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잃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모른 체 사는 것이 오히려 행복이라고도 생각했다
너무 아픈 기억에 삶을 놓을 수는 없었다
그것이 내가 기억을 잃은 이유라 생각했다
참으로 어리석은 이여
시간을 잘못 살아온 참으로 못난 어른이여
나는 철들지 못한 미성년이었다
스스로 불행했고
스스로 가장 불쌍히 여겼다
스스로 잃은 기억에 안타까워했다
살기위해 어쩔수없는 선택이라며
스스로 가장 애처로운 사람이라 여겼다
오만한 자여
너의 기억은 살기위해 존재한 것은 맞으나
가장 중요한 것도 함께 잃어버렸다
혼자 살고자 한 오만함이 결국 네게 되돌아오는구나
차가운 달빛의 위로를 받고자 했으나
네 기억에 속하지 못한 이는 그 달빛에 떨고 있었다
어두운 밤하늘의 고독을 위안이라 여겼으나
네가 잃어버린 기억은 칠흙같은 어둠속을 헤매고 있었다
눈물을 흘릴 순간조차 잊었다한 오만함이여
너는 결국 가장 위선적인 사람이었다
마음이 아프다는 위선
아프지 않기위해 스스로 잃었다던 변명
부끄러워 숨이 막힌다
왜 살아가는가
아무것도 되지못해 절규하던 너는
이렇게밖에 하지못해 미안하다던 너는
왜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는가
가슴이 멈춘것이 아니다
심장의 울림이 멎은 것이 아니다
가소롭고 가식적인 인간이여
너는 눈물을 가질 자격이 없다
생을 사랑해야 할때 유치한 삶과 사랑을 논하며
철없는 예술가행세를 하였다
생이 아파할 때 유치한 사람과 인생을 논하며
고뇌하는 휴머니스트인 척 하였다
유치한 생 한가운데 아담과 이브의 탐욕을 비판하며
가장 불쌍한 비너스를 자처했다
감히 자격도 없는 나를 벌하기를
나의 눈은 당신을 바라볼 자격도 없다
나의 심장은 당신을 담을 자격이 없다
내가 잘못 살아온 시간을 당신이 벌 받고 있었다
당신의 눈이 멀때
나의 눈은 떠오르는 태양을 보았고
당신의 손이 잘라질 때
나의 손은 사랑하는 연인을 잡았다
당신의 이가 빠질 때
나의 이는 달콤한 꽃가루를 먹었고
당신의 다리가 절룩거릴 때
나의 다리는 지저귀는 새들과 날아다녔다
당신의 오장육부가 아파할 때
나의 심장은 비너스를 그리워했다
이제야 숨이 가쁘고 가슴을 친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코스프레를 하는동안
세상에서 가장 아픈 나의 당신은 나의 그림자였구나
내가 가장 빛날 때
가장 어두울 수 밖에 없는 당신이여
내가 가장 상처 준 사람이여
당신을 모른체한 나를 용서하지말기를
당신을 잃어버린 나를 외면하기를
나의 눈을 찌르고
나의 손을 자르고
나의 심장을 도려내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우주에 내 버리기를
다시는 마주칠 수 없는 공허한 창공에 던져버리기를
그렇게 흩어져 떠도는 기억들 가슴에 담아 아파하기를
스스로 버린 기억상실의 모든 유희를 내내 기억하기를
하데스여
제발 나를 데려가소서
그림자조차 볼 수 없는 어둠속에 나를 가두어 주소서
너무도 늦어버린 오만한 마음의 빚을 무겁게 물리소서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당신
평생을 미성년으로 살아온 나를 용서하지 마소서
처절하게 가슴으로 사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