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일본 여행은 이번이 세 번째다. 큰 아이와 함께 둘이 오사카에 다녀오고, 두 아이와 함께 셋이 후쿠오카를, 그리고 올해 둘째 아이와 도쿄에 다녀왔다. 자주라고 할 수 없는 빈도지만 갈 때마다 비슷한 실수를 하게 된다. 이번 여행도 온통 헛발질과 어긋남으로 가득했다. 준비가 미흡해서라기보다 처음이어서, 혹은 낯설고 당황해서 생긴 실수들이었다. 완벽하게 준비한다고 해서 어디 여행이 계획대로 된 적이 있던가? 꼼꼼히 계획할수록 더 많은 구멍이 생겨난다. 어떻게 해도 완벽한 여행이란 정답은 없다. 그렇다면 여행 중의 각종 실수 자체를 여행의 한 재료로 사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 완전히 즉흥 여행을 즐기는 내공을 가진 자가 아니라면, 이러한 마음가짐은 즐거운 여행을 만드는 하나의 여행 기술이 될 것이다.
여행은 새로운 공간으로 삶을 밀어 넣어 익숙한 일상의 반복에서 일어나지 않던 실수와 균열을 가져온다. 바로 그것이 여행의 묘미가 아닌가?라고 말하고 싶지만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나는 것을 무엇보다 불안해하는 나라서 그렇게 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여행은 그런 두려움보다 더 큰 생의 활력을 불어넣어준다고 믿기에 허술한 내 모습을 들키더라도 해볼 만한 것이다. 예전이라면 그런 내 모습이 바보 같고 창피해서 어디 말도 못 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혼자 끙끙 앓았을 텐데, 이제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웃을 수 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런 면에서 여유롭고 뻔뻔해지는 일이다. 그런 실수들이 가득한 이번 여행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한 점의 치부를 남기는 일이 될 수도 있지만, 오십 대인 나와 십 대인 S가 함께 보낸 한 시절을 묶어 풍요롭고 다양한 삶의 조각으로 만들어보고자 한다.
올해 S는 고2가 되었다. S의 초등학교 졸업 전에 갔던 후쿠오카여행 후 5년이 흘렀다. 그동안은 코로나 팬데믹을 통과하기도 했고 생활의 여유 면에서도 여행을 생각하지 못했지만,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가고 싶다는 마음은 조금씩 커져 가고 있었다. 그런 나와 상관없이 S가 지나가듯 말했다. 곧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디지몬 어드벤처’를 보고 싶다고.
“보고 싶으면 보면 되지. 뭐가 문제야?”
“일본에서 개봉하는데요?”
S가 눈이 동그래져서 물었다. 나는 일본에서 개봉한다는 이야기인 줄은 몰랐지만,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일본에서 개봉했다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새 영화가 궁금하던 차였다. 한국에서는 아직 개봉 일정이 나오기 전이었고 언제 개봉할지도 알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말이 나온 김에 영화를 보러 일본으로 가면 어떠냐고 물었다. 아들은 디지몬을, 엄마는 미야자키의 새 영화를.
“그래도 돼요?”
S가 더욱 놀라 되물었다. S의 물음에는 두 가지 뜻이 있었을 것이다. 영화를 보러 일본으로 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 그래도 되느냐는 뜻일 것이고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을 본다는 것은 한글 자막이 없다는 것인데 가능하냐는 물음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안 될 이유가 있겠느냐며 가기 전까지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여행 중에 만난 지인의 물음에서 나는 S의 물음에 또 다른 뜻도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때 지인은 어떻게 고등학생 아이와 단둘이 여행 갈 생각을 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게 단순히 사춘기인 아들과 둘이 하는 여행에 관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입시 준비에 한창일 고등학교 2학년 자녀와 여행이 가능하냐는 물음이었다.
S의 질문에는 자신이 고등학교 2학년인데 학교를 빠지고 여행을 가도 되느냐는 물음도 담겨 있었을 것이다. ‘지금 할 수 있다면 지금 하자’는 주의인 나는 나중에 행복하기 위해 현재를 미루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친정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생긴 개똥철학이다. 나중에,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가서, 그렇게 미뤄진 예측 불가능한 미래보다는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가 가장 좋을 때라고 생각하기에 당장 실행에 옮겼다.
그렇게 즉흥적으로 가게 된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은 영화관에서 영화 보기였다. 영화관이야 도시라면 어디에나 있겠지만 영화 보기에 가장 편한 곳을 기준으로 장소를 물색했다. 그리고 S가 하고 싶은 것 하나로 후지산 보기, 내가 하고 싶은 것 하나로 영화로 만들어진 만화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배경인 가마쿠라에 가는 것을 곁가지로 두니 도쿄로 가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것 같았다. 도쿄로 가서 하루는 가마쿠라를, 하루는 후지산을 가고 하루는 영화를 보기로 했다. 왠지 배보다 배꼽이 커진 듯한 여행이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일정에는 충분히 여유를 두었다. 이외의 일정은 되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할 것이라고, 꽤 완벽한 계획이며 여유 있는 여행이 될 것이라고 짐작했다. 물론 짐작대로 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