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SF 리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외계 행성의 불가해함, 외계 지능과의 소통 불가능성

스타니스와프 렘의 『솔라리스』를 읽고

2021년이 무슨 날이었나? SF 불모지인 한국에서도 초마이너한 작가, 냉전시대 폴란드의 작가인 스타니스와프 렘의 작품이 번역 출간되다니? 「현대문학」에서 나온 『스타니스와프 렘 - 미래학 학회 외』 이야기다. 아, 알고 보니 2021년은 스타니스와프 렘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로구나. 그래서 그런지 렘의 출판 소식이 한해를 넘겨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22년 올해, 「민음사」에서도 자그마치 세 권이나 번역본이 출판되었다.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우주 순양함 무적호』, 그리고 가장 잘 알려진 렘의 소설『솔라리스』까지. 심지어 이 번역판들은 폴란드어 직역판이라 한다. 2022년이라 렘 기념주년엔 한 해 늦긴 했지만, 그래도 나의 빠심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즐겁다.


명작인 만큼 과거에도 『솔라리스』는 여러 번 번역 출판된 적이 있다. 아마도 내가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본 적이 있었던 오래된 「집사재」판, 그리고 현재 중고시장에서 40,000원 이상의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는 「오멜라스」판(중고 되팔렘들 망했으면).「오멜라스」판의 경우 유명한 SF 전문 번역가 김상훈 님께서 번역했지만, 영어판을 중역했다는 한계가 있었다. 아니 그런데, 이제야 안 사실이지만 영어판 또한 불어판을 중역한 거였다네? 그러니까, 폴란드어→불어→영어→한국어 3중역 콤보였단 말인가? 여자주인공 이름이 "레야"가 아니고 "하레이"였다니?

Stanisław Lem — Solaris (위부터 민음사판, 오멜라스판)

사실 나의 렘 최애는  『솔라리스』 보다는 『사이버리아드』같은 단편들이지만, 출간 기념으로 리뷰를 안할 수는 없다. 어쨌든 렘의 최고 명작이자, 영화화까지 된 가장 대중적인 작품 아닌가. (이게 영화는 또 대중적이라기엔 거리가 멀지만) 『솔라리스』 의 문체는 단편들의 그 풍자적이고 우화적인 쪽 보다는, 건조하고 삭막한 쪽에 가깝다. 배경도 그렇다. 단지 바다와 몇몇 섬들 뿐인 '솔라리스' 행성에 유일하게 계류하는 연구소에, 솔라리스 학(學) 전문 연구자인 주인공 '크리스 켈빈'이 도착한다. 이 연구소엔 세 명의 연구자들이 거주했는데, 크리스 켈빈의 스승이었던 기바리안은 며칠 전 자살했고,  책임자인 사르토리우스는 방에 틀어박혔다. 동년배인 스나우트만이 켈빈을 아는 체 하지만, 그도 이 암울한 연구소의 상황을 해결하려는 기미가 없으며 심지어 막 도착한 켈빈에게 당췌 무슨 상황인지조차 설명해주려 하지 않는다. 직접 겪어 보면 알 것이라며... 그러던 중 켈빈은 연구소 안에서 갑자기 자신의 옛 연인이자 이미 죽은 지 오래였던 '하레이'를 마주친다.




이 솔라리스라는 행성에서, 인간들은 극한의 불가해한 현상들에 마주친다. 우선 그들은 쌍성 주위를 도는 솔라리스 행성 자체가, 바다의 질량 분포를 컨트롤해서 불안정할 수 있는 궤도를 안정적으로 지켜낸다는 사실을 관측한다. 솔라리스 바다 표면에 꾸준히 생기는 미모이드, 대칭체, 비대칭체 등등의 이상한 거대 구조물들도 관측한다. 솔라리스 학 연구자들은 솔라리스의 바다 자체가 지능을 가진 하나의 생물 개체라는 가설을 수립한다. 하레이와, 등장인물들이 하나씩 끼고 있는 그들만의 기억 속 창조물들 또한 '솔라리스'라는 지능적 개체가 인간과 상호작용을 한 결과 출현한 것이다.


두 개의 태양을 공전하는 바다 행성 솔라리스, 대칭체, 인류의 헬리콥터를 모사한 미모이드 (화가: Dominique Signoret, Wikipedia Commons)

가히 충격적인 설정이다. 우리가 항상 SF에서 봐온 외계인들, 눈과 머리가 크고, 초록색 피부에, 지구를 침략하거나, 지구인을 돕거나, 혹은 뭐 문명의 일원으로 지구인과 소통하려 한다는 그런 설정들은 전부 이 거대 단일체인 바다행성 지능체 앞에서 한낱 진부한 소재일 뿐이다.  게다가 이 솔라리스의 소통 행태라는 것들, 인간의 뇌 속 가장 깊은 곳에서 감정적인 인물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 내어 인물 자체를 형상화시켜 내보이는 소통 방식은 도대체 무슨 욕구와 목적 때문에 하는 것인지조차 이해할 수가 없다.


『이기적 유전자』를 쓴 리처드 도킨스는 외계 생물에게도 다윈의 진화론에 따라 진화할 것임을 말한 적이 있다. 나 또한 그 내용에 동의하며,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외계 생물이 다위니즘에 따라 진화했다면 우리는 그들의 욕구와 목적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남을 해하려는 목적(이기성), 공감하거나 호혜적으로 도와주려는 욕구(이타성) 등등 말이다. 그러나 이 솔라리스라는 단일 행성 생물은 애초에 진화하여 만들어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주를 초월해 버렸다. 그것은, 아마도 다위니즘 진화의 방식이 아닌 또 다른 우주적 메커니즘으로 만들어졌기 때문 아닐까?


...라는 것도 나만의 가설일 뿐, 작품 내에서 솔라리스 학은 잡다하고 검증되지 않은 수백 수천 가지의 가설의 파편들이 난무한 채, 쇠퇴기를 맞이한 학문이다. 결국 주인공도 마지막에 그만의 색다른 가설을 세워 보지만, 그저 색다르기만 할 뿐 검증되지 않은 상태로 작품은 결말을 맞이한다. 이런 허무한 결말이 맘에 들지 않는 독자가 많을 것이다. 작품에서, 제기된 모든 의문과 가설, 질문, 탐구, 학설은 매듭을 짓기 거부하며, 솔라리스는 단지 '불가해할' 뿐인 탐구대상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 "어떤 교훈도 얻지 말지어니"가 교훈일 수도 있다. "서구권의 그 정해진 결말로 향해 가는 클리셰를 깨부수겠다"는 교훈일 수도 있다.


내가 읽어 본 동구권 SF의 보잘 것 없는 리스트 중, 비슷한 주제의식을 추구하는 소설이 있다. 바로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노변의 피크닉』이다. 이걸 서구의 가치와 대비되는 동구권 만의 특수한 가치라고 봐야 할지, 걍 우연일지, 아니면 서구권 SF에도 이런 주제를 가진 소설이 충분히 많은 것인지. 아직은 내 식견이 짧은 관계로 아리송하지만, 그냥 이런 공통점이 있으니 참 재미있네, 정도로만 읽어 주시면 될 것 같다.




이제 행성이 아닌 사람의 관계에 집중해 보자. 되살아난 인물인 하레이는 진짜 옛날의 하레이가 아닌, 단지 주인공 크리스 켈빈의 기억 속의 에피소드들로부터 짜맞춰진 사람이다. 그녀는 과거에 그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크리스는 옛날 하레이가 죽었을 때의 장면을 목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하레이는 원래의 하레이가 아닐 뿐더러, 기억이 절단된 하레이도 아니다. 오히려 크리스의 기억을 바탕으로 재창조해 낸 기억 속 하레이의 겉모습에 가깝다. 그녀는 자신이 원래의 '하레이'와는 좀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크리스에게 누구를 사랑하고 있는 거냐고 묻는다. 대답하기 매우 곤란한 질문이다. 마치 21세기 한국의 연인 관계 처럼. 복제된 나의 여자친구가 묻는다. 나야, 저년이야! (쟤도 너라고!)


솔라리스의 불가해함과 마찬가지로, 타인의 인식 또한 피상적인 것에 불가하다는 말인가? 그렇다 이것이 바로 스타니스와프 렘이 말하고 싶은 것일 테다. 인간의 인식이란 어쩌면, 우주든, 타인이든, 겉모습만을 이해하기도 벅찰 뿐, 내면의 메커니즘까지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우주와 행성의 불가해함을 얘기하면서도, 외계 지성체의 이해 불가능성을 얘기하면서도, 결국엔 자아와 타인의 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마무리. 거장 다운 솜씨다.




스타니스와프 렘 컬렉션

1. 『스타니스와프 렘 - 미래학 학회 외』

2. 『솔라리스』(현재 글)

3.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4. 『사이버리아드』

5. 『로봇 동화』


매거진의 이전글 경이적 스케일의 세계관, 오직 하드 스페이스오페라에서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