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삶의 속도는 몇 킬로인가요? ,
다만 내가 좋아하는
내 속도를 잊어감이 아쉬울 뿐이다.
내가 분명히 경고하는데,
출발 신호가 울리면 난 엄청나게 느린 속도로 걸어갈 거야.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아주 느린 걸음으로.
그러니까 그런 날 편하게 봐줬음 좋겠어.
나도 편하게 생각할 테니까.
하완,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 중
네가 상상한 이상으로
나는 느리니까 놀라지 말고
당신의 속도에 맞춰 너 갈길 가시오.
빠르다는 것이 늘 좋은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은 각자가 가진 속도가 있다. 특히 자연을 보면 더 느낄 수 있다. 나무나 꽃이 자랄 때 내가 옆에서 물을 주고 노력을 한다 해도 그 속도를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나무가 자라는 속도를 기술적으로 변화를 줄 수 있겠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나무가 원래의 나무인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무가 자라는 속도를 기술적으로 변화를 줄 수 있겠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나무가 원래의 나무인가는 필요가 있다.
중국 송(宋) 나라에 어리석은 농부가 있었다.
모내기를 한 후 벼가 어느 정도 자랐는지 궁금해서 논에 가보니 다른 사람의 벼 보다 덜 자란 것 같았다. 남한테 지는 것이 싫어 그 농부는 궁리 끝에 벼를 조금 잡 아 뽑으니 약간 더 자란 것 같이 보였다. 보다 못해 하루 종일 모를 조금씩 뽑아 올렸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 가 족에게 말했다. “오늘 일을 많이 해 병이 나겠구나. 내가 모가 잘 자라도록 도와줬다.” 아들이 이 말을 듣고 그 이튿날 논에 나가보니 벼가 모두 말라죽어 있었다.
- 맹자(孟子)의 공손추장구상(公孫丑章句上)
어리석은 농부는 벼의 줄기를 뽑아 올리면 남보다 더 빨리 자랄 것이라고 생각해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하였다는데서 알묘조장(揠苗助長)이라는 말이 나왔다. 급하게 서두르다 오히려 일을 망치는 어리석은 짓이라는 뜻이다.
벼는 자신만의 속도로 자라고 있었고 그 속도는 옆에 있는 논과는 상관없는 것이다. 그 논의 벼 또한 자신만의 속도로 나아가고 있었을 테니까. 급하게 서두르는 것은 누구인가? 그것을 바라보는 나 자신이다. 빨리 자라게 도와준다며 벼를 뽑는 송나라의 농부처럼 우리의 삶도 뽑아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일을 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해야 한다. 하지만 서두르고 급하게 하는 것이 오히려 일을 그르치고 더 일을 더디게 만들 수도 있다. 우리는 앞으로 놓인 수많은 일들을 생각하며 오히려 '지금'을 살아가고 있지 못하다. '다음'을 생각하며 서두르는 마음으로 '지금'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당신 삶의 속도는 시속 몇 킬로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