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상태 만이라도 유지할 수 있게 하셔야 합니다."
지난 해가(2021)가 다 지나기 전인 지난 연말에 내 두통을 치료하는 뇌 신경과를 대진(대리 진료) 다녀온 딸이 내게 중요한 뉴스가 있다며 말을 전했다.
엄마, 교수님이 병원을 옮기신대!! 그리고 두통 클리닉은 운영을 멈출 예정이래. 확정된 건 아니지만 담당할만한 교수님이나 임시로라도 잠시 맡고 있을 만한 임상 강사 정도도 없는 가봐.
교수님은 병원 옮기시고 두통 클리닉 과장님도 이번에 은퇴하셨대. 교수님은 당신이 옮기시는 병원으로 엄마가 따라왔으면 하셔. 엄마를 넘기고 갈만한 의사가 없다고 꼭 데리고 가고 싶으시대.
그런데 지금도 많이 힘들어서 엄마가 못 가고 내가 대진 가는 날이 대부분이고 입원도 신경과에서 Wash out 했는데... 집에서 멀어지면 여러 가지가 문제네. 이제 어쩌지?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은 소식이었다.
https://brunch.co.kr/@oska0109/248
사실 10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너무 많은 병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여러 가지 감당하기 어려운 개인적인 복잡한 일들과 얽히며 병세는 악화일로를 걷게 됐다. 그나마 조금씩이라도 차도를 보이는 듯했던 병들 마저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한두 가지씩 늘어나는 새로운 병들에 많이 지쳐 있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딸아이의 병까지 겹쳐 지칠 대로 지친 마음에 낫고자 노력하던 의지마저 한풀 꺾이면서 하릴없이 누워있는 시간과 날들이 늘어가던 시점에 또 한 번 이렇게 발목을 붙들고 늘어지는 골치 아픈 일이 생기고 만 것이었다.
처음엔 당연히 교수님을 따라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다 딸아이의 병의 진행에 따라 바꾼 약의 부작용으로 혹독한 후유증을 견디며, 아이가 많이 지쳐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며칠간의 생각 끝에 아이와 얘기를 나눴다.
지니야. 두통 클리닉 퇴직하신 교수님이 개인 병원 개원하신다고 그랬지? 거긴 위치가 어디야? 아무리 생각해도 담당교수님 가신 곳은 집하고 너무 멀어. 너 약 먹은 거 후유증이 얼마나 갈지도 모르고 어지러운 것도 여전한데 거기까지 운전하고 다녀온다는 게 상상이 안돼.
엄마도 너무 힘들고. 너 혼자 대진 보낼 거 생각하면 너무 걱정이 많이 되고.
그러니까 퇴직하신 과장님이 새로 개원 한 두통 클리닉에 먼저 가보자. 받아 온 자료는 다 있으니까 우선 자료는 다음번에 주더라도 처방전만 챙겨서 가보자. 얘기 들어보고 자기가 해 보겠다고 하면 담당 교수님한테는 나중에라도 갈 수 있으니까. 지금은 아닌 것 같아. 너도 나도 너무 지쳤어.
내 말을 들은 딸은 두말도 없이 오케이를 날렸고 담당 교수님의 예약 날짜 전에 퇴직하신 교수님이 새로 개원한 병원으로 예약을 잡았다.
부디 현상태 만이라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해 주기를, 자신이 한 번 도전해 보겠노라고, 힘이 돼 주겠노라고 말해주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예약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는 사이 점점 더 심해지는 안면통으로 얼굴의 왼쪽이 점점 수축되어 가는 것이 눈에 띄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욱더 심해지는 돌발통과 안면통을 참아내느라 악물어 버티던 왼쪽 아래의 어금니가 드디어 부서져 버렸다.
두통과 CRPS 돌발통을 앓기 시작한 이레 부러진 세 번째 치아였다.
내가 앓고 있는 여러 가지 병들 중에서도 항상 TOP3 안에 드는 병이 두통이다. TOP의 순위는 그때그때 조금씩 달라지지만 두통이 그 순위에서 빠진 적이 단 한 번도 없을 만큼 두통은 상상을 초월하는 통증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두통을 인지한 이후로 내 삶은 두통이 있는 평범한 날과 두통이 없는 행복한 날로 바뀌어 버렸고 베체트가 생기고 두통을 혈관성 두통이라는 독자적인 병명으로 부르게 됐을 무렵에는 두통이 없는 날은 단 하루도 없는 삶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내게 생긴 두 번째 희귀 난치 질환 인 CRPS(복합부위 통증증후군)가 찾아 온후 두통은 마침내 난치 판정을 받게 되었다.
내가 가져간 여러과의 처방전과 내 병의 전사(前史)를 묵묵히 듣고 계시던 원장님의 표정이 눈치채기 어려울 만큼 살짝 일그러지는 듯 보였다. 혹시나 잘못 본 것은 아닐까 싶어 한껏 기대를 드러내며 원장님의 얼굴을 쳐다봤다.
하지만 혹시나는 무슨! 혹시나가 역시나로 바뀌는 건 순간이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까지 되셨는지.... 제가 은퇴하기 전에 미리 진료를 봤다면 혹시 모르겠지만 사실 지금 같은 경우엔 제가 손댈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네요. 정말 많이 힘드시겠군요. 환자분 진료하던 그 친구 실력 있는 의사니까 조금 힘드시더라도 그쪽 병원으로 옮기시는 게 좋겠습니다. 믿고 퇴직해도 되겠다 했는데 병원을 옮겨 버려서... 아무튼 그 친구는 나름대로 치료계획이 있을 겁니다. 혹시 예약 사이사이에 심한 통증이나 다른 양상이 있어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내원하세요. 원하는 답을 못 드려 죄송합니다.
내가 앓고 있는 병이 많고 낫기 어려운 병도 있으며 평생 고치지 못할 병이 있다는 걸 단 한순간도 잊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의, 그것도 내 병들을 고쳐줘야 할 의사들의 막막함을 바라보는 것이 쉽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러는 순간마다 간신히 견디고 버텨내던 내 절망의 깊이를 들여다보게 된다.
숨이 쉬어지지 않고 막을 새도 없이 쏟아지는 눈물에 아득해지는 정신을 놓치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애를 쓰며 얼마의 시간을 흘려보냈는지 모른다.
하지만 공황 발작으로든 자살충동으로든 이 절망스러운 시간을 흘려보내고 나는 다시 힘든 병에 걸린 아픈 딸을 둔 어미로, 나를 위해 젊은 날을 보내고 병든 콩이를 위해 힘을 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