존심만 중요하구나 싶을 정도다.

남의 편은 하나뿐인 자기 자식이 자기 때문에 불편해 하고 눈물을 흘리고, 법무사들이나 변호사들이 여태 소송해 오며 이런 피고는 처음이라고 할 정도로 상식 이하다. 하지만 다 따진들 무엇하랴!


아들이 힘든데, 따로 분리할 공간 하나 구하지 못해 불편한 동거를 감수해야 하는 부족한 나의 아픔이다. 변호사한테 빨리 정리해 달라고 호소도 해 보고, 경찰한테 접근 금지 좀 해 달라고 오열도 해 보고, 지금의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 보고 있는데도 역부족이다.


 "엄마, 내가 하나 알려 줄게."


"뭔데?"


"아빠 어디 갔다가 월요일에 온대. 며칠 집에 안 온대."


"아빠가 며칠 집에 안 들어 온다니까 좋아?"


"응."


내일부터 방법을 더 찾아 봐야 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뭐든 더 해보고 싶다.


아들의 눈물과 어린 것이 참다 참다 힘들다고 말하기 시작하는 모습에 나는 눈물이 났다. 잠이 오지 않는다. 아들을 재워 놓고 눈물이 나서 잠이 오지 않는다.


내가 어쩌다 저렇게까지 밑바닥이고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싶은 사람과 산 건지 바보처럼 느껴져서 후회가 막심이다.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어떻게 그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 저런 사람을 만나서 11년을 참고 살았나 싶어 내 자신의 부족함과 못남에 가슴을 친다.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고 귀중한 아들 하나만이 내게 남아 있는데 그 아들 하나 지켜 주지 못하면 내 가슴이 결국엔 무너져 내릴 것만 같다.


법원에 아무리 말해 봤자 절차가 있어서 어쩔 수 없다는 답변 뿐일 게 뻔하다. 미성년자인 어린 본인이 힘들다고 빨리 정리해 달라고 한들 판사가 들어줄리 없다. 절차가 있다고만 할 뿐, 어린 아이의 눈물 같은 걸 법이 알아줄 리 없다. 남의 편도 지 씨로 태어난 하나뿐인 자식의 힘듦과 눈물도 외면하고 이기적인 자기 뜻대로만 행동하며 남보다도 못한 아빠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남인 판사가 그런 어린 아이의 눈물과 힘듦을 고려해 판결을 앞당겨 줄리 없다. 스쿨존에서 음주 운전으로 사망한 어린 아이의 억울함도 법으로 제대로 처단하여 판결 내려 주지 않는 게 우리나라 법이다.

소송하느라 13,200,000만원이나 지불한 변호사한테 애원은 하고 있지만, 변호사도 판사의 판결만 기다려야 하는 중간 역할을 해 줄 뿐이다. 자신이 판사가 고집하는 그 법원의 절차를 어떻게 당겨 줄 수는 있는 힘은 없어 보였다.

음주 운전 사고로 사람을 치여 죽인 사람도 불구속하고, 어린 여자애를 성추행한 노인도 구속 기각하는 이 나라 법을 나도 이제 어떻게 신뢰해야 할지 의문이 든다.


내 아들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어떻게 하면 되는지 내 가슴이 아플 뿐이다. 래서 내가 주말극용 소설인 '돌아온 세 자매'를 집필하기 시작한 거 같다. 이혼한 여자들 중에는 경제력과 능력 있어서 불필요한 접촉 만이라도 소송 과정 속에서 배제 시키지만, 경단녀에 주부로 경제력 없이 살아 온 여자들의 이혼 모습도 있다는 걸 한 집 안의 자매들 속에서 동시에 보여 주고 싶어서...







"쓸게 없고, 쓰기 힘들면 쓰지 말자."


"내가 요즘 힘든 걸 담임 선생님이 모르는데 나를 이해해 주겠어?"


나는 아들의 눈물을 닦아 줬다. 그리고 꼭 안아 줬다. 남의 편이 당장 집에 안 들어올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고 싶었다. 아들과 내가 남의 편을 집 안에서 보지 않을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기도도 마다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긴 하다. 사람이 그래도 사람으로서 생각대로 다 할 수는 없지만 어린 아들의 눈물 앞에서 심정이 그렇다는 거다.


"엄마가 담임 선생님께 잘 얘기할게."


"어떻게?"


나는 잠시 아들의 눈을 쳐다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럼 엄마가 나 요즘 힘들다고, 왜 힘들어서 글 못 썼는지 담임 선생님한테 얘기 좀 해줘. 그리고 빨리 해결해줘. 빨리 정리해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꼭 그러겠다고 아들과 약속 했다. 그리고 변호사한테 문자 메시지를 남겨 놨다.


'아들이 눈물을 흘리네요. 아들이 빨리 정리 좀 해 달라네요. 자기 힘들다고, 자기 요즘 아빠 때문에 집에서 편하게 못 있어서 힘들다고 담임 선생님한테도 얘기 좀 해 달라네요, 변호사님.'


나는 내일 아침, 수업 시작 전에 담임 선생님과 급하고 짧게 통화를 할 생각이다. 아들의 부탁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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