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하며 정신 똑바로 챙기면 안 되는 일들이 많았다.
은행 대출, 각종 서류, 사전 점검, 하자 접수 등등...
이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 내 정신은 피폐해져갔다.
계획대로 안 되는 일들이 자꾸 생겼고
그럴 때마다 내 정신은 무너지고 다시 잡기를 반복했다.
내 집 하나 사는 게 이렇게 어려운 것인가. 강남 3구 삐까뻔쩍한 집도 아니고 고작 저기 저 먼 곳에 있는 시골집인데 이 집 하나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들 일인가.
어떤 날은 '내가 또 놓친 건 없을까'하는 불안증이 찾아오기도 했다. 그럴 때면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항상 잠이라면 매우 잘 자는 내가 말이다.
그렇게 어찌어찌하여 이사를 무사히 했고 이제 모두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집 안의 먼지들과 하자들이 또 내 정신줄을 건드렸다.
신축이라 분진이 많았고, 환기를 해야 하기에 창문을 반나절 넘게 열어두면
밖에서 온 먼지가 집 안에 시커멓게 쌓였다.
퇴근을 하고 나면 밀대로 계속 집의 모든 바닥을 닦는 것이 루틴이 되어 버렸다.
사전 점검 때 접수한 하자들은 아직 안 고쳐진 것들이 많았고
살면서 새롭게 보이는 하자들도 있었다. 하자 신청을 하려고 하면 전화를 한 번에 받지 않았고, 신청접수가 되어도 언제 고치러 올 지 몰랐다.
이 모든 것들 때문에 나는 이사를 왔지만 집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있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바닥 닦기, 먼지탈기, 하자 찾기가 일상이었다. 내 몸엔 짜증이 조금씩 누적되어 계속해서 적립되어 있었다.
그렇게 지낸 지 3주쯤 지났을 때, 이젠 방 닦는 것도 하자가 있는 것도 그러려니 했다. 좀 적응이 된 것이다.
시골집에 와서 가장 좋은 점 하나, 훨씬 가까워진 출근길만을 만족하며 여느 때와 같이 출근을 하였다.
그런데 사무실 문이 열리지 않는다. 마스터키를 사용해도 도통 열리지 않는다. 몇 분간 문과의 사투를 한다. 더군다나 월요일 아침인데, 출근한 것만으로도 기특한 나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다. 그 문 제발 열어주오.......
그러다가 동료가 반대쪽으로 문을 열어본다. 어? 열린다. 문이 반대로 열리도록 되어 있다. 아니 문이 갑자기 왜 반대로 달려 있지? 책상 위는 검은 먼지로 가득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알고 보니 주말에 천장 공사를 한 것이었다. 이 지긋지긋한 공사판!! 또 시작이다!
이사 오면서 나도 모르게 먼지 예민러가 된 나는 그 검은 먼지를 보자 갑자기 매일 같이 닦아 냈던 내 시골집이 떠오르며 ptsd가 오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너무나 짜증이 났다. 문득 예전에 김영하 작가님께서 티브이에서 했던 말씀이 떠올랐다.
'짜증 난다'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말라. 우리에겐 여러 감정들이 있는데 그걸 다 짜증 난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짜증 난다 대신 구체적인 내 감정을 이야기해 보라.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 후 나는 짜증 난다는 말을 의식적으로 안 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짜증이 누그러들 때도 많았다. 그런데 오늘 또 내 입에서 "아~월요일 아침부터 이 난리야, 짜증 나네!"가 튀어나왔던 것이다.
그럼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을 '짜증'말고 어떤 것으로 바꿀 수 있을까.
ptsd가 온다? 흠, 일단 이게 적절한 것 같다.
먼지와 공사판만 보면 프로 예민러가 되는 나, ptsd가 오네요.(짜증 난 거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