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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복사 Mar 19. 2024

17화. 인생은 나누기로 곱하기


나는, 이른바 샌드위치다. 위로 하나 밑으로 하나 형제가 있다. 어떤 때는 첫째같이, 어떤 때는 막내같이, 어떤 때는 진짜 단단히 낑겨 있는 삶은 생각보다 더 고단하다. 사람들은 나를 첫째로 알기도 하고 둘째로 알기도 하고 막내로 알기도 하는 걸 보면, 그 세 위치의 장단점이 은근히 묻어있는 듯하다. 그러나 사이에 끼어 있다고 해서 자동으로 배려와 협동심이 생기는 건 아니다. 특히 나누는 것에 대해서. 그러니까 오늘날의 내가 지니고 있는 배려와 협동심은 아찔한 외줄타기처럼 위태롭게 잃을 뻔하였으나 끈기있게 키워진 교육의 결과다.


나로서는 영문을 알 수 없으나, 그는 태초에 나를 알아보았다. 이 녀석은 욕심쟁이다! 그래서 내게 주어진 교육 키워드는 ‘함께’였다. 다른 형제들은 뭐였는지 모르겠지만, 언제나 그는 내게 ’함께’를 강조했다.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거야. 그러기 위해서는 나눌 줄 알아야 한단다. 나는 네가 가지려고만 하고 나누지도 베풀지도 않는 삶을 살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자, 너에게 콩 한 쪽이 있어. 그러면 어떻게 할래? 내가 먹어! 아니지, 콩 한 쪽을 똑같이 나눠서 같이 있는 사람들과 나눠야지. 콩 한 쪽을 어떻게 나눠! 나 먹을 것도 없겠는데, 그냥 내가 먹으면 안 돼? 그래, 네가 그렇게 말할 걸 알아서 이렇게 알려주는 거야. 나누는 것엔 크고 작은 게 중요하지 않아. 얼마큼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나누는 행위 자체가 중요한 거야. 콩 한 쪽을 보고 나누려고 하는 마음에서부터. 누가 과자를 주면 어때? 좋아! 내가 네 몫으로 탕수육을 하나 더 주면? 너무 좋아! 그래, 누가 무언갈 주면 너무 좋지? 다른 사람들도 같아. 그리고 그렇게 나누다 보면, 그 마음이 다시 네게로 돌아오게 돼 있어. 그래도 나누는 게 싫고 혼자 다 가지고 싶으면, 기억해. 결국, 나누는 것도 다 자신을 위한 거라는 걸.


내가 그 대화를 여적 외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가 나를 어떻게 키웠는지 또한 그 가르침을 내가 어떻게 배우고 실천해 나갔는지 설명이 될 거라 생각한다. 그는 내게 꼭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했다. 먹는 것에 있어서는 특히나. 갖고 있고 싶고 쥐고 있고 싶을수록 베풀라던 가르침. 미운 사람일수록 더 나누고, 나눌 때는 되도록 차등을 주지 말라던 맞춤형 교육.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는 무수한 것 중 하나지만, 대들보와같이 없으면 안 되는 나눔과 배려와 베풂. 이제 와 돌이켜보면, 한 명의 사람을 어떻게 키워내는 건지 참 알 수가 없다. 말한다고 다 듣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기억하는 가르침이 있지만 반면에 새까맣게 잊은 가르침도 많다. 한 번씩 그에게서 통탄스러운 숨을 뱉게 하는 나의 맑은 무지도 나름대로 노력의 결과니, 미운 만큼 더 먹이는 수밖에. 아기도 아니고 어린이도 아니고 청소년도 아니고 어른이라고 하기에도 뭐가 아주 부족한 것 같지만, 하루하루 이렇게 한 사람의 몫으로 먹고 자고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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