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계열 진학을 위한 진로 적성?
아프면 가끔 우린 어린아이가 된다.
힘들다고 징징거리고 싶고 아프니깐 배려받고 싶다. 특히 종합 병원에 들어서면 접수에다 진찰 순서가 밀리다 보면 매너 있는 태도를 유지하기는 힘이 든다. 며칠 전 남편이 고열이라 종합병원 응급실을 갔다. 이 등치 큰 중년 사내는 열 때문에 평소와는 달리 언제까지 기다리냐며 힘들어하다가 순둥 해진 눈으로 의사 선생님, 간호사 선생님에게 증상을 곱게 어린이처럼 말했다. 그 모습은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한테 ‘호~~~~’해달라는 모습 같았다. 동시에 다친 옆 침대 소녀, 건너편 할머니, 복통을 호소하는 중년의 남성 등 모두 응급실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의 귀여운 자녀가 된다.
진찰 후 남편은 코로나였고 수액을 맞고 집에 가려 응급실 원무과로 수납을 하러 갔다. 진찰부터 수액을 맞기까지 4시간 정도 걸려서 나도 같이 아플 지경이었는데 번호표를 뽑고 앉으려는 찰나 큰소리에 깜짝 놀라 다시 응급실로 들어갈 뻔했다.
“빨리 좀 하라고. 빨리.”
남성 2명이 원무과 직원을 향해 삿대질에 격앙된 얼굴을 들이 밀고 있었다.
배려 없는 고함 뒤엔 할머니가 서류를 작성하시는 중이었는데 할아버지가 치매신지 병원밖을 나가시는 중이었고 할머니는 할아버지 붙잡으랴 뒷사람 눈치 보랴 금방이라도 울 듯 보였다.
할머니가 힘겹게 작성 중인 서류는 지불 각서, 개인정보제공동의서 등이었는데, 대화 내용을 들어보니 할머니는 앱으로 계좌이체가 힘들고 카드도 없으시다 보니 현금으로 결제를 하시다 돈이 모자란 것이었다. 나는 조바심도 나고 할머니가 계속 눈치를 보시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해서 모자란 돈을 대신 내드리겠다고 말했다.
뒤따른 원무과 직원 대답은 단호했다.
“아닙니다. 괜찮아요. 돈 받는 일이 제 일입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고함을 지른 남자에게도
“할머니께서 조금 늦으시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죄송합니다. 바로 처리해 드릴게요.”
20대 중반쯤의 앳된 원무과 직원은 단호하면서도 침착하게 대응을 했고 끝까지 할머니가 서류를 작성하시게 도우고 할아버지를 자리에 모시는 등 순식간에 일을 처리했다. 열이 나 머리가 아프다는 남편 때문에 빨리 수납하고 싶어 짜증이 나려 했는데 이 직원의 깔끔한 대응에 기다려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겼다.
노령화로 접어들고 거기다가 전문의 파업 문제등으로 병원은 그야말로 ‘막무가내’의 최전선이다. 아프니 막무가내가 되고 타인을 위해 양보하기엔 대기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긴 탓이다. 이런 현실이다 보니 병원에 근무하는 모든 사람들이 전쟁을 치르듯 하루하루를 보내는 걸로 보였다.
내가 일하러 간 곳이 전쟁터라면 어떤 적성이 필요한 걸까?
아픈 사람들을 드물게 만나는 우리와는 다른 어떤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날 응급실에서 그 답을 찾았다. 응급식 원무과 직원은 자신이 해야 할 순서를 정확히 알고 있었고 융통성과 동시에 단호함도 가지고 있었으며 최소한의 친절도 절대로 놓치지 않았다. 병원에서 근무한다는 것은 이 단호함을 배경으로 한 인간에 대한 배려가 있지 않으면 근무하기가 힘들다는 생각이다. 병원에서 근무하기를 원하는 청소년들이 많은데 그동안은 희생, 봉사 정신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오히려 더 필요한 것은 병원에 오는 아픈 사람들의 아픔을 공정하게 살피고 일 처리 순서를 명확하게 지키면서도 힘든 환자를 이해시키는 배려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인상적인 응급실 원무가 직원과의 만남 이후로 의사 선생님과 더불어 병원 종사자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오히려 의사 선생님 만나는 시간은 10분도 안되지만 다른 종사자들을 더 오래 만나기 때문이고 안정된 그들의 직업윤리가 우리의 병원 한정 막무가내 조급증을 자주 진정시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