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너무도 익숙해서 마치 무한하게 느껴지지만, 그만큼 유한한 것이 없다. 거칠어진 뼈, 염증에 갉아 먹힌 뼈, 닳은 연골, 침침해지는 눈, 무뎌지는 미각⋯⋯. 되돌릴 수 없는 것 앞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이른 노안이 왔을 때도 그랬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안경을 맞추고 필요한 때에 꺼내서 쓰면 될 일 같은데, 그렇지 않았다. 그에게 그것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적어도 그 나이대에는. 그래서 그는 괜찮다고 선언했다. 잘 보이던 글자가 안 보이고, 눈을 찡그려도 해결되지 않는데도 안경을 맞추지 않겠다고 버텼다. 볼 수 있다고 외치고 그다음에는 무슨 글자인지 봐달라 하는 게 순서인 시절이었다.
노안. 단어부터가 거북하긴 하다. 당연히 태어난 순간부터 늙어가지마는 너무 명명하는 것 같달까.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몸에 한계점이 생기는 것 자체가, 또한 그것이 자신이 아닌 타인이나 세상이 규정지을 때면 더더욱. 그래도 그냥 둘 수만은 없었다. 내가 늘 곁에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니까. 하루 날을 잡고, 마음을 가다듬은 뒤 그에게 말했다. 돋보기안경을 하나 맞추자. 뭐? 곧바로 날카로운 소리가 귓가에 따갑게 박혔다. 내가 왜! 안 보이잖아, 안 보여서 답답하지 않아? 아니! 읽을 수 있어! 못 읽어서 나한테 부탁하잖아. 그게 힘들었어? 그 정도는 별거 아니잖아! 너무하다, 읽어주기 힘들면 힘들다고 하지! 이제 부탁 안 할게! 원래도 목소리 큰 사람이 진노하니 어찌나 귀가 맵던지. 그러나 몇 마디에 포기할 일이었으면 칼을 빼 들지도 않았다. 나는 그가 안경을 거부하는 순간마다 안경을 맞추자고 권했다. 그러면 그는 또 사자후를 선사했다. 오늘은 또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 고민하며 퇴근하기를 일주일이 되었을 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의 주변에 검은 오로라가 짙게 일렁이고 있었다. 나 안경 맞췄어. 그 짧은 문장과 함께 온몸에 뾰족하게 박히던 눈빛은, 지금도 생생해서 아픈 기분이다. 그는 안경을 맞추고 일주일 동안이나 나를 노려봤다. 내 마음에 구멍이 있다면, 그건 그때 그가 뚫은 구멍일 것이다. 뭐가 그렇게 서운하고 화가 나서 나를 노려보는지. 그 일주일을 대역죄인의 마음으로 지냈다. 그가 눈빛으로 나를 암살할 때마다 사과를 건네며 너무 멋지다고, 나였어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거라고 그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찬사를 보냈다.
시력으로 따지면, 가족 중 내가 제일 안 좋다. 타고난 유전자가 그렇다. 어릴 때는 전자기기와 거리가 있어서 좋았지만,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니 냅다 뚝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렇게 안경을 쓰고 지내는 것과 나이 듦으로 돋보기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좀 더 다정하게 그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을까. 그가 얼마나 놀라고 서운했을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찌르르 아파온다. 충격에 빠져나오지도 못했는데, 옆에서 계속 안경을 맞추라고 성화였으니. 그래도 그 후에 그의 눈총을 다 받아주었으니 아주 불효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후에 그를 안경원에 데려가 컴퓨터 작업용 안경을 맞춰 드린 부분도 생각하면 ‘불’은 빼고 효라고만 하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양심이 좀 찔린다. 얼마 전에 나는 안경렌즈를 교체했다. 테는 전에 산 것이 편하기도 하지만 깨끗해서 렌즈만 바꿨다. 그리고 다음 차례로, 이번에야말로 그의 돋보기안경을 새것으로 바꿔드릴 예정이다. 새 돋보기로 바꾸면서 우리 사이의 ‘안경 사건’을 또 떠들 것 같다. 너무 서운했다, 뭘 서운해했냐 하면서. 견딜만하게 유순해진 그의 눈총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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