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울었던 그 날은 어쩌면 온통 사랑이었을거야.
그날이 마침내 찾아왔다.
일곱달 된 아이를 뱃속에 품고
나는 5월의 신부가 되었다.
아침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눈을 뜬 순간부터 정신없이 지나가 버린 하루였고,
인생에서 가장 긴장했던 날이었다.
오직 선명하게 남아 있는 건 단 하나,
나를 바라보던 아빠의 복잡하고 미묘한 표정이었다.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금쪽같던 첫 딸을 보는 순간,
아빠의 마음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설렘과 서운함, 뿌듯함과 허전함이 뒤섞여 있었을까.
언젠가 내 딸을 시집보내는 날이 온다면,
나는 그때 아빠의 이 복잡한 감정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을까.
코로나로 하객 인원이 제한된 탓에
기대조차 하지 않았는데,
식장 앞은 뜻밖의 축하 인사로 북적였다.
식을 볼 수 없음에도, 내 얼굴 한 번 보기 위해
직접 발걸음을 해 준 사람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 진심 어린 축하가 가을햇살처럼
따뜻하게 가슴에 스며들어,
순간순간이 행복으로 가득 찼다.
버진로드 앞에 서서 아빠의 손을 잡는 순간,
나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수많은 시선이 쏟아지는 가운데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고, 손끝은 차갑게 얼어붙었다.
“무섭다…” 무심코 내뱉은 말은 떨림으로 묻어나왔다.
아빠는 말없이 내 손을 더 단단히 쥐어주며 속삭였다.
“아빠 있잖아. 아빠 손 꼭 잡고 가면 돼. 겁먹지 마.”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안에는 아빠의 모든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 순간 눈가가 이미 촉촉히 젖어들었지만,
나는 입술을 앙 다문 채 눈물을 참으며
아빠와 함께 꽃길을 걸어 나갔다.
한 발 한 발, 드레스 자락이 바닥을 스칠 때마다,
아빠의 온기가 손끝에서 전해졌다.
신랑은 환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다.
나는 잠시 아빠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 속에서 수많은 감정이 교차하는 것을 느끼며,
나는 신랑의 손을 잡았다.
그 순간의 기분은 지금도 제대로 표현하기 어렵다.
마치 아빠를 영영 떠나는 듯한 허전함.
사실 단 한 번도
아빠의 딸이 아니었던 적은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 그 찰나에는
설명할 길 없는 애절함이
마음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올랐다.
아빠는 혼주석으로 돌아가기 위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셨다.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그 어깨마저 울고 있는 듯 보여 가슴이 미어졌다.
주례 없이 간소하게 진행된 결혼식은
예정된 순서대로 흘러갔다.
그러나 양가 부모님께 인사드릴 순간이 다가올수록
나는 마음속으로 수십 번을 다짐했다.
"울지 말자. 제발 울지 말자."
하지만 막상 아빠 앞에 서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모든 기억들이 나를 덮쳤다.
어린 시절 아빠의 품에 안겨 깔깔 웃던 모습,
밤늦게 돌아온 아빠를 기다리다 졸린 눈으로
마주 앉았던 순간들,
힘들 때마다 의지했던 수많은 시간들….
그 모든 날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결국 나는 무너져 버렸다.
“영아, 울지 마라.”
미소를 띤 아빠의 입술은 그렇게 속삭였지만,
눈가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결국 본식 사진 속의 나는
누가 봐도 펑펑 울음을 터뜨린 얼굴이었다.
화장을 다 지워버린 듯 부은 눈으로 서 있는 내 모습이
그날의 진심을 고스란히 증명해 주었다.
전통 혼례 의상으로 갈아입은 뒤,
나는 폐백실로 향했다.
불러온 배 때문에 절을 올릴 때마다
몸은 무겁고 호흡도 가빠왔지만
어른들의 덕담과 축하가 이어질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따뜻하게 채워졌다.
힘들면서도 감사하고
벅차면서도 뿌듯한 순간이었다.
이윽고 홀로 앉아 계신 아빠 앞에 큰절을 올렸다.
진행자가 “한 말씀 하시라”고 권했을 때
아빠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조용히 우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긴 침묵 끝에,
겨우 입술을 열어 내뱉은 말은 단 네 글자였다.
“잘 살아라.”
그 짧은 말 속에는 수많은 무게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는 끝내 참지 못하시고,
아빠는 어린아이처럼
꺼이꺼이 울음을 터뜨리셨다.
울음이 터져 나오는 순간,
그 소리가 내 가슴을 후벼 파는 듯해
나 역시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결국 아빠와 함께 펑펑 울어버렸다.
아마도 그 순간,
아빠의 머릿속에는 지난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을 것이다.
홀로 아이 셋을 키워내며 고된 시간을 버텨낸 날들,
천진난만하게 웃던 어린 딸의 얼굴,
그리고 이제는 한 가정을 이루는 성인이 되어
눈앞에 서 있는 나의 모습까지.
낯설면서도 대견하고 걱정스러우면서도 뿌듯한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으리라.
나를 보내는 것도, 내가 떠나는 것도
서로에게는 너무나 절절한 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조금 유난스럽게 보였을지 모르지만
사실 우리는 서로의 전부였다.
시간이 꽤 흐른 후,
나는 장난스레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우리 폐백할 때 왜 그렇게 많이 울었어?
아빠가 너무 울어서 나도 울었잖아.”
아빠는 그날이 다시 떠오르는 듯 잠시 말을 멈추더니,
먹먹하면서도 행복이 묻어나는 얼굴로 대답하셨다.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애기 둘이서
아빠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이 험한 세상에서 가정을 꾸려 살아갈
너희가 기특하면서도 걱정되고...
오만 가지 감정이 다 들더라.”
나는 그날의 눈물이 이별이라 여겼다.
그러나 아빠는 그것이 나를 향한
오래된 사랑의 고백임을 일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