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는 대신 써줄 사람이 없습니다.
자서전 작가들이 있다지만, 그들 또한 당사자가 기록하지 않아 잊어버린 사건들은 어찌할 수 없습니다. 내가 쓰지 않으면 영영 잃어버릴 삶이 조각들인 것입니다. 내 역사는 오직 나 자신만이 얻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역사책 없는 나라를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들끼리 기억에 차이가 나고 누락되고 또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등 하나의 나라로서 성립이 어려울 정도일 것입니다. 역사기록은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줍니다. 우리나라는 어떤 나라인가를 각 사람의 마음에 선명히 새겨줍니다. 나의 역사인 일기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일기가 말해줄 수 있습니다. 나의 정체성을 선명히 하고 자기 객관화를 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어줄 것입니다.
조지오웰의 '1984' 속 역사왜곡과 통제
역사책이 없는 나라에 대해 조금만 더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조지오웰의 소설 '1094'를 보면 그런 나라가 나옵니다. 그 유명한 '빅브라더'를 탄생시킨 소설입니다. 거기서는 일기 쓰는 것이 불법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처벌을 받죠.
일기를 쓰려는 것이 바로 그가 지금 하려는 일이었다. 그것이 불법은 아니었지만(법이라는 것이 아예 없었기 때문에 불법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다) 이 일이 들키게 될 경우 사형이나, 최소 강제 노동 수용소 25년 형이라는 처벌을 받을 것이 거의 확실했다.
조지오웰
1984
불법이라는 개념까지 숨기면서 일기 쓰기를 처벌하는 이유가 뭘까요?
당은 '과거를 통제하는 자가 미래를 통제하며, 현재를 통제하는 자가 과거를 통제한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조지오웰
1984
모든 과거의 기록, 즉 역사의 기록을 조작함으로서 국가운영을 입맛대로 주무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수 자유시민의 진실된 일기라는 기록은 큰 위협이 됩니다. 자유로운 이들의 기록이 서로 일치할수록 당의 의도적인 거짓이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소설의 주인공인 윈스턴은 위험을 무릅쓰고 결국 일기를 쓰게 되고 점점 진실의 역사를 의식하게 됩니다. 그리고 당에 맞서게 됩니다. 하지만 씁쓸하게도 소설의 끝은 비극적입니다. 결국 거짓역사를 강제하는 거대한 사회의 폭압 앞에 한낱 개인인 윈스턴은 굴복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진실을 품은 기록을 가진 이들이 윈스턴 말고도 수십 명, 수백 명 더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조지 오웰은 그런 비극적 끝맺음을 통해 독자들에게 독재권력과 거짓역사의 힘에 대한 경각심을 더 자극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최대한 다수가 진실에 깨어있고 또 그것을 변치 않는 기록으로 간직하도록 말입니다.
내 안의 역사왜곡과 누락
때로는 내 안에도 역사왜곡을 명령하는 빅브라더가 집권할 때도 있습니다. 그때 나의 양심은 마치 홀로 선 윈스턴 같습니다. 이럴 때가 양심껏 솔직히 써온 일기습관이 중요할 때입니다. 내 안의 윈스턴을 쓰러지지 않게 지원군입니다.
나의 역사는 국가의 역사만큼 길고 복잡하지 않아 기억만으로 충분하지 않나 하는 생각들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겉의 사건뿐만 아니라 우리 내면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의 역사는 충분히 복잡하고 그 양이 많습니다. 꼭 의도적인 왜곡이나 누락이 아니더라도, 그저 기억에만 맡겨두면 사건의 전말이 뒤죽박죽이 되기도 합니다. 너무 바쁘거나 또는 내게 너무 불리하거나 심각하고 충격적인 사건 등이 그 예입니다. 트라우마적 사건 등의 예외가 있으나 가능한 한 빨리 기록하는 것이 '빅브라더'의 개입을 막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게다가 일기는 꼭 나의 정체성, 나의 역사에 관한 것이기만 한 것도 아닙니다. 나 자신에게만 푹 빠져들게 만드는 기록이 아닙니다. 일기는 내 주위 사람들에 관한 것이기도 합니다. 아주 단순한 방법으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저 오늘 내가 만난 사람들에 대해 일기에 쓰면 됩니다. 심지어 더욱 확장해서, 내 관심이 사회로 많이 향한다면 뉴스에서 보거나 직접 경험한 사회 역사의 한 장면들을 일기에 꾸준히 쓸 수도 있습니다.
즉, 일기는 자신에게만 몰두하게 만드는 자기중심적인 기록이 아닙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역사, 사회의 역사에도 관심의 불씨를 지펴줄 수 있는 기록입니다. '자기 돌봄'의 차원에서 이야기하자면 일기는 '타인 돌봄'을 위한 기록도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저의 경우 22년 전부터 일기를 써오다 보니 10년 전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자연스레 아이들에 대한 일기도 시작되었습니다. 육아일기도 추가된 것이죠. 아이들의 성격이나 행동에 대해 쓰다 보니 어린이집이나 병원에서 평소 아이가 어떤지 물어보면 어렵지 않게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어 일기의 쓸모를 체감했던 적이 있습니다.
저의 일기장에는 아이들 이야기뿐만 아니라 연애시절 아내와의 이야기 그리고 대학교와 직장생활 때 함께 공부하고 일했던 이들에 대한 기록들도 많이 쌓여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만났던 사람들을 구체적으로 한번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부모님, 친인척, 연인, 친구, 선생님, 직장동료 등 생각보다 많은 인연을 만났고 헤어졌고 또 이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만남은 서로의 역사가 얽히는 순간입니다. 그때 우리는 서로의 역사를 직접 관찰할 수 있고 또 때로는 함께 역사를 만들어가기도 합니다.
일기는 이렇게 나와 타인 모두를 담을 수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끝없는 역사의 사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에드워드 허버트 카
<역사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