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실 역은 삼랑진역입니다. 9화
창화는 아침부터 외출 채비를 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등산용 가방을 창고에서 꺼내와 주섬주섬 짐을 싸기 시작했다. 물이 가득 담긴 작은 물통을 가방에 넣고 책 한 권, 보조 배터리도 함께 담았다. 평소에는 잘 바르지 않는 선크림을 얼굴에 꼼꼼히 바르고, 또 평소에는 잘 쓰지 않는 모자까지 야무지게 쓰고 집을 나섰다.
“어디… 가니?”
“네. 어디 좀 갔다 오려고요.”
“그래. 저녁 먹기 전에는 올 거지?”
“아마도요. 혹시 늦게 되면 전화할게요.”
엄마는 창화가 채비하는 모습을 보고 처음엔 등산이라도 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청바지에 단화를 신고 나가는 모습을 보고 등산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어디 가는지 묻고 싶었지만, 꾹 참고 잘 다녀오라는 얘기만 했다.
창화는 집을 나서 지하철역으로 걸었다. 이제 봄이 깊어져 햇빛이 꽤나 따갑고 공기도 후덥지근했다. 창화는 서울에서 내려오기 전, 타고 다니던 차도 팔아 치웠다. 막상 차를 팔고 나니 괜히 팔았나 싶은 후회가 잠깐 밀려왔었는데, 걷기와 지하철에 익숙해지니 팔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를 팔고 걸으니 주변 환경이 눈에 들어왔고, 지하철을 타고 다니니 책을 읽을 수 있었고, 핸드폰으로 확인해야 할 것들을 편하게 확인할 수도 있었다.
서울에서도 진작 이렇게 다녔으면 더 편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얻을 수 있는 편리함보다, 차가 없다는 것만으로 경제력을 평가받는 불편함이 더 크기에 몸보다 마음이 더 불편했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창화는 부산역에 도착하자마자 지하철을 빠져나와 역 입구로 걸음걸이를 재촉했다. 부산역사 안에 도착한 창화는 앱으로 기차표를 열어 플랫폼을 확인했다.
‘부산-> 삼랑진’
창화의 목적지는 삼랑진역이었다. 창화는 플랫폼 번호를 확인한 후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무궁화호 기차는 이미 들어와 있었고 창화는 기차에 올라 자리를 찾아 앉았다. 출발 시간이 되자 기차는 서서히 역을 빠져나왔다. 비록 40분 남짓이면 닿을 거리이지만, 창화는 이상하게도 멀리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기분이 묘하게 설렜다. 창화에게는 정말 오랜만에 떠나는 여행일 뿐만 아니라, 생전 처음 가 보는 곳이라서 더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미정이 들려줬던, 엄마가 품고있던 삼랑진이라는 동네에 대한 로망이 창화도 모르게 생겨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날의 야경같은 대화가 여전히 창화를 맴돌고 있었다.
창화는 마치 서울에서 내려오던 기차에 다시 오른 것만 같았다. 비어있는 옆자리를 보자, 미정과의 첫 대화가 다시 창화의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사실 아까 전화 온 친구가 현주라고, 저랑 같은 고향 고등학교 친구예요. 현주는 공부를 워낙 잘해서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갔고, 졸업 후 바로 대기업에 들어갔어요. 그래서 현주랑은 고등학교 졸업 후부터 자주 못 봤어요. 전 뭐, 좋은 대학에 갈 성적도 안 됐고… 그냥 빨리 졸업장만 따서 돈 벌자는 생각에 집에서 다닐 수 있는 전문대에 들어갔어요.”
창화가 가리킨 큰 가방은 비단 미정의 짐만 들어있던 것이 아니었다. 미정의 시간, 생각, 감정들. 이 모든 것이 가방 안에 꾸역꾸역 들어가야 했기에 큰 가방이 아니면 안 됐던 것이다. 그 꽁꽁 싸매 진 가방을 창화가 알아봤고, 미정 스스로 가방을 열어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던 거 같아요. 저는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하는 현주를 동경했어요. 방학 때면 잠깐 삼랑진에 내려와 현주가 들려주는 서울 생활 얘기를 너무 재미있게 들었거든요. 현주는 항상 저에게 나중에 꼭 서울에 와서 같이 살자고 했죠.”
창화는 미정의 말을 들으며 또 자신의 얘기를 듣는 것만 같았다. 창화도 부산이라는 대도시 출신이지만 서울에서는 항상 지방 출신으로 불렸고, 지방에서 대학을 나왔다는 자격지심이 자신을 더 혹독히 대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현주가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들어가 일을 몇 년 하더니, 대출을 받아 방 두 개짜리 집을 구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저에게 서울로 올라와 같이 살자고 했어요. 그 말을 듣자 정말, 너무 가고 싶었지만, 문제는 직장이었죠. 그래서 현주도 제 직장을 같이 알아보며 엄청 많이 도와줬어요.”
미정은 립스틱도 바르지 않은, 투명한 작은 입으로 사과를 오물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현주의 도움으로 직장을 찾았어요. 비록 계약직이었지만, 열심히만 하면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을 거라는 현주의 말에 용기를 얻어 서울로 올라갔어요. 그때부터 제 서울살이가 시작된 거죠.”
창화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정의 말을 듣고 있었다. 창화는 미정의 이야기를 들으며 쓰고 있는 안경을 고쳐 쓰기도 했고 입을 삐죽 내밀기도 했다. 미정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초반에는 현주랑 집도 꾸미고 여기저기 서울 구경도 다니면서 너무 재미있었어요.‘서울에 오길 잘했다.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았죠. 그런데 문제는 제 졸업장이었어요. 우리 동네에서는 큰 문제나 걸림돌이 되지 않았던 제 전문대 졸업장이 서울에서는 항상 문제가 되더라고요.”
창화는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이 팔짱을 끼더니, 왼손을 자신의 왼쪽 뺨에 가져다 대며 골똘히 생각하는 눈치였다.
“저는요. 서울에서 일하면서 정규직까지 바라지도 않았어요.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 생각하고 일찌감치 마음을 비웠어요. 그러니까 속이 편해지더라고요. 그런데 계속 마음에 걸려 비워지지 않는 게 바로 차별이었어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회사를 오래 다녀도 저는 승진이라는 게 없더라고요. 그리고 회사에서 직원들한테 주는 선물이 생기면 저를 비롯한, 저랑 같은 처지인 사람들은 쏙 빠져요. 가끔은 회식 같은 자리에서도 빼요. 우리한테는 회식 예산이 없다나… 안 가도 되는 건 오히려 좋았지만요.”
미정은 큰 가방에 담겨있는 많은 짐처럼, 그동안 마음속에 켜켜이 묵혀 놓았던 짐들을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기차 안에서, 그것도 오늘 처음 본 창화 앞에서 쏟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창화는 이 짐들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어머, 제가 너무 말이 많았죠? 오늘 초면인분한테 제가 제 얘기를 너무 많이 한 거 같네요. 지루하시죠?”
미정은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만들며 창화의 눈치를 살폈다.
“아뇨. 미정 씨는 그 책 보다, 그 작가보다 그리고 적어도 저보다는 오히려 더 재미있는 사람 같아요.”
창화가 미정의 책 쪽으로 턱을 삐죽 빼며 말하자 미정은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까 미정이 창화에게 한 말을 그대로 돌려받은 것이다.
“그럼 저나 창화 씨는 적어도 이 재미없는 책보단 낫네요.”
둘은 동시에 웃고 있었다.
“그런데 창화 씨는 집이 부산이에요?”
“네.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랐어요.”
“와! 전 부산도 좋던데. 부산은 삼랑진이랑 가깝기도 해서 어릴 때 자주 놀러 가곤 했어요.”
창화는 미정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래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저도 미정 씨처럼 부산을 뜨고 싶다는 생각만 했어요. 그래서 어떻게든 서울에 취직하자는 생각만 했거든요. 뭐, 지금 이렇게 다시 돌아가고 있지만…”
“그럼 지금 저처럼 아예 부산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네. 이제 좀 쉬려고요.”
“그런데 왜 짐 가방이 없어요?”
“그냥… 다 버리고 다 두고 왔어요. 가져가 봐야 짐만 될 것 같아서…”
창화는 선반 위에 올려둔 검은색 크로스 백을 눈으로 올려다보며 말했다. 미정은 짐만 될 것 같다는 창화의 말에 또 입 모양을‘아…’로 만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같은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면 다 같은 대우를 받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건 제 순진한 착각이었더라고요. 회사에 다니면 다닐수록 저는 마치 미운 오리 새끼 같은 기분이었어요. 그런데 또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지만 미운 오리 새끼가 한 마리만은 아니라는 거예요.”
본의 아니게 미정의 큰 가방을 열어 본 창화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가방을 열어 보이기 시작했다.
“공채 알죠?”
“공채 신입사원 모집할 때 그 공채요?”
“네. 맞아요. 그 공채. 전 회사 공채 출신이 아니었어요. 회사에 결원이 생겨서 수시 채용을 했는데 그중에 제가 된 거예요. 그때까지만 해도 전 회사에 들어가기만 하면 다 같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공채가 아니면 거의 절반은 외부 사람 취급을 받더라고요.”
“네?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아니… 같은 회사에서 같은 월급 받으면 그게 같은 회사 사람이지 그런 걸 따져요? 저야… 뭐, 월급도 아예 그 사람들이랑 달랐고 직급도 달랐지만, 창화 씨는 아니잖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사람들 생각은 다르더라고요. 공채는 기수가 있어요. 공채 몇 기, 몇 기… 이런 식으로. 그리고 공채들끼리는 비공식적인 사내 모임도 따로 있어요.”
“와… 정말 유치하다… 아니 무슨 애들도 아니고 회사에서까지 그런 거로 사람을 갈라요? 그럼 공채가 아니면 뭐, 사채라는 거예요? 참…. 사람들 못됐다.”
“하하, 사채… 그러고 보니 공채의 반대니까 사채겠네요. 차라리 사채라는 이름이라도 있으면 낫죠. 그런 거도 없어요. 그냥 정체성 불분명한 어중이떠중이 이런 식이에요. 저 같은 사람도 그렇고 경력직으로 이직을 해서 온 사람들도 그렇게 사채 취급을 받아요.”
창화는 낮은 동네 뒷산같은 눈으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쩌면… 어른들이 애들보다 더 유치한지도 모르죠… 자기랑 다르거나 비위를 조금만 거슬리게 하면 따돌리고, 괴롭히고… 자기는 회사에서 그러고 있으면서 애한테는 학교에서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지내라고 어른 행세를 하겠죠…”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도 이런 거 좀 없어져야 해… 어느 고등학교 몇 회 졸업생, 어느 대학교 몇 학번 이런 거요. 무슨 기수니, 몇 회니 하면서 자기들끼리 줄 세우고 집단 만들고. 정말 왜 그러는지 모르겠네요.”
미정은 창화의 말에 맞장구를 치면서 갑자기 드는 생각이 그도 자신과 크게 다를 게 없다는 것이었다. 초대졸이라는 이유로 회사에서 다른 사람 취급을 받았던 자신과, 공채가 아니라는 이유로 어중이떠중이 사채가 된 창화. 이 얘기들이 남 얘기 같지 않았기에, 미정은 창화의 이야기에 점점 더 빠져들었다.
“그런데 또 막상 이런 생각을 한 적도 있어요. 만약 내가 공채라면 난 나 같은 사람을 어떻게 대했을까. 하지만 나중엔 이런 생각조차 안 하게 되더라고요. 어차피 이 사실은 절대 바뀔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전… 사채인 저는, 일을 더 열심히, 더 많이, 더 잘하려고 했던 거 같아요. 잘하려고… 했는데… 정말… 사채 갖다쓰듯 써 버리고 갚진 않더라고요.”
“네? 사채를 써요? 누가요?”
미정은 화들짝 놀라, 눈을 끔뻑거리며 창화를 쳐다봤다.
“아! 아뇨! 아뇨! 그게 아니라… ”
“도시락, 커피 있습니다. 생수, 컵라면 있습니다.”
“어? 여기요! 미정씨, 뭐 마실래요?”
“네? 아… 전 물이요.”
때마침 다가오던 간식 카트를 멈춰 세운 창화는 생수 두 병을 사 미정에게 한 병을 건네주며 말했다.
“암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같은 사채한테 아무 편견 없이 대해준 게 아까 저한테 전화했던 그 친구예요.”
자신도 모르게 나쁜 기억 알람이 켜지려던 창화는 급히 알람을 끄고 멋쩍은 억지 웃음을 보였다. 눈치가 빠른 미정은 더 이상 묻지 않았고, 창화의 전화했던 친구라는 말에 자신의 친구 현주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미정은 현주가 결혼하기 전까지 함께 살았지만, 그녀가 마냥 편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현주와 미정은 같이 살며 집에서 술자리를 종종 하는 편이었는데, 그럴 때면 현주는 미정을 독려하고는 했다.
“미정아, 절대로 기죽지 마. 내가 봤을 때 너희 회사에 너만큼 일 잘하는 사람 별로 없어. 그러니까 절대 기죽지도 말고 포기도 하지 마. 넌 지금 이대로만 하면 분명 그 사람들보다 더 인정받을 거야.”
처음엔 이런 현주의 독려가 듣기 싫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독려가 반복될수록 독려는 점점 독설처럼 느껴졌고, 듣기 불편해졌던 것이 사실이었다.
“지는 내 입장이 안 되어 봤으니 그렇게 쉽게 말하지…”
“네?”
창화는 미정의 입속말을 듣자, 낮은 산등성이 끝자락을 치켜뜨며 미정을 바라봤다.
“아! 죄송해요. 혼잣말이에요. 방금 그 경식이라는 친구분 얘기가 나오니까, 제 상황이 떠올라서…”
“아, 네. 전 또…”
“사실 아까 얘기한 현주라는 친구요. 그 친구도 항상 저한테 괜찮다, 잘 될 거다, 버티면 된다. 뭐 이런 말을 자주 늘어놨거든요. 그런데 나중에는 이런 말이 점점 듣기 불편했어요. 자기는 제 상황이나 입장이 되어 보지도 않았으면서, 다 이해하는 것처럼 말하는 거. 그거도 계속 들으면 아무리 친구라도 짜증이 나요. 물론 현주가 좋은 친구고 악의가 없다는 건 잘 알지만, 막상 계속 듣고 있으면 불편하고… 그런데 더 짜증 나는 건 뭔지 알아요? 결국, 이걸 불편해하는 내가 못났다고 마무리가 되니까 더 짜증 나요. 그렇지 않아요?”
창화는 갑작스러운 미정의 질문에 오른손 주먹을 마이크처럼 입에 갖다 대며 ‘흠!’하고 눈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사실 저도 경식이가 그런 적이 없지 않아요. 경식이는 서울에서 대학을 나오고, 공채로 입사해서 사내 인맥이 아주 탄탄했어요. 사내 동문 모임, 동기 모임, 공채 모임… 전 그 어디에도 낄 수가 없었어요. 공채가 아니라서 동기도 없고, 지방에서 학교를 나와 동문 모임을 할 정도의 인원도 없고, 당연히 공채는 아니고. 그래서 그런 경식이를 볼 때면 부러운 건 사실이었죠. 경식이가 저도 그냥 자기네 동기 모임으로 들어오라고, 알아서 다 만들어주겠다고 해도 전 거절할 수밖에 없었어요. 경식이는 저에 대한 호의지만, 제가 경식이를 곤란하게 만들 게 뻔하니까요.”
미정은 창화의 이야기를 들으며, 서울에 두고 온 이 남자의 가방에는 애초부터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제11회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최종심 선정작
소설 <내리실 역은 삼랑진역입니다> 2024년 12월 11일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