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반응
엄마는 한숨 쉬는 순간이 많아졌고, 난 그런 엄마와 아빠의 표정을 살피는 날이 많아졌다.
밥 먹을 때 갑자기 찾아오는 침묵은 나의 숨을 막히게 했다.
그리고 찾아온 그날.
아빠가 아빠의 병을 마주하게 되었다.
병원에서 돌아온 엄마 아빠는 과일을 먹자며 나를 탁자로 불렀다.
“아빠의 병은,,, 긴 싸움이 될 거야.
약을 먹으면 증상이 많이 좋아질 건데, 약을 오래 먹다가 효과가 없어지는 순간도 올 수가 있대.”
나는 덤덤하게 들었다.
그렇지만 흐느끼는 엄마와 아빠 눈에 고이는 눈물을 보면서도 덤덤하기는 힘들었다.
“아빠가 바로 아픈 게 절대 아니야,,,,,
약 먹으면 좋아질 거고, 노력하면 오래오래 건강할 수도 있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나도 계속 알아보았기 때문에 엄마가 듣기 좋은 말만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보,,,, 이제 약 잘 챙겨 먹고 운동 꾸준히 하면 돼. 너무 걱정하지 마. 걷는 거 조심하고, 병원 열심히 다니면서 상태 보면 되는 거야.”
아빠의 눈물에는 억눌렀던 슬픔과 착잡함도 보였다.
아빠는 말했다.
“이건 어쨌든 우리 가족에게 찾아온 우환이다. 그렇지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잘 이겨내 보자.”
그때 나도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아빠도 이 병이 처음이지만, 우리도 처음이야. 아픈 게 있거나, 불편한 상황이 있으면 꼭 우리에게도 알려줬으면 좋겠어.”
이건 평소의 아빠의 과묵한 성격을 어려워했던 내가 언젠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그러나 아빠가 파킨슨병에 걸린 이상 꼭 짚고 넘어가야 했던 부분이다.
나는 이 집의 장녀니까.
우리 집은 아직 병을 마주할 날이 많이 남아있었다. 알려야 할 사람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중엔 우리 막내. 내 동생도 있었다.
이제야 등장한 동생은 현재 기숙사생활로 일주일에 이틀정도 집에 머물고 있다. 그래서 가족 소식이 좀 늦은 편이다.
이 소식만큼은 최대한 미루고 하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는 걸 모두가 안다.
엄마는 나보고 동생에게 말하라고 했다.
최대한 가볍게. -> 너무나 어려운 지령이었다.
난 잘 쉬고 있는 동생을 내 방으로 불러 최대한 쫙 핀 얼굴로 아빠의 확진을 알렸다.
동생의 반응은 너무나도 무덤덤했다.
이미 엄마한테 얘기를 들었나 싶을 정도였다.
물론 눈물바다를 기대한 건 아닌데, 이 정도의 반응은 나 역시 반응하기 힘들었다.
그렇구나 느낌으로 대화를 마친 나는 동생의 기분을 살폈다.
“괜찮은 거 맞지?”
“응 “
“진짜?”
“응”
“음… 앞으로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고.”
“알았어”
“응… 그래. 근데 아빠 손 떠는 거 알고 있었어?? “
“아니”
“응… 그래. 아빠 약 먹고 몸 상태 좋아질 때 여행 같은 것도 자주 가면 좋을 거 같아. 우리가 자주 말 꺼내자. 너도 괜찮지?”
“아아아 알았다고!!! 왜 자꾸 물어봐.”
지속되는 나의 물음에 지친 듯 짜증을 내며 말했다. 난 당황했지만 나가는 듯한 동생이 커튼 뒤에 숨어 눈물을 닦아내는 모습을 보고 철렁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왜 너는 그 정도밖에 감정을 쏟지 않을까.’
‘나는 왜 너랑 이렇게밖에 대화를 못할까.’
‘너는 왜 나보다 먼저 어른이 된 거 같을까.’
우리는 눈물을 나누지도, 격려의 말도 나누지 않고 자러 갔다.
그냥 미안했다.
이렇게 통보하듯 전할 수밖에 없는 것에.
그 이후로 내 동생의 눈물은 볼 수 없었다.
약한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
.
.
완벽주의자인 우리 아빠.
술, 담배도 일찍이 끊었던 건강한 가장.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병이다.
어쩌면 나에게도 찾아올 수 있다.
난 이 병과 친해질 거고,
내게 찾아온 이 현실과도 자주 인사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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