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OWL ESSAY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luto owl Apr 25. 2022

내 하루의 삶을 1X만원에 팝니다 05…

이곳은 돈 냄새가 나는 용암 지옥...

그렇게 아픈 다리로 어제와 똑같은 일상을 시작한다.

아침 7시가 되기 전까지 근로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그들 중 젊은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하긴 현장에서 내 바로 위의 나이가 55세이니 노동시장이 얼마나 노령화되었는지 어렴풋이 가늠이 된다.

노동자들의 아침 담화(?)가 끝날 때쯤이면 김 부장님이 앰프와 마이크를 들고 와서 체조를 시작한다.

정말 반복된 일상 그 자체다.


다리의 고통 역시 그러했다.

'오늘은 꼭 병원 가야지' 그 생각뿐이었다.

하루를 시작하는 구호로 모두가 개미떼처럼 각자의 위치로 흩어진다.

나 역시 중국인 인부 2명과 지하로 향했다.

계단이 보인다.

한 발짝 내딛을 때마다 커지는 통증.

쩔뚝거리며 내려간다.

그리고 어제와 같은

아마도 내일 역시 같을 것 같은 반복된 노동을 시작한다.


그렇게 또 하루의 노동이 끝난 후

집에 도착한 난 재빨리 샤워를 했다.

6시에 병원 진료가 마감이라 어떻게든 시간 안엔 가고 싶었다.

그냥 병원에 가도 상관없겠지만, 왠지 지저분한 모습으로 가고 싶지 않단 생각이 들었다.

부랴부랴 씻고 병원에 도착하니 5시 55분이었다.

조용하다.

수납받는 여직원조차 보이지 않았다.


순간 아 망했다…

그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접수대 앞에 쭈뼛거리며 서 있는 순간,

간호사 한분이 접수를 도와줬다.


다행히 의사 선생님을 뵙고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의사 선생님께 다리의 증상을 말씀드렸고, 그는 나에게 바지 걷어보라    다리의 이곳저곳을 만져봤다.

그는 나에게 십자인대가 느슨하다고 말했다.

이것이 선천적인 것인지 아님 사고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말했다.

시간이 늦어 물리치료는 못하고 3일 치 약을 처방받아 왔다.


그날 약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무릎의 통증이 간간히 왔다.

하긴 한봉 먹고 ‘안 아파, 멀쩡해!’ 이러기엔 무리가 있다.

다만 조금씩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다음날 새벽…

여전히 무릎이 쑤신다. 그리고 여전히 계단은 무시무시했다.

얼른 현장에서 아침식사 후 약을 먹어야겠단 생각뿐이었다.

한봉이라도 더 복용해야 다리가 덜 아플 듯싶었다.


일은 언제나 똑같았다.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자재를 정리하고, 쓰레기를 치우고, 작업현장에 적절한 자재를 공수하는 것이다.

이럴 때 종종 타워크레인을 사용한다.

반장님(이모부)은 무전기로 타워크레인이랑 송수신을 해서 철근을 포함한 여러 자재 및 폐자재를 옮긴다.

여기서 결착을 잘해야 낙하물 사고가 발생하지가 않는다.

이때 실링 바(로프)를 이용해 나와 다른 인부 2명이서 결착하는데, 익숙지 않은 나는 늦기도 늦거니와 제대로  결착을 못해 딜레이가 걸리기도 한다.


이때 또 뒤에서 짜증 섞인 반장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죄송합니다” 하고 나름 분주히 다시 결착하지만, 성질 급한 반장님은 이내 내 곁으로 와서 당신 스스로 결착하고 타워 크레인을 올린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선 이렇게 하라는 주의(?)인지 조언(?)을 듣는다.

현장에선 모두가 그렇다.

하나같이 성격이 급하고, 목소리가 크다.

그리고 행여 나 때문에 작업이 더디면 어느새 내 옆에 끼어들어 자신이 대신한다.


나는 이 상황이 미안하면서 또 한편으론 짜증이 난다.

여기엔 초짜가 있으면 안 된다.

여기엔 행동이 느린 이가 있으면 안 된다.

모두가 제 역할이 있는 기계처럼 알아서 움직인다.

난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할까?


그렇게 기계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건 사회든 회사든 조직이든 어디나 마찬가지다

난 그런 조직이 싫어 늘 혼자 무언가를 해 왔다.

비록 금전적 이윤이 적거나 아니면 손해를 보긴 했지만, 나름 나 스스로 주도적 삶을 이끈다 생각했다.

고작 4일밖에 안된 이 상황에서

나는 돈 냄새가 용암 지옥처럼 펄펄 끓는 이곳을 좋아하긴 무리라고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가는 안도감 때문인지

아님 약기운 때문인지 무릎은 아침보단 덜 아팠다.

지친 몸을 좌석에 묻은 체 고개를 돌려 본 차창 풍경…

반대편 차선의 스쳐가는 차들과 더불어

저 멀리 보이는 서해 끝자락은 오후의 석양으로 눈부시게 부서지고 있었다.




현장의 타워 크레인(좌) , 인양구로 내리고 있는 순간(우)





https://brunch.co.kr/@pluto-owl/403

https://brunch.co.kr/@pluto-owl/402


https://brunch.co.kr/@pluto-owl/401


https://brunch.co.kr/@pluto-owl/399


매거진의 이전글 내 하루의 삶을 1X만원에 팝니다 0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