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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디너리페이퍼 Sep 13. 2024

나에게 대수로운, 남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그런 것

퇴사 표명은 어렵사리, 하지만 짧게 끝났다. 

그렇지만 시작이었다. 절차에 따라 직속 상사에게 처음 얘기를 했을 뿐이다. 

인사 담당자, 팀장들, 우리 팀과 오래도록 함께 일했던 동료들 그리고 내년을 위해 이미 미팅을 시작한 이들… 아직 직접 말을 꺼내고 나누어야 하는 사람들이 많다. 거기에 인수인계를 위한 업무 목록 정리와 처리, 이를 고려한 퇴사 시점의 확정(이후가 없으니 퇴사일을 먼저 정하지 않기로 했다), 퇴사와 관련된 제반사항에 대한 논의 등도 남아 있다.  


퇴사는 참 특별한 일이 아니다. 

자의든 타의든 직장인 수의 몇 곱절은 되는 수의 퇴사가 존재할 테고, 퇴사와 이직으로 자신의 커리어와 연봉을 성장시키거나 완성시켜 나가는 이를 능력자라며 부러워한다. 또는 노동과 휴식기를 적절히 섞으며 사는 사람들도 의외로 상당히 많다. 어쩌면 하나의 조직에 속해 애면글면하면서 사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세상이다. 나는 어느 즈음에 위치해 있는지 객관적인 척도로 측정할 수는 없지만, 감정적으로는 일과 일로 만난 사람들이 생활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때문에 나에게 있어 퇴사는 지금까지의 나로부터 벗어나는 일이었다. 쓸데없이 비장하다. 


결정 다음으로 가장 어려운 것은 팀 동료들에게 얘기하는 거였다. 나의 사정과는 별개로 미안함이 가장 큰 감정이었다. 이상하게도 미안한 이유가 모두 달랐다. 좀 더 함께하지 못해서, 이끌어주지 못해서, 너그럽지 못해서, 힘들게 해서, 의지해서, 맡겨서.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예의를 차려 말할 수 있는지, 그런 게 있기는 한 건지, 카더라 소식이 아닌 모두에게 직접 얘기할 수 있는지 고민이 되었다.  

시간의 길이와 상관없이, 눅진한 시간의 깊이를 나눈 사이이기 때문일까. 

가족보다 하루의 시간을 훨씬 많이 보낸 사이이기 때문일까. 

이 모든 것이 나의 감상이고 미련이라는 걸 알고는 있다. 나의 동료들 또한 저마다의 감상으로 내 퇴사를 받아들였다. 


퇴사를 사람들에게 얘기하면서 많은 말을 들었다. 

“넌 너어무 예민해” 

“아…”  

“당신이 퇴사할 줄은 몰랐어. 용기 있네”

“휴가 모으고 한 달 휴직해서 충분히 쉬고 돌아오면 어때?”

“수고했다” 

“개인적으로는 응원한다. 하지만 동료로서는 막막하다” 

“그만둘 때 됐지” 

“그래서 뭐 하려고?”

“쉬지 마~ 젊을 때 일 해야지” 

“오래 쉬지 마. 일이 널 필요로 할 때 일 해야지” 

모두가 그들의 진심이었고, 모두가 맞는 말이었다. 

그들의 말을 들으며 

큰 결정을 했다는 작은 만족감과 희열,

할 만큼 한 거 아닌가 하는 작은 반감과 

다시 그에 반하는 막연한 두려움, 

어느 아침엔 집에 늘어져 있을 거라는 후련함을 느꼈다.



다정함이 사라졌다. 

서로를 진심으로 환대하며 일하고 싶었다. 

일을 하면서 내 안에서 개중에 사회성 있는 페르소나를 꺼내 든다. 그게 ‘나’가 된다. 드물게는 그냥 단련되지 않은 나의 모습을 일면 내비치고 싶은 또는 내비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면 조금 더 특별한 인연이 된다. 그런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동료로, 협업자로, 사회인으로서 최선을 다 한다. 하지만 너무 오래, 많이 사용한 한 가지가 닳아버린다. 언제 나달나달 해질지 모른다. 그 전에 재정비를 해야 한다. 

하지만 역시 알고 있다. 내가 했던 일이 유별나지 않았다는 것을. 무슨 일을 하든 감정적 소모와 정신적 스트레스는 필수요소라는 것을 말이다. 아니 일을 하지 않더라도. 


이 갭이어 또는 갭먼스가 그것도 아니라면 이 백수생활이 어떤 결론을 맺어야 하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내 몸과 마음과 생각을 살피고 예측하는 것이 어렵다. 애정했던 연극 아니면 공연 쪽으로 돌아간다부터 완벽하게 새로운 일을 찾는다 까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그 무엇이든 실패는 아니다 믿는다. 


10살의 조카는 물었다. 

“뭐 하고 놀아?”

지금도 가끔 묻는다. 

“나중에 뭐 할 거야? 무슨 일 하고 싶어?” 

“만약에 편의점에서 일할 수도 있어? 다른 데 청소도 할 수 있어? 카페는?

“카페에서 일하면 좋겠다. 그럼 내가 놀러 갈게.”


제발 할아버지 앞에서는 이런 얘기 계속 해서 자꾸 상기시키지 말아 줄래…?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아이에게만 들릴 수 있는 목소리로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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