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시대 폴란드의 SF 작가 스타니스와프 렘의 번역작들이 쏟아져 나오던 2022년, 우리는 『스타니스와프 렘 - 미래학 학회 외』 외에도 절판이었던 최고 명작 『솔라리스』, 『사이버리아드』, 최초로 만나 보는 『우주 순양함 무적호』,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까지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중 알마 출판사에서 2023년 나온『로봇 동화』를 마지막으로 우리의 스타니스와프 렘의 여정은 끝이 났다. 이제 앞으로 렘의 새로운 번역 책이 나올 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정도면 난 충분히 만족스럽게 렘 덕질을 완수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당분간 나는 안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띤 채 어둠 속에서 정체를 감추고 현생을 살아갈 예정이다.
『로봇 동화』(1964)는 『사이버리아드』(1965) 보다 1년인가 먼저 나온 책인데, 사실 『Mortal Engines』(1961)라는 제목의 책에 『로봇 동화』 작품 대부분이 포함되어 있다고 위키피디아는 밝히고 있다. 그러니 실제로는 『사이버리아드』보다 4년 전에 쓰여진 책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실제로 읽어 보면 『사이버리아드』의 프로토타입 느낌으로, 로봇 백성이 거주하는 로봇 왕국의 로봇 군주의 풍자와 해학, 아이러니 이야기들이다. 이 책의 후반부엔 희대의 두 로봇 트롤러 ‘트루를’과 ‘클라파우치우시’가 드디어 전격적으로 등장하는데, 이 이야기들을 확장해 만든 게 바로 『사이버리아드』이다. 내 『로봇 동화』 독후 감상으로는, 『사이버리아드』의 극한에 치다른 아이러니 미학에는 못미치긴 하지만, 그 미학의 최정점에 도달하기 전단계 아이디어의 씨앗을 감상하는 재미는 충분히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스타니스와프 렘 - 로봇 동화 (2023)
책의 소설 작품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독특한 형식이 있다. 옛날 옛적에 왕국이 있었고 그를 다스리는 왕이 있었는데, 그 왕은 곤란에 처한다. (보물을 빼앗길 위기이거나, 왕국에 괴물이 나타나거나). 왕국을 위해 세 명의 기사가 그 왕의 곤란을 처리하기 위해 도전한다. (반드시는 아니지만 웬만하면 세 명이어야 한다.) 이런 반복된 형식을 바탕으로 몇 가지의 이야기가 변주된다. 「세 전기기사들」, 「자가유도자 에르그가 창백한 자를 물리친 이야기」, 「비스칼라르왕의 보물」, 「두 괴물」, 「하얀 죽음」, 「디지털 기계가 용과 싸운 동화」, 「히드로프스왕의 장관들」, 「글로바레스왕과 현자들」, 「무르다스왕 이야기」가 이런 ‘왕국의 동화’ 형식에 바탕을 두고 쓰여졌다.
이런 ‘동화’ 형식의 평범한 왕국과 위정자의 이야기가 특별할 수 있는 건, 왕국은 외계 행성이고, 왕과 기사들, 백성들은 모두 로봇이기 때문이다. 이 세계에 인간은 어디로 갔는지, 로봇이 어째서 우주를 지배하게 되었는지는 그다지 궁금하지도 않다. (물론 「자가유도자 에르그가 창백한 자를 물리친 이야기」에 인간이 나오긴 한다) 로봇이 그 세계관의 주인이 되었다 쳐도 결국 인간이 하는 짓들과 똑같은, 지배하고 배신하고 탐욕을 부리고 공포에 질리고 권력을 탐하고 생존을 걱정하는 일상을 산다는 점이 웃기다.
등장인물이 단지 로봇일 뿐인 무늬만 SF 아니냐고? 단지 로봇이 주인공일 뿐인, 그들을 인간으로 바꿔도 이야기가 똑같이 읽히는, 중세 배경의 정치 치정극 아니냐고? 아니다. 왕국의 보물은 우라늄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보물이 임계질량을 넘게 모이면 폭발한다. 괴물을 무찌르는 기사가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사실 반물질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왕의 선대 국왕이야말로 사실은 이 평평하고 드넓기만 한, 무의미함으로 가득 찬 광대한 우주를 만든 장본인이며, 그로 인해 우리 우주의 끝없는 덧없음이 만들어졌고, 신하가 그 사실을 밝힘으로서 국왕이 놀라 신하를 죽이려던 원래 계획을 멈추게 된다. 이런 이야기 구조가 단지 로봇이 주인공일 뿐인 SF일 리가 없다. 무엇보다도 스타니스와프 렘의 작품들이 SF인 이유는, 형이상학적인 ‘우주의 절대적 존재’와 비교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상대적 존재론’의 가치를 탐구하기 때문이다. 인간도 나오지 않는데 웬 인간이냐고? 이 모든 이야기가 결국엔 ‘심원한 인간성의 탐구’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는가? SF란 무릇, (다른 많은 소설 장르가 그렇듯이,) 인간성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것. 그 주인공이 로봇이든, 초월적 존재든, 무엇이든간에, 인간성을 논하기 위해 설정한 작가들의 창조적인 스토리텔링이라는 것.
혹자는 SF가 읽을만 한 가치가 있는 건 ‘미래 예측’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주장에 다르면, 스타니스와프 렘의 『로봇 동화』는 미래를 예측하지 않는, 읽을 가치가 없는 고리타분한 책일 것이다. 시리와 알렉사, 알파고와 챗GPT를 넘어 진짜 실현되어 가는 인공지능의 세계에 살고 있는 지금, 장차 미래에 실현될 인공일반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은 ‘왕국을 세우고, 권력과 보물을 탐하고, 용을 무찌르지 않을’ 것임이 확실시되고 있다. 그의 1960년대 냉전 시대의 감성은 인공지능의 시대를 잘못 예측했기 때문에 따분해져 버린 고전 SF의 감성일 것이다. 하지만 난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SF는 절대로 미래를 예측해 알아맞추거나, 새로운 기술의 발전에 따른 미래세계를 그려야 할 의무를 가지지 않는다. SF는 인간성의 탐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타니스와프 렘의 소설들은 영원히 읽혀야 할 가치가 있는 소설이 될 것이다. (심지어 인간이 멸망하고 인공일반지능이 세계를 지배하는 미래, 인공지능마저도 렘의 소설들을 읽고 까무라치며 감탄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동화 속의 로봇들이 그렇게나 인간과 닮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