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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Sep 27. 2024

[마지막 회] 8400km, 우리는 연결돼 있어

인연은 이어진다

“한국어 학과 대학원에 합격했어!” 

귀국 후 한 달, 릴랴의 소식에 나는 펄쩍 뛰었다. 그녀는 서울에 있는 모 대학의 석사 과정에 합격했고, 올 가을부터 2년간 한국에 머물게 되었다. 그림책 모임 사람들 모두 환호했다. “진짜 인연이다, 인연!” 
 


아이슬란드 도서관 발표 행사로 만나게 된 사서 릴랴. 이후 그녀는 나의 여행 내내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었다. “대단한 의미가 있을 필요는 없어. 그냥 시도해 보는 거지. 네가 뭔가를 하는데 망설이지 않아서 기뻐.” 릴랴의 말은 내게 큰 용기를 주었다. 여행 중 겪은 경험과 벅차오르는 감정에 흥분하여 홀로 숙소의 방안을 서성이다가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면, 그녀는 그 여정에 자신도 함께 걷는 것처럼 설레어했고, 나도 내 나라를 여행해야겠다며 웃었다. “매력 있는 사람이 매력 있는 사람을 끌어당기지!”라는 표현으로 내가 여행 중 만난 다정한 사람들과의 추억을 기뻐해 주었다. 자녀가 있는 중년 여성의 혼자 여행기가 드물어 아쉽다는 말에, “네가 그 틈을 메워 줄 거야!”라는 멋진 말로 나를 뭉클하게 했다. 나는 무척이나 운이 좋은 자였다. 

그녀는 내가 동경하는 영부인의 집 앞으로 나를 데려가 주고, 취향에 맞는 로컬 전시회와 맛집을 소개해 주었다. 귀국 전날 우리는 다시 만났고, 수도 레이캬비크 근교의 새 서식지를 방문했다. 그곳은 눈부실 만큼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우리는 가만히 서서 새들의 소리를 들으며 그 순간을 함께했다. 





우리는 내일모레 다시 만난다. 서울에서. 

“한국에 가면 차를 렌트해서 전국 방방곡곡을 돌 거야. 여행에 끼워줄게. 내 차 타.” 그녀가 짓궂게 웃었다. 운전을 못 하고 길눈이 어두운 나는, 그렇게 그녀가 안내하는 우리나라 여행을 기대하고 있다.



릴랴가 한국에서 가장 두려운 것이 보증금 문제라고 말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아이슬란드에서는 보증금이 많아야 월세의 두 배정도지만, 한국에서는 10배에 달하고, 외국인들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는 흉흉한 루머에 그녀는 벌써부터 떨고 있었다. 외국인이라면 무조건 한국에 열광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급 부끄러워졌다. 우리는 그녀가 한국에서 살 집을 함께 찾아보기로 했다. 이 분야에 전문가인 나의 다정한 벗을 앞세워서. 릴랴 또한 아이슬란드 친구와 함께 온다고 한다. 접점이 없을 것 같은 두 나라(실제 아이슬란드에는 아직 한국 대사관이 없다). 이렇게 여자 둘의 인연은 넷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제 한국의 자매들이 나설 차례다.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이후의 이야기. 

압도적인 폭염이 대한민국을 집어삼키던 8월 중순, 릴랴가 입국했다. 같은 시기,  아이슬란드의 기온은 7도 정도였다. 더위에 지친 그녀는 음식점에서 음식에 거의 손을 대지 못했다. 9월, 나는 메시지로 그녀의 안부를 물었고, 그녀는 한국어 수업이 너무 어려워 집에 와서 엉엉 울었다고 했다. 에구, 어떡해. 힘내! 내가 도울 게 있으면 뭐든지 말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 정도였다. 그러나 얼마 후 그녀의 SNS에는 한국의 맛집 투어 사진이 꾸준히 게시되기 시작했다. 잘 지내고 있군. 



8400 킬로미터. 한국에서 아이슬란드까지의 항공 거리. 까마득한 그 거리를 날아 우리는 이어졌다. 이 모든 것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인연을 붙잡고 함께 걸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순간에도 수많은 '우리'가 서로를 이어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씩, 웃음이 나왔다. 




그동안 '아들 둘 엄마의 대한민국 탈출기'를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연재를 하는 동안 많이 행복했습니다. 

이제 본연의(?) 다크한 이야기로 돌아가야 되나, 싶네요^^; 

뭐든지 간에 계속 써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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