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치 운동치가 도전하는 수영일기 3탄 발차기를 아세요?
나의 몸상태와 수영 실력과는 상관없이 성인반 수영의 진도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수영 한 달 차, 이제 우리 레인은 배영 연습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자유형을 지나 배영을 배우는 기분은 참 좋았다. 비록 나의 진짜 실력은 그게 아닐지라도 나는 계속 무언가를 해나가고 있는 가운데에 있었기 때문이다.
배영의 제일 좋은 점은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실 수 있다는 점이다. 들숨 날숨 속에 옆에서 날아오는 물보라만 잘 피해 간다면 수영장 공기가 이렇게 좋았나 싶은 착각에 빠질 정도로 수영장 공기를 내 폐 깊숙이 들이마실 수 있었다. 샤워실에서 수영장으로 올라오면 항상 코를 찌르던 소독약 냄새도 이제는 상쾌하게 느껴질 정도로 익숙해진 수영장의 공기를 즐길 여유가 제법 생긴 마법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몸치 운동치인 나는 학교 다니는 내내 늘 달리기가 꼴찌였다.
그 시작은 초등학교 1학년 운동회 달리기 날부터였다.
나의 마음은 폴짝폴짝 앞을 향해 무한으로 힘차게 달려 나가고 있는데 정작 내 몸은 앞으로 나가는 속도가 내 상상보다 더디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앞서가던 친구들과의 간격은 점점 더 벌어져 가고 결국 나는 꼴찌로 도착지점을 통과하곤 했다.
하지만 여기서 더 재미난 사실은 운동장에서 뛰면 뛸수록 나는 그렇게 웃음이 났다. 트랙 주변을 삥 둘러 서서 사람들이 모두가 "파이팅, 파이팅"
하고 외칠수록 나는 그 사람들과 일일이 눈이 마주쳐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빠르게 달리지도 못하고 있던내가 그 사람들과 아이컨택할 시간이 있다니 뭐 할 말 다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고 앞으로 계속 달려 나갔다. 하지만 달리면 달릴수록 내 다리는 내 마음과 다르게 점점 힘이 풀렸다. 더 악착같이 달리고 싶었으나 내 몸은 이미 내 머릿속과는 다른 현실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운동회가 끝나고 나서 아빠는 내게 웃으며 늘 말했다.
"몸도 날렵하고, 재빠르고, 발도 가느다란데 왜 달리기는 잘 안되는 걸까?"
반에서 가장 작았지만, 가장 민첩하게 생긴. 거기다 칼발을 가진. 그야말로 생쥐 같은 움직임을 가졌던 나에게 아빠는 왜 달리기만 하면 안 되는 것일까에 대한 반문을 나에게 했다. 저도 알고 싶은데요. 아버지, 나도 몰라요.
내가 정말 아, 나는 그냥 운동치이구나 느낀 건 중학교에 가고 나서였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아빠 말만 믿고 그래, 나는 재빠르니까 연습하면 되겠지 뭐 하는 희망 속에 살았다면 내가 정말 현실을 깨달을 수 있었던 건, 바로 중학교 체력장 시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뭐 대수였을까 싶도록 작은 일이었는데, 그땐 그게 전부였다.
지금도 생각나는 나이 많은 흰머리가 덥수룩하시던 남자 체육선생님은 평소 짜증이 많았다. 나이도 많고 모든 게 지겹고 내 말 차례가 돌아오지 않도록 재잘거리는 여중 1학년 망아지 같은 아이들 앞에서 선생님은 늘 짜증스러운 말투로 아이들을 대하셨다. 그러던 그 체육선생님이 체력장시간 내 달리기를 보시고는 짜증도 아니고 화도 아니고, 너무나 허탈히 웃으며 하시던 그 한마디.
"그만 뛰어라. 너는 더 잴 것도 없겠다"
나의 기록은 100M 24초였다.
우사인 볼트는 100M를 두 번 뛰고도 남았을 시간이 기록으로 나왔으니 나도 할 말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으며, 내 머릿속은 여전히 날아가는 중이었는데. 이제는 나는 언젠가는 잘 뛸 수 있겠지 라는 희망을 내려놓고 나는 운동과 거리가 먼 사람이란 걸 받아들여야 하는 시점이었다.
다음 해에도 그다음 해도 고등학교 시절까지 나의 체력장 시간은 늘 최악이었다.
그러던 내게 큰 맘먹고 시작한 수영이 새로운 시련이 다가온 것이다. 바로 배영. 자유형의 숨조차 쉬기 힘든 고비를 넘겼다면, 배영에서의 새로운 문제는 바로 발차기였다.
자유형 발차기는 뭐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고 물장구를 치던 물보라를 치던 힘으로 물을 튕겨가며 발로만 차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자유형에서의 발차기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배영 발차기를 시작하니 말이 달랐다. 난 분명히 힘을 다해 세게 힘껏 말을 차고 있는데 물도 엄청 튕기면서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는데 내 몸은 점점 가라앉고 내 자리는 그대로였다. 킥판을 내 생명과도 같이 품에 소중히 앉고 해달과도 같은 자세로 물 위에 둥둥 떠올라 발을 아무리 힘껏 차도 도무지 내 몸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뒷차례 사람 뒤통수가 내 발등에 까이는 순간까지 온 것이었다.
수영강사 1: 회원 30명의 수영 강습에서 선생님의 원포인트 레슨 따위의 친절과 아량은 기대하지 않았으니 수영 강사가 나에게 직접 꼬집어 말해주지 않아도, 나의 실력은 그저 내 순서를 기다리며 주변을 한번 둘러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 순간의 나의 실력은 어릴적 달리기 하던 시간의 그때처럼 내 몸은 온 힘을 다해 달리고 있고, 내 머릿속은 이미 나는 날아가고 있는 상상 속에 있지만, 내 몸은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던 달리기 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머리로 이해한다는 것과 그것을 몸으로 실행해 나간다는 것에는 상당한 갭차이가 있었다.
그것을 줄이는 그 운동센스. 그것이 나에게는 아직도 모자랐던 것이다.
내 몸을 쓰고 있는데 내 몸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배영 발차기. 어떻게 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