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일기를 시작하는 이유가 다들 가지각색입니다. 글쓰기를 잘하고 싶어서, 일을 더 잘하고 싶어서, 불안을 해결하고 싶어서, 슬픔을 털어놓고 싶어서, 즐거운 추억을 돌아보기 위해서 등 이유가 다양합니다. 그래서 일기에서 얻는 것도 다양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일기를 시작하게 되었든 공통적으로 얻는 것들도 있습니다. '덤으로' 얻는 것들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예상하셨겠지만 역시 글쓰기 능력입니다. 일기는 사진, 영상 등도 물론 활용할 수 있지만 기본은 글입니다. 경험을 글로 매일 바꾸다보면 글쓰기가 친숙해지고 또 예전보다 잘 쓸 수 있게 됩니다.
객관식 문제에 익숙하던 학생 시절에는 주관식으로 뭔가 쓰라는 문제가 나오면 그렇게 골치아플 수가 없었습니다. 한문장 내기도 힘들어 쩔쩔 매었는데 지금은 너무 장황하게 많이 써서 잔가지 치는 연습을 해야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글쓰기가 친숙해지면 탁월한 문장에 더 기민하게 반응하게 된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동네축구라도 꾸준히 해봐야 월드클래스 축구선수들의 움직임이 얼마나 놀라운지 아는 법입니다. 뛰어난 글을 볼 줄 아는 눈을 기르려면 어설프더라도 직접 글을 써보는게 좋은 방법입니다. 일기는 누군가의 지적 받을 걱정없이 편히 글을 쓸 수 있으니 딱 좋습니다.
두 번째는 이야기 능력입니다. 일기에는 사건들이 기록되는데 이는 곧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는 주제, 등장인물, 시간과 장소, 대사와 행동, 사건발생과 결말 따위의 요소들을 가지고 있죠. 일기는 원본실화이며 특이하게도 주인공의 온전한 속마음까지 가감없이 알 수 있는 유일한 기록입니다.
신속한 상황파악
일기는 이런 날것의 실화가 전개되는 양상에 익숙하게 해줍니다. 드라마나 영화를 많이 접하면 줄거리가 쉽게 예상이 되듯이 현실의 이야기들이 전개되는 경향이 좀 더 잘 예측이 됩니다. 나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주위 다른 이들의 이야기까지 일기에 담는다면 더욱 그러합니다.
일기가 쌓일수록 생소한 이야기를 들을 때 자신도 모르게 이야기에서 빠진 구석들을 눈치채게 됩니다. '이 말과 행동을 한 사람, 주어는 뭐지?' 라든지, '그래서 언제 그 일이 일어났다는 거지?' 등이 머리속에 빠르게 떠오릅니다. 평소 일기를 쓸 때 자신도 모르게 육하원칙을 따지게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읽을 때 불편하거든요. 두서없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무엇을 파악하면 이야기가 더 선명해질지 무의식적으로 찾게 되는 것입니다.
완전 동일한 인생경로는 없다는 확신
또한 일기를 쓸수록 인생 이야기의 세부사항들이 쌓이게 됩니다. 그럴수록 타인과는 다른 나만의 독특한 삶의 경로를 더욱 선명하게 이해하게 됩니다. 이는 곧 나 뿐만 아니라 타인도 모두 그러함을 더욱 체감케 해줍니다. 나와 비슷해보이는 인생을 살아온 것 같은 타인에게도 나와는 다른 디테일들이 쌓여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줍니다. 모두가 자신만의 길이 있습니다.
이런 전제를 무의식적으로 품고 있으면 겉으로 보이는 모습 하나로 누군가의 삶을, 속사정을 성급히 평가하고 지적하지 않게 됩니다. '양쪽 이야기를 모두 들어봐야한다'는 말을 비로소 꾸준히, 일관되게 실천할 수 있게 됩니다. 성실하게 삶을 기록해온 일기습관은 배려와 존중도 훈련시켜주는 것입니다.
줌인과 줌아웃하는 능력
오랜 기간 축적된 일기는 나무와 숲 모두를 보도록 도와줍니다. 전체 줄거리와 그것을 이루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이 일기 속에 담깁니다. 필요할 때는 에피소드를 세세하게 살피는 줌인을 할 수 있고 또 큼직한 사건 위주로 전체 줄거리를 보기 위해 줌 아웃도 할 수 있습니다. 기록으로 내 인생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해두면 이렇게 부분과 전체를 연결짓기 쉬워집니다.
세 번째는 역사학자들이 *역사학적 사고방식이라고 부르는 능력입니다. 역사적 사건들은 한 가지 원인이 아닌 여러 원인으로 발생한다는 것, 사건이 일어난 당시대의 맥락을 알아야 한다는 것, 현재 우리는 많은 맥락이 바뀐 상황에서 과거를 돌아보고 있다는 것 등입니다.
*역사학적 사고방식 Historical Thinking : 대표적인 것으로 '복잡한 인과에 대한 예민성', '사건의 맥락에 대한 예민성' 그리고 '시간 흐름에 따른 변화에 대한 예민성' 등이 있습니다.
일기는 사건을 기록합니다. 그리고 사건 간의 원인과 결과도 자연스레 다시 한번 되집게 됩니다. 사건 당시의 맥락을 이해하려 하고 또 그 때와 지금의 주위 상황이 다름도 더욱 의식하게 됩니다. 그저 기억에 두는 것이 아닌 기록으로 나의 역사를 기록하고 다시 꺼내보다 보면 역사학적 사고방식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고보면 역사책은 마치 우리사회가 쓰는 일기장과도 같습니다. 물론 여러 역사가들의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평가를 거친 일기장이지요.
많은 역사학자들은 '역사학적 사고방식'이라고 부르는 이런 마음가짐을 개발하는 것이 단순한 사실들을 암기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Michael J. Salevouris, Conal Furay
<역사학의 연구방법과 기술 : 실용적 지침 4판>
태생적 역사가 Born-Historian 와 미스토리언 Mistorian
돌이켜보면 사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역사가입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본능적으로 과거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첫 걸음마를 하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데 기본적으로 과거로 부터 배우는 일입니다. 단지 종이가 아닌 기억에 새겨넣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다 어린이 집에 가게 되면 종이에 연필로 기록하는 걸 배우기 시작합니다. 기록의 힘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더 자라면 '국영수'를 잘 공부하기 위해 노트, 영상 기록을 적극활용합니다. 아쉽게도 더 중요한 '내 인생' 공부를 위해 일기를 시작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는 않아보입니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일기쓰기는 자신의 인생역사를 구전역사에서 구문역사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문명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기억만 활용하는 태생적 역사가에서 기록도 활용하는 의도적인 역사가로 한발 내디딘 것입니다.
이렇게 인생 역사가가 된 사람을 저는 미스토리언 Mistorian 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합니다.
Me + Historian = Mistorian
위 능력들은 말하자면 일기의 직접적인 혜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딱히 의도하지 않아도 일기를 계속 쓰다보면 자연스레 덤으로도 얻을 수 있는 능력들입니다. 당연하지만 의도적으로 이런 능력을 키우기 위해 일기를 쓴다면 그 효과가 더 커지겠죠.
하지만 처음에 말씀드렸던 것 처럼 일기는 어떤 능력이든지 향상할 수 있습니다.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예로 다이어트를 잘하고 싶다면 다이어트 일기를 쓰면 됩니다. 하지만 다이어트를 성공하는데 더 직접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다이어트 전문지식입니다. 일기는 배운 다이어트 방법을 잘 실천하는지 스스로 관찰하고 살피는데 도움을 주는 방식으로 다이어트를 돕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일기의 쓸모를 계속해서 확장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