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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복사 Mar 05. 2024

15화. 빵빵한 빵

오븐? 없다. 에어프라이어? 없다. 가스레인지와 전자레인지뿐이다. 이유는 하나다. 먹성이 좋아서. 나는 그의 곰국만으로도 3kg은 거뜬히 불릴 수 있는 사람이다. 그의 카레를 냄비째 해치우는 것도, 전부 나다. 그러나 원조 못 따라간다고, 그가 우주라면 나는 우주의 먼지. 나이 들어도 대단한 그의 식성이 나는 무서운데, 반대로 그도 나를 보며 무서워한다. 웃기는 일이지만 그렇다. 그런 우리가 ‘함께’일 때 어떨지는 말하지 않아도 느낌이 올 것이다. 다른 식구들이 두려워하는 것도 그런 것이니까. 우리가 합이 맞아서 감자 한 박스가 찐 감자를 넘어 감자채볶음, 감자맛탕, 감자조림, 감자전, 감자튀김, 통감자구이, 감자샐러드, 감잣국, 감자수제비, 감자탕 등등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식사도 단일 요리가 아닌 코스로 전환돼 식사가 끝나고 시간을 확인하면 3시간은 거뜬히 지나있는다. 분야 구분 없이 요리해 먹는 덕분에 냉장고에는 철마다 고정 식재료에 더해 스페셜 식재료까지 가득하다.


그래도 아쉬운 것은 변함없다. 특히, 빵을 생각하면. 집에 재료가 차고 넘치는데 구울 수가 없으니 해 먹지를 못한다. 그렇다고 늘 빵을 사 먹을 수는 없어, 아쉬운 대로 전자레인지로 해 먹기는 한다. 어릴 때는, 그가 전자레인지로 건포도를 넣고 술빵과 식빵 사이의 빵을 해주었다. 파운드라고 하기엔 부드럽고 술빵이라고 하기엔 딱딱했던 빵은, 집의 유일한 수제 빵으로 자주 먹곤 했다. 요즘은 아몬드 빵을 해 먹는다. 주재료는 아몬드 가루, 버터, 계란으로 상황에 따라 카카오 가루, 유자청, 오미자청, 견과류(호두, 아몬드, 브라질너트, 피스타치오 등), 바나나 등을 첨가한다. 바나나를 넣으면 바나나빵, 블루베리를 넣으면 블루베리빵, 카카오 가루를 넣으면 초코빵, 유자청을 넣으면 유자빵인 셈이다. 버터 대신 올리브오일을 넣기도 하고, 재료 비율에 따라 빵이 아니라 푸딩으로 먹을 수도 있다. 그와 내가 좋아하는 건, 겨울철 한정으로 만들어 먹는 유자청이 들어간 유자빵이다. 레몬도 같이 넣어 만든 유자청은 차로 마셔도 맛있지만, 얇게 썰린 유자와 레몬을 통으로 넣은 빵은 설탕이나 알룰로스 또는 꿀을 넣은 맛과는 비교도 안 되게 달짝지근하게 맛있다. 크게 만들든 작게 만들든, 무엇을 넣고 만들든, 원대로 양껏 넣어 만드는 빵빵한 빵은 이제 넘버원 간식으로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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