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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들

by 문창승

어느 날 강풍 한 줄기가

뒷마당 한구석을 곁눈질처럼 훑고 지나갔다

우수수수, 하고

갓 맺힌 아기 열매들은 힘없이 떨어져 죽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당신이 하필 그곳에 나무를 심었기 때문이라고


할아버지는 아버지에게

네가 그곳이 가장 보기 좋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당신이 하필 그 불량한 씨앗을 사 왔기 때문이라고


어머니는 또 아버지에게

당신이 바로 그 씨앗을 사 오라 일렀기 때문이라고


누군가의 탓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가훈이

집안 대대로 전해 내려온 것처럼

온종일 그렇게 시끌벅적했더랬다


그 와중에 삼촌은

이미 바람 지나간 그 자리를

매일 밤 돌아가며 서서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고,

뒤늦고 무의미한 시늉을 제안하는데


한심한 난장판 속을 헤집고 들어오는 아이

품에는 떨어진 열매들이 수북이

곧 터질 듯한 눈망울로 애써 덤덤히


바람이 분 것뿐이에요

다만 그 자리에 열매들이 있었고

다만 그 열매들이 너무 어렸고

다만 그 바람이 잔인하게 강했을 뿐이에요


결국에 복받쳐 터져 흐르는 눈물은

곧 썩게 될 열매들의 비극 위로

고요해진 가족은 그저 고개를 숙이고

황량해진 뒷마당엔 밤그늘 드리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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