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메틱> 16화.
모든 헤르메스적 세계는 닥쳐옴에 근거한다. 닥쳐옴은 경험과 뚜렷이 구분된다.
닥쳐옴은 경험의 연관 관계에 들어맞지 않는다. 그래서 닥쳐옴은 대부분 부정적으로 체험되고, 재빨리 경험적 의미에서 재해석된다. 하지만 그것에 응하는 자는 그것으로부터 하나의 세계를 얻는다. 닥쳐옴을 받아들일 능력이 없는 자는 헤르메스적 과정에 빠져들 수 없다. 꺼리는 것들과 무리한 요구들을 모두 거부하는 자는 아폴론적인 박공의 삼각 벽면에서 썩어야 한다.
헤르메틱을 일상생활 속으로 가져오는 가장 중요한 현존재적 현상들이 닥쳐옴으로부터 파악될 수 있다: 죽음, 사랑, 운명, 창조성, 예술, 감격, 행복, 탄생, 발견, 발명, 꿈, 여행, 재생, 마법, 비밀, 죄 그리고 용서, 특히 사랑과 죽음, 에로스와 타나토스, "무의식"의 모든 현상도 마찬가지다. 물론 여기서 무의식 개념은 아폴론적 개념이다. 즉 "의식"으로부터 파악된, 따라서 곡해하는 개념이다.
"무의식" 현상들은 자신의 고유한 의식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보통(또는 어떤 특정한 사회에서) 의식이라 부르는 것에 홀린 자는 무의식 현상에도 홀릴 수밖에 없다. 자유로운 헤르메스적 인간은 이 개념을 알지 못하며 또 그것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그가 "의식적으로" 살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 것은 비로소 그가 바로 소위 의식을 배제하고 자신의 심층적 경향성들에 자신을 내맡길 때이다.
"의식"보다 깊고 넓은 의식, 그것이 헤르메스적 인간을 알아볼 수 있게 하는 헤르메스적 인간의 특징이다. 그는 자신의 이성을 관여시키지 않음에도, 아니 거리낌 없이 추방시킴에도 불구하고 어떤 형성과정을 아주 명석한 의식을 가지고 따라갈 수 있다. 그럴 수 없는 사람은 창조적 형성의 능력이 없는 자이다. 그는 언제나 동일한 차원에서 동일한 중심을, 결국엔 자기 자신만을 맴돌게 될 것이다.
모든 자연적 과정은 헤르메스적 과정이다. 한 식물종이나 동물종은 창조적인 한 생활방식, 즉 공(共) 창조적인 한 생활방식의 "발견"에서 기인한다. 종의 생활형태는 그 환경세계의 발전 가능성과 공동으로 (즉 공_창조적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창조적 생활방식은 곧 공창조적 생활방식이다]. 종은 자연의 창조적 산물이며, 종이 각기 대면하게 되는 "자연"도 마찬가지로 종이 창조적 산물이다.
자연 안에서 동물로서, 식물로서, 인간으로서 자신을 주장할 수 있기 위해서는, 생명체가 자연을 창조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자연이 내어 줄 준비가 되어있는 측면을 자연으로부터 얻어낼 줄 알아야 한다. 모든 종류의 생명체는 각기 자연에 대한 창조적인 하나의 시각이다. 이는 자연 속에 숨어 있는, 그리고 종의 생활방식을 통해 발현하게 되는 그런 가능성들을 향하여 자연을 꿰뚫어 보는 시각이다. 각 종은 자연을 계속 발전시킨다.
식물은 자신의 성장에 필요한 토대를 스스로 장만한다. 비옥한 부식토는 뒤를 잇는 세대들에게 보다 유리한 조건들을 조성해 주는 죽은 식물들을 기반으로 하여 비로소 생겨난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이와 비슷하다. 동물들은 예를 들어 풀을 다 먹어치움으로써 환경세계를, 즉 그들이 필요로 하는 목초지를 마련한다. 개척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자연은 이미 개척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도 그 스스로에 의해.
인간은 자연을 경작함으로써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보다 정력적으로 활동하는 것일 뿐이다. 인간은 인간적 현존재를, 즉 보다 용이하고 수적으로 보다 많을 뿐 아니라 보다 세련되고 인간화된 현존재를 가능하게 해주는 환경세계를 노동을 통하여 획득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그것은 자의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헤르메스적 발견들을 전제하며, 생성 곡선들을 그리며 완성된다. 이 곡선들은 실패로 나아갈 수도 있다. 실제로 인간의 경우 생태적 적소는 대개 "착취"되고 그럼으로써 종국엔 파괴되고 만다.
하지만 존재하는 모든 종은 일단은 자연의 한 발견의 완성이며 충분한 발휘이다. 그들의 삶의 의미는 그들의 자기 발명과 자기 고양의 헤르메스적 곡선들을 이해할 때만 이해된다. 따라서 자연적 현상은 그것을 "그의 생성 운동에 있어서" 이해할 때 비로소 제대로 이해된다는 테이야르 드 샤르뎅의 말은 전적으로 옳은 것이다.
이 연재 브런치북 <헤르메틱>은 헤르메틱에 대한 필사로 이어가면서 헤르메틱에 대한 묵상을 하고 있다.
헤르메스는 정신분석을 받으면서 꾼 수많은 꿈들 중 유일하게 보인 신의 이름이다.
오랫동안 헤르메스라는 키워드로 찾아 헤매면서 헤르메틱이라는 정신적 지향, 작가적 고향에 도달했다.
헤르메틱은 어둠 속에서의 비상이다. 헤르메스적 근본 경험은 붕괴와 근원적 도약, 발견, 건너감이다.
자신의 고유한 본질을 찾아내고, 끝까지 살아남으며, 스스로 힘을 갖는 존재 방식이다.
헤르메틱에 대해서 가장 잘 정리되어 있는 책이라고 생각되는 H. 롬바흐의 저서 <아폴론적 세계와 헤르메스적 세계 -현실에 관한 사유의 전환: 철학적 헤르메틱>의 내용을 필사. 요약하는 것으로 '존재의 헤르메틱', '예술 작품의 헤르메틱'에 대해 소개하고 정리해 나가려고 한다.
이 정리본이 차후에 어떤 형상으로 드러나든 그 뼈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