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나는 안되니까 늘어놓는 푸념섞인 부제목
브런치 또는 블로그로 판을 벌이는 사람 대부분은 그래도 어디서 글 좀 쓴다는 얘길 들어본 사람일 거다. 아, 물론 요즘은 그와 무관하게 블로그를 쿠팡파트너스 등등 수익 창출의 파이프라인으로 삼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건 논외로 치고. 아니, 논외로 칠 게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글쓰기로 나의 생각이든 마음이든 뭐든 표현해보고 하는 맥락에서는 다를 수 있겠지만 꾸준히 쌓아가야 쇼부(?)가 난다는 맥락에서는 한 가지일 수도 있겠다. 돈이 벌리든, 글을 잘쓰든...일단은 뭐 부럽습니다.
좋은 글을 잘 쓰고 싶다. 이건 아마 무언가를 글로 써낸다는 '글짓기'라는 행위가 나에게 인식된 이후부터 아마 변함없이 가져온 마음일 거다. 좋은 글, 잘쓴 글에 대한 정의나 생각은 아마도 계속 변해왔겠지만 다른 건 몰라도 글쓰기는 나에게 있어 그래도 남들보다 조금은 더 잘해내고 싶은 자존심의 영역이기도 하다. 고맙게도 나의 똥글, 망글들을 고운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사람들이 있어 나는 그래도 글은 좀 쓰는 솔삼이로 살고 있긴 하다.
하지만 나의 글쓰기는 '근데 이걸로 뭘 할 건데?'라는 질문을 마주하면 길을 잃곤 한다. 늘 이랬던 것은 아니다. 모두의 흑역사라고 하지만 나에겐 거의 치명타 수준인 싸이월드에는 정말 내가 뭘 할 생각도 없이 '싸질러놓은(너무 저렴한 건 알지만 도저히 이거 말고 표현할 방법이 없다)' 글들이 너어무 많다. 싸이월드 뿐이겠는가. 페이스북, 이글루스, 워드프레스...글을 게시할 수 있는 웬만한 플랫폼에는 나의 디지털쓰레기가 산적해있다. 그 누구보다도 완벽하고 꼼꼼한 디지털장례식이 간절한 사람, 바로 나다.
그때는 쓰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글이 마음에서 흘러내렸다. 그 흘러내린 마음들이 김연수, 김영하 같은 큰 그릇에 담겼으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라는 간장종지에 흘러 빛을 보지 못했다. 고작 싸이월드 다이어리 포도알로 남았을 뿐. 포도알은 도토리와 달라서 미니룸 벽지도 하나 살 수 없었다. 딱히 쓸 데가 없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썼다. 수강신청하는 학관 복도 컴퓨터에서도 쓰고, 시험기간에도 쓰고, 남자친구한테 차이고도 썼다.
그렇게 써재끼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지금의 나는 글을 읽으면 어떤 부분이 이상한지 빨리 잘 알아차리고 나만의 호흡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마음 먹고 글쓰기 트레이닝을 하려면 쉽지 않았을 거다. 그저 젊어 흘러넘치는 마음이 일단 양적승부를 먼저 보게 했고 과제로든 호기심으로든 닥치는 대로 많은 글을 읽어야 했던 상황이 아무렇게나 쌓여있던 나의 생각들을 잘 정돈해주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모로 갔지만 일단 김서방의 먼 친척까지는 만났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나의 글은 딱히 목적이 없었다. 그저 해소였다. 내가 깊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완성된 글을 하나 써낼 수 있게 된다면 이제 그 상황은 종료. 글쓰기는 나만의 엔딩요정이었다. 엔딩을 향해 계속 고민하면서, 기어코 엔딩에 가야 만날 수 있는. 하지만 요즘은 시키는 일 말고 내가 유일하게 조금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게 글쓰기인데 '그럼 이걸로 내가 뭘 해야하나..?'하는 생각이 앞서다보니 어떤 글을 써내는 데 있어 더 주저하게 된다. 그럼 계속 목적 없는, 해소를 위한 글을 쓰면 되나?
그건 더 어렵다. 이제는 무언가를 해소하지 않으면 못견딜만큼 차오르지 않고 흘러내리지 않는다. 이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부터 감정과 마음이 주르륵 흘러내리지 않고 밑이 쑥 빠진 채 검은 베이글(feat.에에올)만 남아있는 상태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다시 요동치는 마음이 찾아온다면 어딘가에든 또 열심히 쓰레기를 만들게 되겠지만 나이가 들어버린 나는 이제 그런 요동치는 마음으로 사는 게 더 두렵고 벅차다. 감정의 쓰나미에 휘둘리면 이제는 영 돌아오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다.
목적과 이유를 만들어주면 좀 나아질까? 너무 완성도를 생각하지 말고 뭐든 꾸준히 쌓으라고 하는데 여기서 어려운 건 완성도보다 꾸준히다. 그 노래 잘하는 김동률이 본인의 보컬에 되게 관대하다고 하는 것처럼 나 또한 내 글의 완성도에 관대하다(하지만 오빠의 정규앨범은 2011년 이후로 나오지 않고 있다...). 거기다 나는 꾸준함을 뒷받침할 마음의 온도까지도 필요한 사람인데 이 아랫목 온돌을 오랫동안 따뜻하게 계속 유지할 군불을 어디서 어떻게 때야할까.
나도 이제 어엿한 직장생활 15년차 자낳괴니까 돈이 되면 뭔가 열심히 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