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감생심
벚꽃이 피는 4월, 만개하는 4월 중순에는 항상 대학시절 중간고사 기간이었다. 그랬기에 학창시절에는 벚꽃놀이를 따로 즐겨보지 못했다. 교정에 핀 꽃 들을 잠시 공강시간이나 점심시간에 구경하고 사진에 잠깐 담는 것이 다였다.
3월 말에 신규입사한 회사에서도 신입직무교육 등의 시간 없이 곧장 실무에 투입이 되었기에 입사 이틑날 부터 시작된 야근으로 역시나 회사원으로서도 벚꽃은 언감생심이었다.
그래도 회사 앞 길이 천 변에 위치하여 산책로가 잘 구비되어 있어, 역시나 점심식사 후에 짬을 내어 산책로를 거니는게, 그나마 위안 아닌 위안이었달까.
나는 기획팀에 입사했었는데, 입사와 동시에 그 해 연간교육일정 계획을 수립했고, 다음달에 있을 워크샵 자료집 책자 제작을 시작했다. 그렇게 일을 맡으면서도 사수인 선배의 일을 보조하고, 또 내게 부여 된 주무 업무를 담당해 나갔다.
워낙 규모가 작은 기관이었기에, 사람 한명이 귀한 와중에 신입직원의 등장은 어떻게라도 일을 부여할 수 있을까, 길들이기 하는 조직에 모습에 참 돌이켜 보면 규모와 상관없이 조직적 이기적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매일 밤 10시, 11시가 넘는 퇴근에 지쳐갔고, 과거의 악몽과 두려움이 떠올라 회사 인근에 월세방을 구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개인시간은 고사하고 나는 계속 업무와 회사 안에만 매몰되어져갔다. 사수나 옆부서 직원은 근무시간에 인터넷 쇼핑과 매일 칼퇴근 등 본인 여가활동에 여념이 없었다.
힘들었다고만 얘기하면 마치 일을 못하는 무능한 사람으로 비추어질 수 있을텐데, 나는 비록 우물 안 개구리였을지는 모르나, 늘 열심히 하며 성과도 내봤고, 실무도 군 복무를 통해 이미 어느정도 익힌 상태였다. 그렇게 갈리고 갈려, 신입사원에게 인색한 기관의 조직문화에도 불구하고, 기관 창립 30년 이래 신입사원 최초로 근무평정 우수 등급을 받기도 했다.
이게 나에게 어떠한 보상이 되고, 동기가 되고 아주 찰나 인정의 기쁨이 있었으나, 1년 동안 휴가 하루 쓰는 것 조차 부담인 상황에서 나는 신체 내외부적으로 곪아가고 있었고, 결국 이상신호들이 오기 시작했다. 업무 실수를 그렇게나 싫어하는 나였는데, 넋 나간 사람처럼 몇번의 반복되는 실수와 집중력 저하, 급격한 체중증가 등
또한, 기획부서로서 신입사원임에도 임원분들과 대면하고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자주 있었고, 그 분들이 언짢은 일이 발생할 경우, 내 이름이 직접 거론되며 회람이 도는 일 등은 으레 신입직원으로서, 신입직원이라서 보호 받아야 할 상황들에도 직접적으로 노출이 되었고, 그 책임과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내가 감당했어야 했다.
사수는 어떘냐고? 당연히 '고생은 본인 몫, 잘못은 후배 잘못, 네 일은 네 일, 내 일은 부사수니까 도와야지.' 라는 태도였다. 부사수라면, 책임은 당연히 사수에게 있어야 할 텐데, 첨예한 일들은 모두 나에게 편중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규직이니까 책임을 갖는 것이라면, 시작부터 너무 큰 책임을 강요받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말이 사수/부사수 관계지 독립된 별개의 실무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팀장님께 읍소를 몇번 하였으나, 근원적 문제 해결이 아닌 늘 핀포인트적 해결만 구상했던 팀장님이었기에(순환보직으로 얼른 본연 업무로 도망치기 급급했던 팀장님) 결국, 달라진 건 하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입사 이후, 두번째 벚꽃을 마주하던 시기에 이직 결심의 씨앗을 키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