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바로 지금 여기

삶의 가장 큰 선물

by 고요의 향기

불쑥불쑥 머리 뒷꼭지까지 따라다니는 듯한 어제의 일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내일의 걱정을 놓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삶이란 다만 오늘, 바로 지금 여기가 이어지는 것뿐이며 어제와 내일을 온전히 살 기회도 바로 오늘뿐이다.


오늘, 바로 지금 여기를 산다는 것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깨어서 필요한 할 일을 잘 한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지금 여기 이 마음이 스스로의 마음에 깨어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마지막까지 의지할 곳은 바로 우리 자신의 내면에 있는 의지처이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나 관계없이 존재 그 자체로 품고 있는 이 자연스러운 본성, 본래 자연의 품성은 바로 오늘, 지금 여기에서만 만날 수 있다.


과거나 미래라는 시간은 우리가 소통을 위해 만든 개념과 약속에 불과하다. 그 개념으로 달려간다는 것은 그 개념의 바탕에 본래 존재하는 본성에 눈을 감고 있음을 뜻한다.


그 오늘, 바로 지금 여기를 사는 비결 하나는 세상으로 향하는 감각의 첫 문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 눈앞에 있는 것들과 그 존재들 사이의 빈 공간을 함께 알아차리는 것, 이 두 귀에 들리는 소리와 그 소리의 배경을 함께 알아차리는 것, 그리고 이 두 손과 피부에 느껴지는 촉감과 그 배경을 함께 알아차리는 것, 미각과 후각도 마찬가지다.


감각은 지금 여기 이 몸과 함께여야만 느낄 수 있다. 이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게 하라는 의미가 그것이다. 특히 자연의 소리를 듣고 그 소리의 배경과 함께 알아차리는 것은 바로 지금 여기의 본래 품성으로 향하는 직접적인 길이 된다. 왜냐하면 다른 감각은 과거나 미래로 달려갈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소리 중에서도 사람의 소리를 비롯한 다른 소리들은 과거나 미래의 어떤 개념을 불러올 여지가 많다.


자연의 소리, 새소리, 빗소리, 바람소리 등은 우리네 본래 품성의 파동과 가장 가깝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 온전히 머물게 한다. 그 소리를 듣고 있는 순간에도 마찬가지지만 그 소리가 사라진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그 소리가 나타나기 전에도 이미 본래 현전 했던 스스로의 내면, 궁극의 의지처를 마주할 수 있다. 그 의지처에 기대어 있으면 모든 감각이 그대로 그 자리에서 쉬어있으며 다만 깨어있는 순간이 느껴질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중력에 순응하는 것이다.


중력은 질량을 가진 물체 사이에 끌어당기는 힘을 말하는데 우리는 지구의 중력에 의해서 끌어당겨지고 있다.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느끼는 모든 작용은 사실 중력에 반하는 작용이다. 그렇다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는 존재로 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중력에 순응하는 마음으로 존재하다가 보면 무의식 중에 일어나는 생각과 느낌에 대해 더욱 명료하게 알아차릴 수 있다. 물론 좀 더 지혜롭게 현실 상황, 지금 여기의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 그야말로 자기자신을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생각이나 느낌으로 동일시하거나 몸경계만으로 한계 짓는 상황에서 벗어나 모든 것과의 관계성 속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뜻이다. 중력 또한 관계 사이에서 일어나는 끌어당기는 힘이기 때문이다.


두 손을 꽉 쥐고 조금만 긴장하고 있어 보라. 온 심신이 함께 긴장하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러다가 중력에 순응하는 마음으로 있어보면 금세 긴장이 이완되면서 정신이 맑아져 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본래 마음이나 몸만으로 한정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자연스러운 본래 품성을 회복해 가는 과정이다.


중력에 순응하는 것만으로도 몸을 가진 존재로서의 자연스런 성품을 회복해가는 과정이겠지만 그보다 더 자연스러운 것은 본성에 순응하는 것이다. 아무 것 하지 않을 때, 모든 감각이 쉬고 있을 때에도 이미 본래 그렇게 현전하는 우리들 존재의 의지처에 순응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쉼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를 더 권해본다면,

누군가의 배경으로 존재해 보는 것이다.


자연 속에서 있기도 하고 혼자 있기도 하지만 정작 우리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순간이 많기 때문에 사람들과 함께 할 때 해보면 좋은 방법이다. 내 눈과 내 귀로 세상을 보고 판단하는 작용을 멈추고 저 대상 혹은 저 사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그저 저 사람의 세상에 있는 배경이 되어보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모두 외계인이다. 지구 바깥에 존재하는 외계인만 외계인이 아니라 정작 지구 안에 존재하지만,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에서처럼 몸은 아주 가까운 듯하면서 마음으로 보자면 전혀 예상치 못한 세계 속에 살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나처럼 생각하고 느끼는 존재가 아니라 저 사람처럼 생각하고 느끼는 모름의 영역을 높이지 않고서는 부딪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 사람의 세계 속에 있는 배경이 되어본다는 것, 의외로 자기와 주변을 상처 주는 자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이라 할 수 있다.


아무 소리 없는 배경이라도 좋고 무슨 소리라도 한다면 적어도 그 소리가 저 사람의 눈과 마음에는 어떻게 들릴지를 그의 표정과 말, 행동으로부터 알아가는 것이다. 그의 시선과 그에 따른 세상을 알아간다는 것은 아무 소리 없는 배경이 될 수 있어야만 가능한 과제다.


가만히 배경이 된 그 마음은 일단 비워져 있을 것이다. 더불어 고요히 그의 세계를 아무것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찾아가는 이의 자세가 될 것이다. 물론 겸손하게 열려 있을 것임은 자명하다.


삶이 준 가장 큰 선물인 오늘, 바로 지금 여기를 온전히 사는 것이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지금 여기 이미 존재로서 누릴 수 있는 본성품의 대자유와 행복할 권리를 누리며 함께 하는 이들과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가 할 일 전부이다. 지금 여기가 전부인 삶에서 오늘 이 순간에 깨어있는 마음이 사라진다면 그것은 몸은 살아있어도 살아있지 않은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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