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달리는 세가지 질문 #07. 안선영
[온더레코드 x 틴스토리] 는 씨프로그램이 만나 온 청소년들의 이야기입니다. '다음 세대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투자해 오는 동안, 프로젝트에 함께한 친구들의 생각도 함께 자랐습니다. 어떤 순간, 어떤 결정들이 쌓여 의미있는 경험으로 남는지, 청소년들이 어떤 궤도를 그리며 성장하는지, 프로젝트와 상관없이 긴 호흡으로 따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씨프로그램이 지난 3년간 만난 청소년 5500명 중 10명의 청소년에게 6개월 마다 같은 3가지 질문을 던지고 그 대답을 따라가는 긴 여정입니다. 10주 동안 10명의 Teen Story를 전해드립니다.
한 교실 안에서 서로 다른 체감 온도로 에어콘을 사용하며 느낀 불편함을 친구들과 힘을 합쳐 해결한 선영이를 만났습니다. 메이커스카우트*는 디자인씽킹과 메이킹 활동을 통해 포착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프로토타입(prototype)을 제작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상황들을 대상으로 테스트하며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과외활동 기회가 많은 이천양정여고에서 적극적으로 다채로운 활동에 참여하는 선영이는 해보고 안 되면 안 되는 거니까 일단 하고싶은 건 다 해본다고 해요. 어릴 때는 누구나 예술가였던 우리, 선영이는 메이커스카우트를 통해 무뎌졌던 손의 감각과 예술 정신을 되찾았을까요?
Q. 에어콘 문제를 해결했던 프로젝트를 인상깊게 봤어요. 메이커스카우트엔 어떻게 참여하게 됐어요?
태경샘(이천 양정여고 선생님)이 학교 앱 제작 동아리 선생님이셨어요. 선생님 눈에 띈 4명을 모아서 메이커 스카우트 마감하는 날 한 시간만에 지원서를 써냈어요. 제가 그 분야에 가진 관심을 계속 지켜보셨던 것 같아요.
Q. 이과로 진로를 결정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메이커스카우트를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왜 이과였나요?
중학생 때 코딩을 배우고 싶어서 소프트웨어를 배우는 마이스터고에 가고 싶었어요. 근데 면접에서 떨어졌어요. 대신 축제 재밌기로 유명하고, 이천에서 알아주는 양정여고에 진학했죠. 고등학교 1학년 말에 '학교 앱'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보니까 학사 일정이나 급식 메뉴, 입시 정보같은 걸 공유할 수 있더라고요. 2004년 ‘IT Girls’ 라는 동아리가 처음 만들었는데, 2007~2008년에 한창 활발하다가 완전 죽어있었어요. 이 앱이 활성화가 안 된게 아깝더라고요. 제가 한 번 바꿔보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수학적인 공부가 필요할 거 같아서 문과가 아니라 이과로 가야겠다고 생각을 바꿨어요. 제 생각을 태경샘한테 말씀드렸더니 2학년 때 다시 앱 동아리 구성원을 뽑는다고 하시더라고요.
Q. 메이커 스카우트랑 이과 공부하며 앱 개발하는 거랑 어떤 관련이 있나요?
만들 때 아두이노를 활용하는데, 사물 인터넷처럼 기계에 코딩을 해서 동작시키는 거라 연결 지점이 있어요. 원래 기계공학에 관심이 전혀 없었어요. 메이킹을 하면 코딩배워서 앱 만드는 줄 알았죠. 그래도 기계 다루는 걸 알게 되서 좋아요.
Q. 메이커스카우트의 어떤 점이 가장 좋았어요?
디자인 씽킹처럼 생각하는 방법, 질문하는 방법을 배운거요. ‘Yes or no 질문은 하면 안 된다’같은 걸 듣고 나면, 선생님께 질문할 때도 ‘어떻게 해요?’ 라고 열린 질문을 드리게 되고, 일상에서도 바뀌게 돼요. 덕분에 항상 질문하는 습관도 생겼어요. 친구들이 보통 질문할 거 있냐고 물어보면 아무도 손 안 들거든요. 근데 저는 무조건 질문해야 할 거 같은 압박도 생겼어요.
생각하는 방법, 질문하는 방법을 배운거요.
덕분에 항상 질문하는 습관도 생겼어요.
Q. 메이커스카우트 이후에 스스로 어떤게 변했다고 느껴요?
제가 변덕이 심하고 끈기가 없는데, 이건 계속 해야 해서 포기할 수가 없었어요. 어쩔 수 없이 계속 하다 보니까 끈기가 늘었어요. 코딩 담당 선생님이 처음에는 저희 방식이 어렵다면서 ‘이걸로 하면 안 될 거 같다’고 계속 다른 쪽으로 하라고 설득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그 방법으론 저희가 생각한 거랑 완전히 다른 쪽으로 가야 하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아니라고, 그렇게 안 할 거라고 했는데 그러면 구현도 못 한다고 그러시는 거에요. 저희끼리는 그냥 ‘우리가 하던대로 하자, 그렇게 안 할 건데?’ 하면서 결국 저희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보여드렸더니 엄청 좋아하셨어요. 이런 방법을 어떻게 찾았냐고 하시면서. 사실 되게 단순한 거였어요. 교실 에어콘 온도 조절 리모콘을 만드는 과정에서 ‘안녕하세요’같은 투표 프로그램 원리를 갖다 썼는데, 선생님은 그걸 생각 못 하셨던 거죠. 그래서 메이커스카우트하고 나서 이 좌우명이 생겼어요.
하면 된다! 진짜 포기하면 안 된다!
아빠가 어릴 때부터 저한테 공부하라는 말씀은 한 번도 하신 적이 없는데, 항상 신문은 읽으라고 주셨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는 소년조선일보를 주셨는데 제가 안 읽으니까,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는 아예 제가 관심있어 할 만한 것만 오려서 모아 주시더라고요. 제가 마이스터고 가고싶다고 했을 때는 비슷한 고등학교 소식들을 다 오려주셨죠. 읽고나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글을 써보라고 많이 시키셨어요. 덕분에 지금의 가치관이나 상식이 생긴 것 같아요. 지금 제 생각은 그 때 생각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요. 집에 가면 신문 스크랩했던 게 아직도 쌓여있고 지금도 그렇게 해주세요. 근데 제가 한 번 읽고, 중요한 걸 생각하다가 궁금한 게 있어서 아빠한테 여쭤보면 ‘나한테 물어보지 말고 혼자 생각해. 내가 말하면 영향을 주니까 말해줄 수 없어’라고 하세요.
Q. 부모님이 바라는 선영이의 미래 모습이 있나요?
부모님은 공무원이 됐으면 좋겠다고 하시지만, 다른 진로를 택하는 것에 대해서도 다 잘 될거라고 하세요. 어떤 선택도 응원하면서 알아서 하라고 해주세요. '네 인생인데 부모가 뭐라고 할 수 없잖아?'라고 하시면서 성적 얘기도 안 하세요. 처음엔 경찰이 하고 싶었고 그 다음엔 사이버 경찰, 그리고 이젠 벤처 사업가가 되고 싶어요.
Q. 경찰이 되고 싶었어요?
고등학교 입학할 때쯤에 할머니 댁에 가서 잔 적이 있어요. 그 때 옆집이 너무 시끄러워서 층간소음으로 신고했는데, 그 집에서 새벽에 저희집 문을 막 두드리면서 나오라고, 신고했냐고 막 그러는 거에요. 할머니 말씀으로는 원래 소음이 심했는데, 그 날따라 저도 있어서 신고를 했던 거에요. 그 때 경찰 아저씨들이 저랑 할머니만 있어서 위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셨는지 한 4시간있다가 가셨거든요. 그 때 엄청 감동받았죠. <유령>이라고 사이버 경찰 나오는 드라마도 인상 깊었어요.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때문에 경찰이 되고 싶었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학원을 별로 안 다녔거든요. 다닐 때도, 끊을 때도 제 마음이고, 부모님은 ‘너 알아서 해~’ 이런 느낌이에요. 피아노, 수영, 뮤직 줄넘기같이 예체능 쪽 학원만 제가 가고싶을 때 다녔어요. 논술은 동사무소에서 특강하길래 한 번 들어본 것뿐, 학원의 억압적인 시스템이 너무 싫어서 고2 때 수학 과외도 한 달만 하고 끊고 지금은 인터넷 강의들어요. 엄마는 차라리 학원다닐 돈으로 먹고싶은 거 먹으라고 하세요. 아빠도 혼자 할 수 있는건데 학원을 왜 다니냐고 하시고. 학원을 다니는 게 사소해 보이지만 내 시간을 어떻게 쓸지 중요한 결정인 거잖아요. 제가 중요하다고, 필요하다고 느끼는 걸 최우선으로 생각해서 주체적으로 결정하는 편이에요.
해보고 안 되면 안 되는 거니까.
제가 진짜 좋아하고 하고싶은 건 꼭 해봐야 해요.
Q. 고3으로서 맞닥뜨리는 대학 입시는 어떻게 결정하려고 해요?
제가 쓰려는 전형에 과고랑 자사고 다니는 친구들이 많이 지원해서 선생님이 말리세요. 그래도 신경 안 쓰고 제가 하고싶으면 하는거죠.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그냥 해보고 안 되면 안 되는 거니까. 제가 진짜 좋아하고 하고싶은 것, 이게 딱 결정 기준이에요. 수시 전형도 넣고, 전문대도 넣을거예요. 전문대는 특수대같이 컴퓨터 공학에 관심있는 애들만 30명 모집하는 데가 있어요. 국가에서 기숙사비, 학비를 무료로 지원해 주는 데가 있더라고요.
부모님이 요즘 제가 성적낮은 걸 아시고는 ‘4년제 대학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꼭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야한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돼.’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사실 학교에서는 선생님들도, 친구들도 다 4년제 인서울 가야한다고 이야기하니까 저도 그냥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부모님 말씀을 듣고 보니 ‘생각해 보니 그러네!’ 싶었어요. 아빠가 중학생 때부터 ‘대학교 나와도 아무 소용없다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취업할 수도 있다고’ 하셔서 알아보다보니 마이스터고를 알게 되서 지원하기도 했었죠.
제가 배구부 주장이었는데, 연습하려면 행정실에 미리 체육관 사용에 대해 허락을 구해야 해요. 그러려면 일정 조율 때문에 행정실 선생님들이랑 애들이랑 이야길 많이 해야되거든요. 그 때 사람들 사이에 의사소통이 안 되면 아무 것도 안 된다는 걸 진짜 많이 느꼈어요. 아무리 말 해도 한 쪽이 귀를 닫아버리면 일이 안되는 거예요.
제가 언제 연습하고 싶다고 말을 해도 선생님들은 ‘학교용 전기가 산업용 전기랑 다르게 비싸다’고 하시면서 허락을 잘 안 해주시는 거에요. 사실 처음에는 '왜 이해 못 해주시지'하고 짜증났는데, 제가 선생님들 입장은 생각을 안 했더라고요. 제가 하고싶은 거라고 무조건 밀어붙이는 게 남한테 피해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게 됐어요. 고 1 때까지는 제가 하고싶으면 무조건 해야했는데, 고 2 때부터는 선생님들이나 상대 입장에 공감하고 한 번 더 배려하는 게 생겼어요. 예전엔 진짜 막무가내였지만, 이젠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는 걸 좀 더 알게 됐어요.
공감의 폭이 넓어지게 된 또 다른 계기가 성당이에요. 예전에는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성당에 가보니까 저보다 힘든 사람들이 많은 거에요. ‘이 사람은 이런 것땜에 힘들어 하는구나, 저 사람은 저런 사정이 있구나’ 같은 걸 알게 되니까 이제 저만 힘든 척 안 하기로 했어요!
Q. 앞으로 뭐하고 싶어요?
대학가서 작곡 공부하고 싶어요. 전 어썸스쿨이랑 체인지메이커 활동하느라 못 한 활동 중에 <학교 안 예술학교>라는 게 있었어요. 거기서 제 친구가 만든 랩이 너무 좋은 거예요. 너무 재밌어 보였어요. 친구는 고3인데 아직도 노래 만들어요. 고3이 된 이후 자신의 느낌을 가사에 담은 건데 스스로 그 노래를 정말 좋아해요. 공부 스트레스를 작곡하는 걸로 다 풀어요. 걔는 특목고 준비하면서 공부만 하던 애였는데, 양정여고와서 이런 활동을 할 수 있어서 여기 온 거 후회 안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나중에 저는 제주로 귀농해서, 감귤 농사지으면서 개발해서 디지털 노마드처럼 살고 싶어요. 요즘엔 경영에 관심이 많아서 사업가가 되고 싶기도 해요. 공부를 많이 해서 남들이 봤을 때 ‘쟤는 진짜 노력 많이 했구나’ 할 정도로 인정받고 싶어요. 그리고 서울에서 한 번 살아보고 싶어요. 공기때문에 오래 살진 못할 거 같지만.
매주 황금같은 주말 시간을 쪼개 왕복 4시간 거리의 메이커스페이스를 찾아간 동력은 바로 ‘재미있기’ 때문이었어요. 좋아하고 하고싶은 건 해봐야 직성이 풀리고, 전문가를 표방하는 어른이 안 된다고 해도 일단 본인이 생각하는 방식대로 시도해 보는 무모함. 대학도 남들 의견에 휘둘리지 않고 왜 가야하는지부터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결정하려는 선영이는 다채로운 경험 가운데서도 본인의 지향점을 잘 알고있는 듯 했습니다. 6개월 뒤에는 과연 어디에서 어떤 탐험을 하고 있을까요? 미래에서 기다릴게요.
틴스토리 시리즈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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