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물 바다였다. 차가 물 위를 떠 가는 배처럼 달렸다. 차창이 비가 가시기 전에 다시 비로 덮였다.악바리같이내리는 비속에서도와이퍼는 작은 부채꼴 모양만큼선명히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쉬지 않고 움직였다. 나는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와이퍼에 부응하고 싶었다.나는 온 신경을 다해 운전에 집중했다.그 순간 와이퍼를 믿어줄 존재는 오직 나뿐이었으니까.
그녀는 바다를 좋아했다. 바다를 보기 위해 우리는 차를 몰아 서쪽으로 향하는 길을 달리곤 했다. 그녀는 매번 가는 길이었는데도 우리가 가는 길이 어디에서 시작하여 어느 마을을 지나 어느 바다로 가는지 알지 못했다. 그날도 우리는 바다로 가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모른다고 할 줄 알면서도 이 길이 어디로 가는 길인지 물었다. 역시 그녀는 모른다고 했다. 나는 우리가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길이어서 이 길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고 했다. 그러자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그곳이 어디든 상관없다고. 우리가 함께라면 그러면 될 뿐이라고.
비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작은 마을에 들어서자 '중국성'이라고 써진 간판이 보였다.점심시간이 지난 식당은 한가했다. 식당 안에는옷소매를 어깨까지 걷어 올린 남자가 플라스틱 광주리에 담긴 양파를 까고 있었다. 주방에선 중년의 여자가 의자 위에 올라서 벽에 달린 선반을 닦고 있었다. 그리고 노랫소리가 들렸다. 여자의 휴대폰에서 나오는 노래는 끝이 나면 다시 시작됐고 끝이 나면 또다시 시작되었다.노래가 몇 번째반복인지 알 수 없을즈음노래가 멈추고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여자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울리던 벨이 멈추자노래는다시 시작되었다. 그 뒤 몇 번 더 벨이 울렸지만 여자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녀가 좋아하는 노래가 있었다. 노래는 늘 그녀 곁에서 맴돌았다. 그녀에게 향하는 전화기 너머에서도 들리던 노래는, 노래가 그녀였고 그녀가 노래였다.노래는 남자에게 버림받은 여자의 마음이 담긴슬픈 노래였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부를 땐 슬픈 노래가 아니었다. 우리는 걱정되지도 불안하지도 않았다.슬픈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생각하지 않았다.
식당 안을 가득 채우는 노래가 반복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건 반복은 좋아하는 노래가사를 외우기 위해끊임없이 되돌려 듣는 반복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사라져 버려 되돌릴 수 없지만 좋았고 행복했던 그리움이 묻어 있어 멈출 수 없는 반복이었다. 노래를 들으며 그녀가 떠올랐다. 그녀와 함께 했던 순간들. 바다를 보기 위해 서쪽가는 길을 달리던 그녀와 나. 노래는 그녀가 좋아했던노래였다. 늘 그녀전화기 너머에서 들렸던.
누군가 식당 문을 열었다.문이 열리자 밖에서 악착같이 내리는빗소리가 들렸다. 배달 가방을 든 청년이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우비를 입고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문이 닫혀빗소리가 잠기자다시 노랫소리가들렸다. 양파를 까던 남자는 음식 만들 준비를 했고여자는 여전히 선반을 닦고 있었다. 배달을 마친 청년은의자에 앉아 신문을보고 있었다.
노래는계속 반복되었다. 노래를 멈추려고 하는 이는 없었다.그곳에 있는 어느 누구도 싫증 내거나 시끄럽다며 불평하지 않았다.모두침묵할 뿐. 그러나 그들은 알고 있는 듯했다.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도가슴에 묻어둔 아픈 기억 하나는 갖고 있다는 것을. 그 이유가 사랑이든 다른 무엇이든,기억이 떠올라 아파할 때 아파하는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방법 중에는 침묵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노래가 끊임없이 반복되어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식당을 나와 차를 몰았다. 비가 기세가 잦아져 부슬부슬 차창을 적셨다. 식당 안에 끊임없이반복되던그녀가 좋아했던 노래가 계속 귓속에 맴돌았다.
“혼자인 시간이 싫어. 시계를 되돌려 봤죠”
마른 목에 사래가 들까 머금던 물을 조심스레 삼키듯, 목젖에서만 맴돌던 노래를 천천히 내었다. 눈물이 흐를 줄 알았는데대신 와이퍼가 눈물을 씻겨 주듯창을 닦아내었다.깨끗해진 마름모 모양의차창 밖 세상이 잊고 있던 장면에서 잊지 못할 장면으로 바뀌고 있었다.나는 그 장면을 보며 차를 몰았다. 어디든 함께 있으면 두렵지 않다고 했던 그녀와 달리던 길을 따라. ‘툭’ 하고한 순간 흐른 눈물을 숨기려 고개를 떨궈 노래가 멈추지 않도록나직하게.서쪽 가는 길을 따라조심조심 애쓰고 애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