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길에서 혼자인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생뚱맞은 행동을 하더라도 누구로부터 눈총 받지 않습니다. 다만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새들만 빤히 쳐다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입니다. 숲길로 산바람이 지나갈 때 가슴을 활짝 펴고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휴’ 하고 뱉어 봅니다. 묵힌 감정이 빠져나간 것처럼 개운합니다.
오늘 같은 불그스름한 가을 햇볕은 정말 아깝습니다. 햇살이 순간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가을 햇살이 불그스름해지면, 산길로 알밤이 떨어지는 시기입니다. 뜨거운 여름을 품고 있던 밤송이가 몸을 풉니다. 이때 길가에 붉어지는 청미래덩굴 열매라도 마주하면 뒤틀린 감정이 치유되는 기분입니다.
숲에서는 누구나 다 구도자가 되는 것 같습니다. 숲에는 무엇 하나 욕심부릴만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숲에서는 오감이 열립니다. 나무 아래 앉아 눈을 감으면 숲 냄새와 숲의 소리가 들립니다. 눈을 감고 냄새를 맡고, 소리를 듣고 있으면, 그것이 치유입니다. 나뭇가지를 툭툭치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는 생명이 깃든 소리입니다.
새소리가 들려옵니다. 문득 신흥사 “오현”스님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스님께서는 ‘진리는 없다.’라고 했습니다. “절마다 교회마다 방송, 신문마다 진리를 이야기하지만, 시끄러운 소음된 지 오래다.”라고 설하면서 노승의 설법을 듣기보다는 “동해 바다 파도 소리와 설악산의 산새 소리, 계곡 물소리를 듣는 게 낫다.”라고 하셨습니다. 자연의 소리가 설법이라는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