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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 Oct 29. 2020

가장자리를 경험하다

가장자리를 탐험하다-3

모난 것과 둥근 , 프로필이 단순한 것과 복잡한 , 경계가 뚜렷한 것과 모호한 .

사물의 가장자리를 관찰하다 보면 다양한 형태와 방식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손으로 만지거나 눈으로 봄으로써 사물의 가장자리를 경험할 수 있다.


장소의 가장자리로 이동해보자.

건물의 , 건물과 건물 사이, 건물의 꼭대기, 다리의 가장자리, 길의 가장자리.

채워진 모든 것의 나머지, 채워진 것 사이를 걸으며 가장자리를 경험할 수 있다.


 여름 볼로냐의 회랑을 지날 

페트라의 사막 협곡을 지날 

파리의 라데팡스를 지날 


우리는 비움과 가장자리의 장소성을 경험하게 되고, 그곳을 지남으로 해서 각기 다른 의식과 감정을 갖게 된다.



#6. 비움의 가장자리

BGM # Happiness Does Not Wait | Olafur Arnalds

장소에 딱 맞게 각색된 작은 광장이 하나 있다. 광장과 길이 만나는 길목에 커다랗게 비어있는 가장자리를 마주치게 된다. 그곳에서 ‘비움’은 배경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말하고 쓸모를 보여준다.

도시 풍경 속에서 주인공이 아닌 배경을 자처하는 존재, ‘비움’에 관한 이야기다.

실체가 없는 비움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비움의 가장자리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그 가장자리의 주변은 어떠한지, 어떤 과정을 거쳐 그 주변을 통과하는지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확실한 건 우리는 그 가장자리를 통해 비움을 시각적으로 인지하고 가장자리 주변을 통과함으로써 비움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간다는 행위 안에서 시간과 함께 비움을 경험한다.

이곳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수만큼
아니 그 이상의 행위로 가득 차
비움은 비워지지 않은 채움의 장소가 된다.



#7. 건물의 가장자리, 길의 가장자리

쇼윈도, 아치, 캐노피, 입구 계단, 어닝, 교통표지판, 간판, 입구 마당, 홈통, 보도, 우수맨홀.

입구와 관련된 모든 것이 길 위에 있다. 건물로 들어가고 나오고와 관련된 장치, 길을 걷는 보행자와 관련된 것, 도시가 잘 작동하게 해 주는 시스템, 이 모든 것이 입구 주변에 늘 곁을 따라다니며 일상에 '딱' 붙어 있다.

입구는 길과 건물이 만나는 최초의 경계이면서 각자에게 서로 가장자리다.

건물의 성격에 따라 둘이 만나는 경계는 단순하기도, 복잡하기도 하다.

Via Fontebella, Assisi, Italy _ BGM # 13 | LANY

자 이제 마침내 입구로 들어서기 바로 직전의 순간에 도착한다. 입구를 둘러싼 행위와 장치들이 어떤 의식을 거치게 하듯이 입구는 건물의, 집의 중요한 과정에 놓여있다.


집으로 들어간다’, ‘안으로 들어간다 
의식을   있는 아주 잠깐의 장소다.

입구 주변에는 소유와 영역에 대한 태도가 드러나기도 한다.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영역을 구분 짓고 보호받고 싶어 한다. 반대로 드러내고 싶고 오픈 마인드를 표현하고 싶어 하기도 한다. 사람들의 이중적인 심리에 균형을 맞추는 것이 길과 집이 만나는 경계에서 가장 중요하다.

계단, 램프, 난간, 담은 경계에서 밸런스를 유지하는 키맨(keyman)이 되고, 문의 크기, 형태, 디자인은 그 과정에서 가장 적절한 태도로 존재한다.

경계의 디테일이 모두 결정되면 이제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는 첫 발을 내딛는다.


'끽... 뚜벅...'



#8. 국경이라는 경계

프랑스에 살지만 독일 사람, 독일에 살지만 프랑스 사람.

우리에게는 일상적이지 않지만 국적과 인종이 다양하게 섞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태어나 자란 곳이 아닌 다른 나라에 정착하고 사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가족 구성원의 국적이 모두 다른 경우도 있을 만큼 자유롭게 국경과 인종의 벽을 넘는다. 그런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물론 그로 인한 문제들이 봉인을 풀고 툭툭 튀어나와 톨레랑스에 대한 믿음을 와장창 깨버리기도 한다. 그들은 스스로 다름에 대한 이해와 관용을 잘 실천하고 살아간다고 믿지만, 현실에서의 다름은 완벽히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로 남게 되는 듯하다. 그럼에도 그들은 끊임없이 서로 섞여가며 살아간다.

한 곳에 머물러 정주하면서 사는 것이 당연한 우리에게 낯설어도 너무 낯선 풍경이다. 바다에 의해, DMZ에 의해 경계가 명확하게 구분 지어진 땅에 사는 우리는 그 자유로움과 혼돈의 공존을 알지 못한다. 경험해보지 못했으니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그들과 우리의 국경이라는 경계에 대한 인식은 다를 수밖에 없고, 이토록 극과 극의 모습을 보여준다. 근 미래에 그 경계가 점점 모호해져 우리에게도 당연한 풍경이 될지도 모를 일이지만.



#9. 세상의 끝

가장자리의 가장 마지막, 세상의 끝으로 가 본다.

한쪽 방향으로 계속 걷다 보면 언젠가 땅의 끝에 다다른다.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장소들을 찾아가 보더라도 그것을 증명해주는 것들이 미약해 세상의 끝이라는 인식을 움켜쥔 채 서 있을 뿐이다.

땅의 끝은 바다의 시작으로 이어지고, 한참을 헤쳐나가다 보면 바다의 끝이 다시 땅의 시작이 된다. 그렇게 또다시 걷다 보면 처음 한걸음을 내딛기 전 바로 그 자리에 되돌아오게 된다. 광활한 땅의 마지막의 마지막 하지만 그것은 시작이기도 하고 다시 그 자리이기도 하다.

세상의 끝을 가로가 아닌 세로, Y축으로 바라보면 상대적인 관점을 발견하게 된다.

산 정상, 옥상, 계단 길의 끝, 전망대와 같은 어딘가의 꼭대기, 바다 밑바닥, 수영장 바닥, 물이 고이는 곳, 협곡 바닥 같은 어딘가의 가장 밑.

다시 X축으로 좀 더 기준을 좁혀 보면 나라의 가장자리에 국경이, 집의 가장자리에 담이, 방의 가장자리에 창이 있다. 이곳에서의 가장자리는 두 개의 얼굴로 모호하게 양쪽에 발을 담그고 있다.

가장자리는 그렇게 모호하고 상대적이고 이중적인 모습으로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




여기에서  서루(Paul Theroux) 여행기에 실려있는 국경에 대한 경험에 기반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너머를 보면서 나는 내가 다른 대륙, 다른 나라, 다른 세계 쪽을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기에는 소리들이 있었다. 음악 그리고 음악만이 아니라 날카로운 목소리와 차들의 경적소리도 들렸다. 국경은 실재했다. 그곳 사람들은 다르게 일을 한다.”


가장자리의 땅들은 가장 마지막 또는 앞에 서서 그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가장자리의 숙명을 받아들이고 적응해나가는 과정을 거치며 그렇게 중심과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어딘가에 속해있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것처럼 멀찍이 거리를 두며 고립되기도 하고, 때로는 경계를 넘나들며 치열하게 관계를 주고받기도 한다.

그렇다. 여기도 저기도 아닌, 여기이기도 저기이기도 한 경계에 놓인 가장자리는 늘 이중적인 모습으로, 미스터리 한 분위기로 세상 어디든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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