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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포 Jan 18. 2021

'옴천 면장 맥주 따르기'는 체코에도 있다

맥주를 따르는 세 가지 방식

<자료 : wiktionary.org>


맥주를 보기도 좋고 맛있게 따르려면? 거품과 맥주가 적당한 비율로 섞여야 보기도 좋고 맛도 좋다. 거품을 맥주의 꽃이라고도 부르는데 미각적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거품은 맥주 중의 탄산가스가 새어나가는 것을 막아주고 맥주의 산화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맥주 거품이 탄산음료의 거품보다 오래가는 것은 맥아에 포함된 단백질이 탄산가스를 잡아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맥주를 맛있게 마시려면 일단 잘 따라야 한다.


맥주 거품을 너무 많게 따르면  핀잔 맞기 쉽다.  ‘옴천 면장 맥주 따르듯 한다’ 말을 들을 수도 있다. 주로 남도 지역에서 회자되는 말이다. 옴천면은 전라남도 강진군에 있다. 전해지는 말로는 아주 어려웠던 시절, 기관장 회의가 끝나고 옴천 면장이 맥주 대접을 했는데 거품이 한가득해서 한 병으로 대여덟 잔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후에 거품이 많게 따르는 것을 빗대어 ‘옴천 면장 맥주 따르데끼’한다는 말이 사용됐다. 맥주 한 병으로 대접할려니 거품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는 설과 맥주 따르는 방법이 서툴러서 그랬다는 설이 있다. 어쨌든 ‘우체국장 술잔’처럼 어렵던 시절의 이야기다.


몇 년 전에 이 이야기를 칼럼으로 쓰고 싶어서 사실 확인차 직접 옴천 면장께 전화를 한 적이 있다. 재미있게 잘 이용하면 옴천면을 알리는 데 효과적이지 않을까 했더니, 면장께서는 강진군에서도 스토리텔링으로 이용하자고 하는데 면 주민들이 싫어한다고 하면서 반겨하지 않았다. 좋은 스토리텔링의 소재인데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아 많이 아쉬웠다. 그때의 시대상과 훈훈한 정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이지 감춰야 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던 중 유럽 여행을 하고 돌아온 지인 한 분을 만났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체코에서 술집을 들렀는데 맥주를 거품이 절반이 넘도록 따라주더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이러면 큰 일 나는데 많이 당황스러웠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자마자 ‘옴천 면장처럼' 맥주 따르는 방식이 체코에도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옴천 면장 맥주 따르기’ 보다 더 심하게 거품을 내는 맥주 따르기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맥주의 본고장인 체코의 필스너 우르켈 맥주 따르는 방법이다. 대표적인 3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할라딘카(Hladinka)로 제일 윗부분만 맥주 거품이 있게 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다. 둘째는 슈니트(Snyt)로 불리는데 거품이 5분의 3, 맥주가 5분의 2 정도 있게 따르는 방법이다. 셋째는 거의 거품으로 잔을 채우는 것을 믈리코(Mliko)로 불리는데, 이렇게 하면 필스너 우르켈의 풍부하고 달콤한 거품 맛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옴천 면장 맥주 따르기는 슈니트 믈리코의 중간 단계가 아닐까 한다.


아무튼 거품이 많이 나게 따르는 방법이 맥주의 본고장에도 있다는 것이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거품이 5분의 3 정도 있게 따르는 방법인 슈니트(Snyt)는 처음엔 맥주량이 많아 보이도록 하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이제 맥주 따르는 세 가지 방법으로 채택되어 관광객에게 선보이고 있는데 아주 인기라고 한다. 몇 년 전 이태원에 있는 필스너 우르켈 팝업 스토어에서 거품 맥주 밀코가 소개된 적도 있었다.


<자료 : www.praguemorning.cz>


세계에서 국민 1인당 맥주 소비가 가장 많은 국가는 체코이다. 2020년 통계자료를 보면 국민 1인당 143.3 리터로 독일(104.2리터)보다 40% 더 많이 마신다. 그리고 우리가 현재 마시고 있는 맥주의 80% 이상은 하면(下面) 발효 방식의 라거 맥주인데 이 맥주가 처음 만들어진 곳이 체코 플젠(Plzen, Pilsner) 지역이다.


맥주 사랑으로 유별난 체코 플젠 시민들은 1838년 편 없는 맥주에 집단 봉기를 하여 맥주를 광장에 버리고 시민 양조장을 설립하기로 한다. 맥주 기술자를 바바리아에서 초빙하여 새로운 맥주를 만들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1842년 새로운 공법으로 제조한, 황금빛 투명한 맥주를 생산했는데 이것이 바로 최초의 라거 맥주인 필스너 맥주이다. 엄청난 인기를 끈 필스너 맥주가 일반화되자 플젠 양조회사는 영어 오리지널의 뜻인 우르켈을 사용해서 ‘필스너 우르켈’이라는 브랜드를 사용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말하자면 필스너 우르켈은 원조(오리지널) 필스너 맥주라는 뜻이다.


체코에서 맥주 거품을 가지고 이렇게 관광 상품으로 만들어 활용하고 있는데 ‘옴천 면장 맥주 따르기’도 스토리텔링으로 적극 활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옴천면은 전국에서 가장 작은 면이고 산간벽지에 위치하고 있어 자연경관이 수려하다. 여기에 전국 유일하게 ‘옴(唵)’자를 사용하는 지명과 함께 풀어낸다면 대단한 이야깃거리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옴천은 본래 연천()이라 하였으나, 주민들이 각종 질병을 앓게 되자 불경에 나오는 옴자()를 써서 옴천()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옴’은 범어 Aum의 음역자로 여러 종교의 진언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으로 여겨지는 신성한 음절이다. 불교 의례에서도 자주 사용된다. 관세음보살의 자비를 나타내는 주문이라는 육자진언 ‘옴마니반메훔’의 첫 글자 ‘옴’이 바로 이것이다.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궁예가 관심법과 함께 사용해서 잘 알려지기 했다. 그러고 보니 옴천면이 스토리텔링의 소재를 참 많이 가지고 있다.


<옴천면 지도 / 자료 : 카카오 맵>



<참고사항>

이 글의 조회수가  갑자기 불어나서 웬일인가 했더니 카카오에 떠서 그렇다고 하네요.   이런 기능이 있는 줄 첨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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