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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밴드의 멤버가 되다.

Chapter. 4 나의 진짜 행복찾기(1)

by 온다정 샤프펜

가슴의 염증이 어느 정도 치유가 되어가고 있을 때였다.

평일 오전. 어느 커피숍에서 4살 둘째, 어린이집 엄마들의 첫 모임을 했다.

단체 깨톡방에서 간간이 대화만 나누다가 간단히 차 모임을 하기로 했다.

모인 인원은 10명 남짓이었다. 기다란 커피숍 테이블에 옹기종기 붙어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어머나, 피부가 좋으세요. 어려 보여요"

"아니에요 호호호. 요즘 피부과에 다녀서 그런가?"

"그러시구나. 어디예요? 저도 좀 알려주세요!"

옆자리에 형성된 그룹은 벌써 화기애애하다.

나도 괜히 앞에 앉은 아줌마 한 분에게 말을 걸어본다.

"애들 보내놓고 다들 집에서 뭐 하면서 지내세요?"

긴 머리 아줌마 하나가 입을 연다.

"요즘 새로운 취미가 생겨서... 피아노 배우러 다녀요... 이제 3개월 됐어요."

"음악 너무 좋죠. 좋으시겠어요."

"네. 어릴 때부터 꿈이었어요. 그래서 저의 더 큰 목표는 밴드를 만드는 거예요."

"네? 정말요? 저도, 같이해요!! 저도 밴드하고 싶어요. 전 기타를 배울게요!"

나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긴 머리 아줌마는 살짝 놀란 듯하다.

그때 옆에 앉은 다른 아주머니가 조용히 입을 떼었다.

"그럼, 저는 드럼을 배울게요. 함께해요."

모두들 밴드 결성이 일생의 꿈이었던 사람들인 양, 우리 밴드는 그렇게 조용히 시작되었다.

사실 그랬다. 난 정말로 평생 밴드, 음악을 하면서 일생을 마감하는 것이 꿈이었다.

19살 때 X-JAPAN에 빠져서 쿵쾅거리는 록 음악과 함께 분노의 붓 질로 나름 힘들었던 고3 시절을 견디었다.

20살 때 친구와 함께 기타 학원에 등록하고자 했던 나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로도, 나의 가슴속에는 언제나 밴드의 일원이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었다.

혼자라도 했으면 좋았을 음악. 그러나 그 정도의 용기나 열정이 없었는지, 나름 바빴던 대학시절을 그냥 흘려보내고, 연애도 신나게 하고 직장 생활도 신나게 하던 어느 날. 오랜 연인과 직장을 동시에 때려치우게 되었다. 그러자 왠지 지금이 음악에 도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내 나이 20대 후반. 뒤늦게 꽂힌 꿈을 찾아 언더그라운드 밴드의 인터넷 카페를 무작정 뒤졌다.

오프라인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언더 밴드들이 많이 있었다.

운 좋게도 몇몇 밴드들은 그들의 합주를 견학(?) 할 수 있게 허락해 주었다.

아줌마가 된 지금보다 그 당시에는 훨씬 부끄러움이 많았기에 나로서는 엄청난 용기로 카페에 글을 남기고 답을 받은 것이다.

그 밴드는 서울 소재의 직장인 밴드였는데, 연습실은 밝고 깔끔한 분위기였다. 악기들 앞에는 연주를 지켜볼 수 있는 소파와 작은 의자들도 놓여 있었다.

내 글에 답글을 달아 준 남자 멤버와 뻘쭘하게 인사를 나누고 소파에 앉았다.

그날 구경하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드디어 밴드의 연주가 시작되고, 세련되고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리얼한 연습 장면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경험하다니, 가슴이 쿵쾅거렸다. 한 곡, 두 곡, 세 곡... 더욱더 열정적인 음악이 연주됐고 그들은 그들만의 견고한 세계를 만들어 갔다. 순간 그 안에서 이물질처럼 앉아 있던 내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들은 반짝반짝 빛이 났고 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다. 갑자기 서글픈 느낌마저 들었다.

난 더 이상 그곳에 앉아있을 수 없어서 곡이 끝난 적절한 시기에 벌떡 일어나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그런 아름다운 음악을 할 수 있는 사람들 앞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음악 초짜인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집에 돌아가는 내내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그날의 혹독한 체험 이후, 심장이 더 단단해졌는지 더욱더 열정적으로 카페를 찾았고. 결국, 어느 언더 밴드 연합의 보컬 오디션에 지원하여 얼결에 합격한 후 어느 신생 밴드의 보컬을 맡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날 이후 이런저런 밴드에 몸담으며, 꾸준히 합주도 하고 가끔 클럽 공연도 하며 내 마지막 청춘의 한 페이지를 소원하던 음악으로 채울 수 있었다.

일본에서의 결혼생활 그리고 출산과 육아로, 여러 해가 지나는 동안 난 죽을 때까지 다시는 밴드 활동을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뜬금없게도 둘째 어린이집 엄마 모임에서 그 구하기 어렵다는 밴드 멤버를 단 오 분 만에 찾을 줄이야. 정말 삶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난 정말 간절하였지만, 이 아줌마들의 마음은 반 장난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 무색하게도 정말로 드럼을 배우겠다는 아줌마는 일주일 후 드럼 학원에 등록을 하였고, 나도 이제까지 어깨너머로만 배웠던 기타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 음악 학원에 등록하게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있을 수 있는 내 자리를 하나 더 채웠다.

난 오늘도 천천히 하나씩 하나씩, 나 자신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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