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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챙 Mar 19. 2024

미국에서 한국말은 잘해서 어디 써먹을 건데?



난 재미교포다. 비록 한국에선 초졸이지만 한국말을 잘한다. 미군 한국어 능력시험에서도 최고 점수를 받았다.


지금 난 내가 미국에 살면서 한국말도 잘한다고 자랑하려는 게 아니다.


아마 내가 미국에 살지만 한국말을 잘한다는 말에 아마 이런 생각이 드는 사람도 있을 거다:


네가 한국말 잘하는데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그거다.


미국에서 한국말은 잘해서 어디 써먹을 건데?






당신 자녀가 정말 한국말을 잘했으면 좋겠나요?


미국에서 부모님 연배의 어른과 대화를 하다 보면 종종, 당신 자녀들은 어릴 때 미국에 와서 한국어를 다 잊었는데, 한국말을 잘하는 내가 대견하다는 분이 계신다. 자식과 한국말로 대화할 수 있는 우리 부모님이 부럽다고 한다. (외국에 나가 살면 자식과 같은 언어로 대화할 수 있다는 것조차 감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분은 과연 내가 정말 대견하실까? 아마 그분이 나를 대견해하는 진짜 이유는 내가 한국말도 잘하기 때문일 거다.


만약 그분께 매트릭스처럼 빨간약과 파란 약을 내밀며:


빨간약을 드시면 아드님이 영어를 잊고 한국어가 유창해지고, 파란약을 드시면 지금처럼 영어만 잘하는 채로 남게 됩니다.


라고 묻는다면, 어떤 선택을 하실까?


난 미국에 사는 한국계 부모님들이 100%가 빨간약을 선택할 거라고 확신한다. 미국에선 한국말만 잘해선 대견해질 수 없다.


왜냐고? 영어가 안되면 엔지니어·의사·변호사가 같은 직업을 얻을 수 없으니까. 영어가 안되면 동네 편의점 알바도 못한다.


아무리 한국동포라도 미국에서 한국어는 덤이지 필수가 아니다.






미국에서 한국어가 필요할 때


미국에서 영어 다음으로 많이 사용되는 언어에는 스페인어, 중국어, 타갈로그(필리핀 공용어), 베트남어가 있다. 수치상으로 한국어는 미국에 살면서 쓸 일이 많을 언어에 들어가지 않는다.


미국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하는 비즈니스를 운영할 때를 제외하고 한국말이 도움이 될 땐 언제일까?


한 예로 미군에는 한국어가 필요한 직업들이 있다. 적국의 뉴스나 통신을 분석하는 미군에겐 외국어 능력에 따라 매달 최대 130만 원($1,000)의 보너스도 지급한다. 요즘 미군에서 핫한 언어로는 러시아어, 중국어, 페르시아어, 그리고 한국어가 있다. (이 언어들을 사용하는 나라들의 공통점을 한 번 찾아보자)


내 군대 친구 중엔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하는 푸에르토리코 출신 친구가 하나 있다. (푸에르토리코는 미국령 섬이지만 스페인어를 주로 사용한다) 이 친구는 이름조차 근사한 마약 대응본부에 근무하는데, 이중언어가 취업에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나는 이 친구에게 한국어를 잘하는 사람은 안 필요하냐고 물어봤다. 그런데 추적하는 마약 조직 중에 한국어를 사용하는 집단이 아직 없어 한국어 능력 보유자에 대한 수요가 없다고 한다. 농담으로 한국계 마약상이 늘어나면 연락을 주겠다는데, 백수가 되어도 좋으니 그런 이유로 연락을 받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


어쨌거나, 한국말이 모국어가 아닌 사람이 미국에서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배우는 건 그리 가성비가 높은 일은 아니다.






미국에서 한국어의 진짜 쓸모


그렇다면 미국에서 한국어가 가장 쓸모 있을 땐 언제일까?


바로 사람과 얘기할 때다. 자녀가 한국말을 못 하는 자녀를 둔 분들이 아쉬워하는 부분도 바로 이 점일 거다.


물론 사랑하는 자녀이니 언어가 안 통해도 소통을 위해 노력한다. 우리 집에도 3살 때 미국에 와서 한국말보다 영어가 편한 막내가 있다. 물론 부모님의 사랑은 언어능력 수준에 관계없이 동일하지만, 나와 동생이 각각 부모님과 대화할 때의 디테일은 다를 수밖에 없다.


지난 몇 년간 내가 한국말을 잘하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던 사건 중 하나는 한국에 나가 장인어른·장모님을 뵙고 꽤 긴 시간을 같이 지냈을 때다. 아마 내가 한국말을 잘하지 못했다면 그분들과 깊은 대화를 할 수 없었을 테고, 그토록 좋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을 거다.


한국어의 가장 좋은 쓸모는 한국어를 하는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언어가 통한다고 말이 통하는 건 아니다


한국어를 잘하면 한국어가 편한 사람과의 소통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소통이 가능해질 뿐이지, 언어가 같다고 다 말이 통하는 건 아니다. 우린 대개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결혼하지만 배우자와 말이 가장 안 통한다고 느낄 때가 많이 않은가?


한국어가 쓸모 있으려면 마음이 통해야 한다. 마음이 통하려면 상대방의 말을 들을 줄 알아야 하고, 상대방의 마음에 가닿기 위해 언어를 잘 사용해야 한다.




20년 넘게 미국에 살다가 대구 아가씨 아내를 만나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됐다. 


결혼 준비를 하며 한국에서 만든 한글로 된 청첩장을 미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돌리고 결혼소식을 알렸다. 멀리 한국에서 올리는 결혼식이기에 양해를 구하고 멀리서나마 우리 부부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친한 미국인 친구들에게도 한국에서의 결혼식을 알렸다. 파병을 함께 갔던 친한 군대 동료들에겐 한글로 된 청첩장과 함께 한국 차(tea)와 커피를 보내주었다.


친한 군대 동료 중엔 나보다 나이가 열 살 정도 많지만 계급은 같아서(사병으로 있다가 나중에 장교로 임관한 경우라서) 서로 이름을 부르며 친하게 지내는 백인 친구가 있다. 아무리 계급도 같고 스스럼없이 지낸다지만 왠지 형처럼 느껴지는 친구다.


내 청첩장을 받고 얼마 후, 그 친구는 내게 편지 봉투 하나를 건넸다. 봉투 안에는 번역기를 사용한 티가 나는 한글로 편지와 함께 100달러짜리 지폐 장이 들어있었다.


이게 뭐냐며 묻자 친구는 한글로 청첩장을 보고 한글로 축하편지를 전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엔 축의금을 주는 결혼문화가 있다는 알게 되어 100달러넣었다고 했다.


한국 문화까지 공부하며 진심을 축하해 주려던 친구의 편지는, 내가 받은 결혼 축하 중 가장 감동적인 축하 중 하나였다.






결론


미국에서 한국말은 잘해서 어디에 써먹을까?


미국에선 한국말을 못 해도 살만하다.


하지만 마음에 와닿는 한 마디 한국말은 이곳을 살맛 나는 곳으로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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