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뜨거웠음의 증거
처음 만났을 때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가 열정적으로 사랑했으며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되고서야 한 결혼이, 다시 말해 스완의 마음속에서, 그의 삶을 함께 보내고 싶어 그토록 열망하고 절망했던 존재가 죽고 나서야 한 결혼이 바로 이런 사후의 행복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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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스완 부인을 방문하는 일을 완전히 그만두었다 그런데 이 뒤늦게 덧붙은 이유란, 내가 질베르트를 더 많이 잊었기 때문이 아니라 되도록 빨리 잊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감정이 약해지고 그저 하나의 추억이 되고 나면, 새로운 요소가 우리 마음에 들어와 그 감정과 싸워서 점점 더 영혼의 자리를 빼앗고 드디어는 영혼의 모든 자리를 차지한다. 난 이것이 사랑을 죽이는 유일한 방법임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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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는 바로 당신이에요."
아마도 이런 완벽한 일치감 속에, 현실이 우리가 오랫동안 꿈꾸어 오던 것에 덧붙고 겹쳐질 때, 마치 동등한 두 형상이 포개져 하나를 이루듯이, 그 현실은 우리가 꿈꾸던 것을 완전히 가리고 그 꿈과 혼동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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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뭔가 우리 마음속의 불안정한 현존이다. 우리는 이런 불안정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이미 사랑은 우리 마음을 떠나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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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테여, 지금 나는 차디찬 무서운 잔을 들고 죽음의 도취를 마시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지 않습니다. 당신은 이 잔을 나한테 주었습니다.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 생애의 모든 희망은 이루어졌습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중에서
내 사랑과 내 고통, 난 그 속에서 울음을 터뜨리며 질베르트가 누군지 정확히 포착하려고 애썼고, 그래서 이 사랑과 고통이 특별히 그녀에게만 속하지 않고 조만간에 이런저런 여인의 몫이 되리라는 걸 인정해야 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항상 다른 존재들로부터 떨어져 있으므로 우리가 사랑할 때면 이 사랑이 그들의 이름과는 무관하다고 느껴 미래에 다시 태어날 수도 있고, 어쩌면 과거에 이미 그 여자가 아닌 다른 여자에 대해 느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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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할 때는 그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모두 담기에는 너무도 크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빛을 퍼뜨리지만 거기서 사랑을 멈추고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게 하는 어떤 표면을 발견하며, 그리하여 우리 자신의 애정이 되돌려지는 이런 반향을 우리는 그 사람의 감정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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