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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달빛 Aug 11. 2022

엄마, 지옥이 있어.

어디냐면 바로 우리 집에


얼마 전에 준이 친구 엄마들이 집에 왔다. 요즘 어찌 지내는지 이야기를 하다 서로 아이들 근황도 나누었다.


한 엄마가 ‘아이가 거짓말을 하면서 자기가 지옥에 갈까 봐 두려워한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나는 내가 여덟 살 때 그런 걱정을 했던 일이 또렷하게 기억나 아이의 마음이 잘 느껴졌다. 그리고 얼마나 걱정되고 두려운지도 공감되어 돕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그래서 그때 내가 어떤 말을 듣고 싶었는지를 생각하고 그 이야기를 했다.

네가 무서울  생각하니 안타까워. 

너도 거짓말이  필요하니까 하는  같은데  하게 됐는지도 궁금해.

내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지? 도울  있다면 돕고 어.

나는 지옥에 같이 가줄 수도 있어.

하지만 네가 지옥에 안 가는 방법은 없는지 알고 싶어.

그리고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은지도.”


아이의 엄마는 스스로의 방식으로 생각을 잘 정리했고, 아이와 이야기를 나눠보겠다 했다.


나는 우리 준이가 그런 말을 한다고 생각해 보았다.

그러면 일단, 그 거짓말을 왜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지옥에 가는 걸 감수할 만큼 중요한 일이 있나 물어볼 거 같다. 그래서 거짓말로 네가 얻게 되는 게 무엇인지 나눠줄 수 있는지도.


그날 저녁 일기를 쓰고 있는 아이에게 그 이야기를 해보았다. 가끔은 나의 깊은 고민에 순수하고도 간단한 해결책을 줄 때가 있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몰어봤던 거 같다.


준아, 친구가 자기 거짓말해서 지옥 갈까 무섭다고 하는데 뭐라고 이야기해주면 좋을까?”


준이는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지옥은 없어. 그러니까 걱정 안 해도 돼.”


그러고는 시선을 나에게 옮겨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우리 집에는 지옥이 있어. 엄마가 화를 낼 때. 그때가 바로 지옥이야.”


씨익 웃는 여덟 살 준이. 그 옆에서 내 눈치를 한번 살피더니 형아를 보고 웃는 다섯 살 민이.


나는 ‘에고, 미안해.”

하면서 그대로 넘겼다. 아이들이 하는 표현이 그럴 수 있지 하면서.


그런데 며칠 지나도 그 말이 계속 떠올랐다. 비폭력대화 워크숍 강도 연습을 해 본 뒤로 ‘자극을 자극으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때’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지금 그때인가 싶어서 다시 그날로 돌아가 생각해 았다. 나는  말이 속상하고, 아팠고, 미안했다는  그제야 느꼈다.


준이가 방학이라 커피숍에서 둘만의 데이트가 가능했다. 나는 유자차 한 잔을 사주며 준이에게 물어볼  있었다.


준아. 엄마가 낼 때, 그때 우리 집이 지옥이라고 말했던  기억해? 엄마가  말을 듣고 많이 미안하고 슬펐어. 지옥처럼 무서웠을까, 엄마가 미웠을까 여러 걱정도 되었거든. 지옥에 대해서  말해줄  있어?”

그러자 준이가 이야기했다.


 지옥은 바로 억울함의 지옥이야. 민이가 먼저 나한테 잘못했는데 엄마가 민이 때리지 말라고 하면 나는 너무 억울해. 그래서 억울함의 지옥에 들어가는 거야.”

이렇게 이야기를 들으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너무 억울하다는 뜻이었구나.

준아, 지옥처럼 느껴질 만큼이라니 정말 억울했겠다. 억울함의 지옥에서 엄마가 구해주고 싶어. 만약에  그럴 때가 있으면 ‘지금 나를 억울함 지옥에서 구해줘!’라고 말해. 엄마가 바로 구해줄게.”


“어. 알았어.”

쿨하게 대답하는 준이


당시에는 그냥 웃어넘겼지만 ‘내가 아이의 지옥을 만들었다는  사실 생각할수록 미안하고 괴로운 말이었다. 그러나 물어보고 표현하니 다음번에는 다른 선택을   있을  같다. 아이 둘을 중재할 때는 언제나 둘 모두에게 표현할 기회를 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픔에 대해 자각할  있는, 그냥 웃어넘기지 않을  있는, 여유가 귀하다.

그 마음을 만져 주고 지나갈 수 있는 여유를 허락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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