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허락된다면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
초여름 천변
흔들리는 커다란 버드나무를 올려다보면서
그 영혼의 주파수에 맞출
내 영혼이 부서졌다는 걸 깨달았던 순간에 대해서
(정말) 허락된다면 묻고 싶어
그렇게 부서지고도
나는 살아 있고
살갗이 부드럽고
이가 희고
아직 머리털이 검고
차가운 타일 바닥에
무릎을 꿇고
믿지 않는 신을 생각할 때
살려줘, 란 말이 어슴푸레 빛난 이유
눈에서 흐른 끈끈한 건
어떻게 피가 아니라 물이었는지
부서진 입술
어둠 속의 혀
(아직) 캄캄하게 부푼 허파로
더 묻고 싶어
허락된다면,
(정말)
허락되지 않는다면,
아니,
부서질 듯 아팠어도 난 살아있다. 난 아직 살아있어. 차라리 꺼내고 싶을 정도로 아팠던 심장은 멀쩡히, 1분에 70회 이상의 움직임을 통해 피를 내보낸다. 거울을 보고 내가 조각난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단지 조각난 거울이었어. 단단한 아픔에 비해 내가 너무 물렁해서 눌려서 풍선처럼 부풀다 터져버리는 것이 아닐까 싶었는데, 나도 생각보다 단단했나 보다. 눈이 온다. 버드나무에도 눈이 쌓이고, 내 마음에도 눈이 쌓이겠지. 하지만 내 마음에 쌓인 눈은 강가에 내리는 눈처럼 곧바로 녹아버릴 것이다. 쌓일 틈도 없이 스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