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의 착각

03 모서리가 말랑해질 때까지

by 온우





오늘의 빛은 유난히 모서리에 앉아 있었다.

창틀, 물잔, 나뭇잎 가장자리.


스스로를 드러내기보단 그저 가만히 머무는 쪽을 택한 듯했다. 비는 내리다 말았다.

바닥에 닿기 전, 몸을 바꾸는 것처럼 흩어졌다.


눈에 닿는 것들은 대부분 작고 말간 것들이었다. 말랑한 표면과 빛나는 테두리, 아무 의미 없는 문장이 적힌 것들. 그걸 가방에 넣고 나올 때 내게 필요했던 건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조금 늦게 알았다.


묘사할 수도 없는 감정이었는데 그걸 대신할 무언가를 찾아 눈에 보이는 것들을 반복해 집어들었다. 그리고 마치 감정을 소유한 듯 내 것이라고 부르며 안심했다. 그걸 모으는 동안 내 얼굴엔 빛이 앉아 있었을까. 누군가 보았다면, 나는 꽤 평온해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봄이 오려다 멈춘 공기 속에서 가벼워진 겨울을 몇 번이고 떠올렸다.


별다른 일 없는 하루였지만 그건 꼭,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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