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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Jun 18. 2024

7. 아이슬란드 도서관에서 발표를 하다

세상에 이런 일이 

오늘은 아이슬란드 수도의 시립도서관에서 한국 그림책에 관하여 발표하는 날이다. 새벽녘, 그렇게 발표하면 안 된다고 컴플레인을 받는 꿈을 꾸다 잠에서 깼다. 거울을 보니 뭔가에 물린 건지 피곤해서인지 아랫입술이 심하게 부어 있다. 이전 숙소에 두고 온 건지 세면 가방이 없어졌다. 가방을 뒤지니 다행히 일회용 칫솔과 치약 등이 있어 대강 씻었다. 



도서관 사서 릴랴가 숙소로 픽업을 하러 왔다. 도서관은 다운타운에서 차를 타고 15분 정도를 가야 한다. 차 안에서 릴랴와 일상적인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었지만 머릿속은 발표 생각으로 꽉 막혀 있다. 대화를 이어가려고 신경을 써보지만 곧 차 안에는 정적이 감돈다.    



“발표 망하면 어쩌죠?” 

“망하면? 할 수 없지 뭐! 준비한 선물 쫙 풀어놓고 와요. 그것만 해도 완전 인기일걸? 그럼 대성공이지 뭐! 아하하하~!”



한국에서 이 프로젝트의 전 과정을 함께 해온 그림책 모임 분들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슬쩍 안도하는 마음이 든다. 한술 밥에 배부를 수 없다. 시도만으로도 기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잘해 내야 한다는 비장한 마음이 올라온다.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 일 수 있다. 



이 프로젝트에는 많은 이들의 사랑과 염원이 걸려있다. 그뿐일까. 희망, 꿈, 가능성. 애정, 정성, 노력... 수많은 단어가 떠오른다.





작년 3월, 나는 아들의 사춘기라는 폭풍우에 휘말렸다. 대안 중학교에서 일반 중학교로 전학 나온 아들에게는 여러 문제들이 이어졌고, 나는 아들에 대한 원망과 엄마로서의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으로 끝없이 바닥을 쳤다. 그러다가 우연히 온라인 글방에 스며들었다. 글방에 나의 감정을 쏟아내고 책모임 사람들로부터 위안을 받으면서 여전히 험한 일상 속에서도 나는 완전히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실패 자체가 찬양되는 나라라는 아이슬란드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난생처음 가슴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귀에까지 들리는 듯했고, 그렇게 항공권을 덜컥 지른 후, 나 또한 아이슬란드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싶다는 생각에 아이슬란드의 아무 도서관에 메시지를 보냈다. 



그다음부터는 내가 한 일이 아니다. 




아이슬란드 도서관 사서 릴랴는 소위 한국에 미친 한국 전문가였다. 그녀는 한국 그림책 발표를 위한 전 과정을 제대로 준비하고 홍보하겠다고 했다. 나는 기쁨과 공포에 비명을 질렀다. 그림책 모임에 합류한 지 겨우 3개월, 나는 절대 그 분야 전문가가 아니었다. 영어는 또 어떻고. 그러자 그림책 모임의 여인네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척척 앞으로 나왔다. 우리는 여섯 개의 카테고리로 소개할 책들을 정리했다. 출판사에 연락해 그림책을 지원받아 보자고, 그 그림책을 아이슬란드 도서관에 기증하자고, 이참에 한국을 알릴 수 있는 당일 활동을 기획해 보자고, 고운 우리말을 캘리그래피 글씨체로 써서 전시를 하고, 한글 자모음 도장 찍어보기 등 체험활동을 기획하고, 실제 한복을 소개해보자고 했다. 그리고 그 모든 활동을 위해 후원을 받아보자고 했다. 



너무나도 설레고 흥분되는 일이었다. 부끄럽고 두려운 일이었다. 이 준비 과정에서 못난 아들의 못난 엄마로서의 나의 자아와 그저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자아가 자주 충돌했다. ‘내 까짓 게 뭐라고’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하겠다고? 돌겠네.’ 나는 자주 뒷걸음질을 쳤고 그때마다 중얼거렸다. 나는 혼자가 아니야. 이건 나 혼자 하는 게 아니야. 나는 그녀들의 영혼을 얹고 가는 거야. 나는 이번 프로젝트의 메신저일 뿐이야. 나는 두렵지 않아. 나는 두렵지 않아. 





그림책 모임 분들뿐만이 아니었다. 함께 설레어하고 지지해 준 친구들, 지인들, 동네 독서모임과 글방 모임 분들, 책을 지원해 준 출판사들, 후원해 주신 분들……. 



지난 3개월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정부기관 후원을 받을 수 있을까 싶어 여러 군데 문을 두드린 일, 15여 개 출판사에 지원을 받기 위해 오갔던 수 차례의 메일, 책에 영문 해석 본을 만들어 달고, 각종 물건을 사고, 50여 권의 책을 포함하여 아이슬란드로 두 차례에 걸쳐서 대량 택배를 보내고,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으면 어떡하나 발을 동동 굴렀던 날들.  



그리고 이제 한 시간 후면 발표. 




몇 명이나 행사에 참여할 수 있을지 전혀 예상할 수 없다는 것이 릴랴의 말이었다. 관련 포스팅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렀지만, 실제 참여 여부와 무관하게 ‘시간 되면 꼭 올게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이슬란드 인들의 스타일이라나. 때마침 독감이 돌고, 1년에 3개월밖에 없는 백야의 여름철 휴가철이 시작되어 사람들이 근처 다른 나라들로 이미 많이 빠져나갔다고도 했다. 아이슬란드에 살고 있는 한국인은 약 30명. 





"있지, 나 통역하는 거 아무래도 안 되겠어. 사람들 앞에서 특히 어린이 책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퍽. 누가 퍽치기를 했나? 쓱 내민 릴랴의 말에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우리는 총 두 권의 책을 현장에서 함께 낭독하기로 했었다. 내가 한국어로 한 줄 읽으면 그녀가 영어나 아이슬란드어로 한 줄 읽는 방식으로. 그래서 그녀가 공부할 수 있도록 영어 번역을 달아서 미리 보냈었다. 실감 나게 읽지 않아도 되고 그냥 현장에서 듣는 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단계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해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녀의 활기찬 성격에 비추어 봤을 때 전혀 무리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전날에 내가 물었을 때 대답이 석연치 않았는데 그러곤 나도 마음이 바빠 잊고 있었다. 


"아... 그래? 알겠어." 


나는 그녀보다 열 살도 더 많은 어른이었다. 안 된다며 매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화를 낼 수도, 혼을 낼 수도 없었다. 어쨌든 이번 일은 그녀가 없었다면 하지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발표할 책들은 통역이 있다는 전제로 고른 책들이었다. 한국어 낭독만으로는 직관적으로 이해하기에 한계가 큰 책들이었다. 나는 이 상황에 대처가 되어 있지 않았다.




발표 날보다 먼저 책을 보냈던 것은 일주일 전부터 사전 전시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개의 타이틀 당 두 권의 책을 제공하여, 한 권은 독자가 삽화에 집중할 수 있게 하고, 나머지 한 권에는 영문 해석을 달아 이해를 돕고자 했다. 그러한 의도도 신신당부해 두었는데 막상 현장에 가보니 책이 그대로 택배 박스에 있었다. 책들에 도서관용 정식 넘버링이 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추후에 그 도서관에 기증되는지 몰랐다는 말에 나는 입이 쩍 벌어졌다. 책을 기증받은 과정에 대해 수 차례 강조하고 또 강조했는데. 그 도서관에 기부한다는 말을 몇 차례나 얘기했는데. 행사 일주일 전부터 어떤 식으로 책을 전시해 달라고 얘기했는데. 어디서 실수가 난 걸까. 



많은 의문과 질문이 머릿속에서 빗발쳤다. 소통의 문제였을 수도 있고, 현장 상황이 여의치 않았을 수도 있었다. 수많은 행사 스케줄이 꽉 찬 시립 도서관, 우리 행사만 신경 써달라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지금은 그걸 따질 필요도, 시간도 없었다.





도서관 오픈 및 행사 30분 전, 릴랴는 느긋했다. 꺼내고 전시해야 할 것들이 수만 가지. 50여 권의 책, 한지, 보자기, 아이들 한복, 캘리그래피 글씨 엽서 및 각종 부채, 독후 활동을 위한 자료들과 먹거리. 머리가 새하얘지고 입이 바싹바싹 탔다. 딱 봐도 제시간에 준비되긴 어려워 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두 시간 전에는 도착해야 할 것 같은데. 전날 세 번이나 물어봤지만 릴랴는 30분이면 충분하다고, 다 생각해 두었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더 이상 푸시할 수는 없었다. 



다른 사서 등 도서관 직원들은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떠는 등 유유자작했다. 사이가 나빠 보이진 않았는데 절대로 도와주지 않았다. 문화인가. 잠시 릴랴의 눈치를 보던 나는 행거를 끌어와 한복을 전시하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고 손이 가는 대로 닥치는 대로 내 마음대로 했다. 한국에 있는 지인들 생각이 간절했다. 그들이 여기 있었더라면 말없이 군대처럼 움직여줬을 텐데. 아.......! 




어느덧 10시 30분. 아버지와 딸 인 듯한 백인 두 명이 와서 우리의 어수선한 상황을 슬쩍슬쩍 쳐다봤다. 아직 멀었는데. 어서 오시라고 인사를 했다. 



10시 45분. 한국에서 이렇게 말없이 행사가 15분이나 지연된다면 삿대질, 혹은 최소한 컴플레인은 나왔을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내 등에서 흐르고 있는 땀을 감지했는지, 원래 그러려니 하는 민족인 건지, 혹은 감정을 잘 숨기는 사람들인지, 잠시 후 고함을 지르면서 자리를 뜨려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기다리는 이들의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당연히 준비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나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돌연 사람들 앞에 섰다.



사실 어떤 식으로 발표를 진행하면 좋겠는지 사전에 레슨 플랜을 짜서 릴랴에게 보냈었다. 발표 순서 및 시간을 최소 5분 단위로 짰고, 그 문서에 따르면 이 발표의 시작을 여는 것은 그녀였다. 행사의 취지 및 자신과 나를 소개하는 것이 그 첫 순서였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가장 뒤에 서서 나도 관객이요, 하듯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래 네가 쭉 하면 돼,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Hello, everyone……”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연재일이 들쑥날쑥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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