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늘 나를 구해냈던 것
제목이 무색하게 간결한 글로 떼돈(?)을 번 미디어회사 창업자들이 쓴 책을 읽었다. <스마트 브레비티>라고 콘텐츠의 소비가 엄청나게 빨라진 요즘 시대에 한 번 생각해 봄직한 내용이었다. 사람들은 콘텐츠가 진짜 하고 싶은 얘기를 하기까지 깔아주는 이야기를 듣는 것에 있어 점점 인내심이 줄어가고, 이제는 내가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콘텐츠들이 세상에 넘쳐난다, 그렇기 때문에 더 간결하게 핵심만 보여주며 눈길을 사로잡아야 한다 뭐 대충 그런 내용이다. 처음에는 '아, 그렇지. 맞지' 하면서 읽다가 점점 들었던 생각은
아, 근데 진짜 나는 어쩌지?
브런치를 나의 글쓰기 플랫폼으로 선택한 것부터가 글러먹었다. 쓰는 사람 나름이겠지만 그 어떤 글쓰기 플랫폼보다도 텍스트깡패인 브런치 아니던가. 그리고 플랫폼 탓을 할 것도 없다. 인스타그램도 블로그처럼 쓰고 있는 마당에 무슨 연장 탓을 하나. 그냥 하고 싶은 말을 긴 글로 표현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불리해진 시대다. 나만해도 예전만큼 긴 글을 잘 읽지 못한다. 스마트폰을 일부러 저 멀리 두고 책을 읽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정말 내용 또는 저자가 웬만큼 흡입력이 있지 않는 이상, 내 손에는 어느새 스마트폰이 다시 들려있다.
글을 잘 쓰는 것만 해도 너무 어려운 일인데 글로 돈을 벌든 무언가에 기여를 하든, 그것을 수단으로 뭔가 일으켜보겠다는 것은 더욱 요원한 일이다. 사실 주변에서 친한 사람들이 자꾸 글을 써보라고 해서 괜히 설레는 마음에 이거라도 좀 열심히 하면 꼬깃꼬깃한 인생이 피려나 하는 생각을 잠깐 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부족한 나도 나지만 시장과 고객이 너무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결국 나는 이 수요 없는 글쓰기를 돈은 안되지만 나만 뿌듯하고 신나는 일로 잘 간직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내가 마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 글쓰기는 나를 여러 번 구해주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직장을 잃고 어쩔 줄 몰라하고 있을 때, 팀원이 소개해준 어피티 객원 에디터 일로 계속 글을 쓰며 꾸준히 수입을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예상보다 길어지는 구직에 점점 쪼그라들고 있을 때, 씨네21 이다혜 기자님의 글쓰기 수업 과제로 제출한 글에 '특별히 고칠 부분도 없고, 제게 좋기만 한 글'이라는 피드백을 받고 마른 대추 같았던 마음이 잘 익은 사과처럼 반질반질해지는 경험도 해보았다(지금 이렇게 예쁘게 표현하지만 그때 사실 꺼이꺼이 울었다).
얼마 전, 무기력으로 인한 노잼시기를 끝낸 것도 나의 글이었다. 김광진 콘서트에 다녀와서 쓴 글을 쑥스럽지만 광진님께 DM으로 보내드렸는데 나에게 인스타그램 팔로우 신청을 하신 걸 보고 언제 우울한 사람이었냐는 듯이 마음이 쭉 펴졌다. 사실 간결하게 써야 하네, 브런치가 글렀네, 고객과 시장이 변했네 하는 것은 다 개소리다. 얕은 재주로 자꾸 어떻게든 뭘 좀 취해보려고 하는 나의 개수작임을 잘 알고 있다. 결국 글은 내가 의도하는 대로 가는 수단이 되어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나를 구하려고 쓰고 또 쓰며 글을 쌓아가고 있을 때, 내가 예상치 못한 것을 툭 놓고 가겠지. 그게 뭔지 궁금해서라도 이번에는 마음먹고 꾸준히 글을 좀 써보려고 한다. 남들도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어떤 조직에 속해서 일을 하기 시작하면 정말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는 건지, 에너지가 없는 건지, 도무지 글이 써지질 않는다. 이번에는 이렇게 내가 일부러 시간을 만들어냈으니 꼭 꾸준히, 주 1회는 무조건 글을 한 편씩 쓰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