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더 애틋한
설렘은 늘 첫 공사에만 있는 게 아니다.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스며든 상담은 더 애틋하고 절실하다.
“올해 정년퇴직한답니다.”
“아, 그러시군요.”
“이제 수입이 없어지면 인테리어는 엄두도 못 낼 것 같아서요. 그래서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내는 직장에 다닐 땐 집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고 했다. 퇴근 후엔 밥 먹고 자는 게 전부였고, 집을 이쁘게 꾸민다는 건 생각지도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은퇴가 가까워지고, 오롯이 집에 머무는 시간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고 했다.
“이 집에 이사 온 뒤로 한 번도 공사를 안 했어요. 15년쯤 됐죠. 아이들도 다 커서 나갔고, 이제는 부부 둘만 살게 되잖아요. 각자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종일 같이 있다 보면, 사소한 일에도 부딪치게 될 거 같아요.”
서로 다른 생활 패턴, 특히 수면 시간과 코골이 소리까지. 아내는 웃으며 말했지만, 말끝에서 오래된 피로감이 묻어났다.
옆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들으며 창밖만 응시하던 남편에게 물었다.
“각자의 공간이 생긴다면 어떤 공간을 원하세요?”
“전 작은 방이 좋아요. 아늑하고 조용한 곳. 근데 제 방이 또 창고처럼 되는 건 싫어요. 아내가 자꾸 안 쓰는 물건을 거기다 두려고 하거든요."
아내가 살짝 눈을 흘긴다.
다정한 으르렁거림. 오래 함께 산 부부에게서 느껴지는 불안하지 않은 투덕거림에 미소가 지어진다.
이번엔 아내의 바람을 물어보았다.
“친구들을 초대해 차 마시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깔끔하고 이쁜 카페 같은 주방이요. 집이 이렇다 보니 늘 밖에서만 만나야 했지만, 이제는 집에서 편하게 자주 모이고 싶어요.”
안방과 욕실도 자신만의 취향으로 꾸미고 싶다고 했다.
“평생 그런 대접 한 번 못 받았어요. 한 번쯤은 공주처럼 예쁜 욕실을 가져보고 싶었어요.”
남편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무심히 한마디 툭 내뱉었다.
“이제 안방 쪽으로는 얼씬도 하지 말라는 거네. 그 나이에 공주는 무슨...”
나는 웃으며 상황을 정리했다.
“그럼, 입구 쪽 작은방과 욕실은 남편분, 안방과 안방 욕실은 아내분, 거실과 주방은 두 분의 공동 공간. 괜찮으실까요?”
세 시간 만에 대략의 윤곽이 나왔다. 지친 얼굴들이지만, 어딘가 홀가분해 보였다.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을 꺼내는 두 사람. 상담이 공간을 넘어 마음을 여는 과정이 되어간다.
남은 건 서로를 위한 더 세심한 배려. 마지막 공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그만큼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마음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충분히 서로의 의견을 조율할 시간을 갖고 공사를 진행하자고 설득했다.
상담이 끝난 후, 상담내용을 다시 천천히 되뇌었다. 부부가 스쳐 지나가듯 흘린 말속에 진짜 디자인의 실마리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