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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복사 Mar 26. 2024

18화. 우리 사이의 DNA


그와 나는 법적 생일이 같다. 그의 출생신고가 늦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와 나의 백일 때 모습도 똑같다. 흑백과 컬러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와 나는 키도 같다. 그의 허리가 골절되었을 때, 덕분에 진실로 그를 위로할 수 있었다. 봐봐, 키가 같아. 그러니까 뼈가 잘 붙고 있는 거야. 다만, 먹성이 좋아서 몸무게는 왔다 갔다 한다. 적당한 무게로 유지하다가도 한번씩은 마음이 풍족해지고 만다. 그놈의 먹성 때문에 우리는 서로에게 동지이자 적이다. 다한증도 그와 나의 공통점이다. 곳곳에 그라데이션 된 옷과 몸을 공유할 수 있으니, 왜 닮았나 괴로운 것도 옛날이고 다행이다 싶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가 아프면 나도 아프다. 어릴 때는 그게 싫었다. 다분히 어린 마음에서, 아플 때만이라도 보살핌을 가득하게 받고 싶은데, 그는 더 아프니 뭐라 말 꺼내지도 못하고 그가 어디가 아픈지 얼마나 아픈지에 집중해야 했다. 그래봐야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는 작았지만.


특히나 아픔을 공유하는 것은 그야말로 사랑이 아닐까 싶은데, 영문을 모르겠지만 하나 더 신기한 일은, 나도 조금씩 나이를 먹으면서는 그가 아파하는 것을 나도 겪게 된다는 것. 무릎 통증, 마모된 팔꿈치 뼈, 탈모, 흰 머리카락, 발의 같은 위치에 난 사마귀……. 가장 최근의 유사점은 갑자기 생겨난 석회. 뭐가 더 있을 텐데, 당장 생각나는 건 그렇다. 유전자는 어디까지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작년에 그의 약 보관 칸이 부족해서 더 큰 서랍장의 한 칸을 비워 정리했다. 일반의약품(처방전 없이 구매)과 전문의약품(처방전으로 구매)과 의약외품(처방 없이 구매)이 사이좋게 가득하다. 그의 상비약 종류가 몇 개인지 이제는 세지도 않는다. 그러나 내가 그를 생각하는 만큼 그 역시 나를 생각하니, 우리 사이에 비상 상황에 따른 약 처방지가 있는 것은 위급 상황에 대비할 수 있으니 다행이면서도 웃기면서도 슬픈 이야기. 온라인 생필품 구매 및 오프라인 약 구매 대표자로서 그가 명칭을 잊고 그저 지시대명사로 ‘그것이 필요하다!’ 말해도 알아서 알아차리고 명칭을 찾아 확인하는 것부터가 나의 매력이자 역할임을 생각하면 사실 슬플 것도 없이 재밌는 이야기다. 어떻게 알았냐며 함박웃음을 짓는 그는 나의 부모이자 뿌리이자 아픈 손가락. 지시대명사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무고개든 수백 고개든 상관 없으니, 아직도 가장 재밌는 영화는 파란색(아바타)인 그가, 그의 유전자들이 힘을 내어 더 천천히 나이 들어가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가능한 것보다 더 힘을 내어 사라지지 않기를 온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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