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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지영 Mar 20. 2023

투병하는 월요일

중학교 2학년에게 수요일은 어떤 의미일까. 면학에 힘쓰지 않고 본능에 충실하고 싶은 날 되겠다. 지난 수요일에 우리 집 중2님은 스쿨버스를 놓쳤고, 그래서 내가 학교까지 모셔다 드리는 길이었다. 중간 지점에서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해서 집으로.


8분 만에 돌아온 집은 너무나 포근했다. 중2님의 마음은 이미 결석으로 기울어 버렸다. 하고 싶은 대로 존중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내 의견을 냈다. 학교 가서 선생님한테 말씀드리고 조퇴하라고. 나는 다시 중2님을 모시고 학교와 병원으로. 병명은 상세불명의 복통이었다.


중학교 2학년에게 월요일은 어떤 의미일까. 면학에 힘쓰고 싶어도 주말에 파워를 소진해서 기운 없는 날 되겠다. 더구나 오늘 중2님은 열도 나고, 목소리는 안 나오고, 잔기침을 했다.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지. 병원에 갔더니 코로나 아니었고 상세불명의 복통이나 두통도 아니었다. 진짜로 아픈 거였다.


투병 중에도 식욕 있고 게임 할 수 있어서 다행! 나도 좀 살자는 마음으로 가출했다. 뷰 좋은 곳에 가서 빡시게 2시간 일하고서 주유하고 자동세차하고 ‘르 클래식’ 갔다. 월요일이고, 중2님은 집에서 투병 중이라서 카페에 가야만 했다.

지난 금요일에도 반차 낸 계주님과 곗날이라고 미용실 다녀온 자매님과 갔던 르 클래식. 처음 먹어보는 ‘딸기 밀푀유’는 장난 아니었다. ‘프랑스산 고메버터로 부드럽고 바삭하게 만든 729겹의 파이지, 마다가스카르산 바닐라빈이 듬뿍 든 앙글레즈 크림, 라즈베리아 딸기를 끓여 만든 콩피’까지 전부 조카 서연의 손을 거쳤다.


서연은 사람 많은 데서도 나를 알아보고, 나는 단체 사진 속에서 서연의 이상형을 짚어낸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와서 공대 대학원 졸업한 서연은 갑자기 진로를 바꿨다. 3년간 디저트 공부하고 각종 자격증을 따서 카페를 열었다. 어릴 때부터 같이 보낸 시간이 많은 제규는 자기 계획을 바꾸어서 1년만 누나랑 일하고 싶다고 내려왔다.


르 클래식의 카페라떼와 딸기 밀푀유, 서연과 주고받은 쓸데없는 잡담 덕분에 심신이 안정됐다. 깊어가는 밤, 기침하면서 게임하는 중2님에게 나는 다정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르클래식

#딸기밀푀유

#흑임자라떼

#군산디저트카페

#중2의건강을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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