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47화 / 5장 전투 수도원
장편소설 빛의 여정 47화 / 5장 전투 수도원
"아나트라는 마굿간 크기만큼 어마어마한 멧돼지인 울로메히와 홀로 싸우기 전, 동굴 속에서 수 없는 낮과 밤을 지내며 주문 연습에 집중했었다. 너무 힘들어 한 때는 울기도 했고 잠시 미쳐서 실성하기도 했지만 홀로 고독히 지내던 아나트라는 마침내 자기 안의 한계를 부수어 내며 주문을 터득했다. 그녀에게 쥐어진 것이란 오로지 나무 막대기 하나였으나 울로메히는 그녀의 광채에 눈이 멀었고 건물 높이만큼 치켜든 발굽으로 저항하려 애썼지만 하늘에서 내리치는 섬광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울로메히는 온 세상이 떠나갈 정도로 괴성을 질러대며 먼지 처럼 사라져 갔다. 이때 아나트라는 그 누구보다도 강해져 있었다." -선지자의 증언 중 발췌-
"피.데.인.티. 또박또박 하나씩 차분히 외워봐"
베일런이 하체와 상체의 자세를 교정해주며 정면을 바라보게 하고 들 풀로 채워넣은 허수아비에 주문을 외쳐보게 했다.
"피.데.인.티! 피조물이 빛으로 어둠을 뚫게 하소서!"
"아냐아냐 로이딘, "피데라"를 빠뜨려 잖아? 다시"
베일런이 말했다. 로이딘은 자세가 고정된 채 계속 허수아비만을 응시하며 입으로만 고래고래 소리쳐야 했던지라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온 몸이 뻐근하기 시작했다.
"피.데.인.티! 피데라여 피조물이 빛으로 어둠을 뚫게 하소서!"
로이딘은 외쳤으나 옆에 있던 베일런의 반응이 뜨뜨 미지근 해 보였다. 살짝 동공을 돌려보니 만족스럽지 않은 듯 했다. 그런데 여기서 로이딘의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려주었다.
"지금 이건 뼈대를 세운다고 생각해야 해. 1인실에 가서 조용히 암송한다거나 공동 연습장에서 소리쳐 외치는 것 모두 네가 알아서 해야만 해. 만일 네가 이 연습을 게을리 한다면 시간과 에너지만 계속 소비될 거야."
로이딘은 다시 자세를 바로 잡았고 허수아비에 주문을 외쳐댔다. 그러나 그 어떤 마법이나 이상한 현상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벌써부터 기대하는 것은 잘못된 것일까?
베일런은 참을성있게 그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그가 계속 외치고 자세를 고치고를 반복하는 것을 지켜봐주었다. 로이딘은 뭔가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 것을 말했다.
"뜬금 없지만 베일런, 당신은 호랑이 선생님이 아니라 다행이에요. 저에게 글을 가르치려 했던 어떤 선생은 매로 때리기도 하고 폭언을 하기도 했거든요"
베일런이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그게 능사라고 생각하는 무식한 인간들이 있기 마련이야. 하지만 진정한 피데리시스의 교육자들은 그렇지 않지.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 게 아냐 지금. 로이딘? 정신차리고 다시 해 봐."
베일런이 이야기 해 주기로는 실제 전투 상황에서 백병전이든 혹은 화살이 난무하는 때이든 간에 주문을 안정적으로 쓸 수 있게 하는 바른 자세는 반드시 필요하다 말했다. 하체의 힘이 부족하면 주문의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오히려 같이 주문에 따라 같이 쓸려 나가는 경우도 있으며 상체의 힘이 부족하면 주문의 유지력이 크게 떨어져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하고 적의 창검에 맨 몸으로 맞아 죽을 수 밖에 없다라는 게 이유였다. 그 사실을 알려주니 좀 더 자세에 신경이 써 졌고 다리를 어깨만큼 벌리고 살짝 엉덩이를 내리고 꼿꼿이 상체를 핀 채 팔은 가슴 높이에서 유지해야 했다. 로이딘은 연습장에 들어왔을 때 베일런에게 시범차원에서 주문을 보여 달라 했지만 완강히 거절했다. 그가 두루뭉실하게 이유를 둘러대긴 했으나 대충 들어보니 특수한 상황에서 이용하게 되는 주문 같았다. 시간이 지난 연습장에서 베일런이 추가설명을 했다.
"피데라시스들은 보통 순례 혹은 여정을 가게 되면 지팡이를 많이 사용하지. 실제로도 효과적인 무기이기도 하고. 그런데 항상 그런 건 아냐. 일반 병사들과 같이 날이 선 예기들이나 철퇴 같은 둔기들 모두 사용하고 있어. 네가 나중에 진달라한테 어떤 무기를 받을 지 모르지만 무기를 사용 할 줄도 알아야하고 주문도 동시에 집중 해야 해"
동시에 할 수 있으려나? 아무튼 그건 아직 까마득 해 보였다.
로이딘은 첫 훈련을 마치며 연습장을 나갔고 루네가 두번째로 들어와 수업과 훈련을 받았다. 시테온은 1인실에서 잠을 자는 모양인지 아직 보이지 않았다. 로이딘은 단순한 문구를 외치는 것이 정말로 힘을 발휘 할 수 있을 지 의심의 기운이 가득 찬 상태였다. 베일런에게 반복 연습만이 그것에 대한 해답을 제공해줄 것이란 말만 들었다. 로이딘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양피지에 적힌 주문을 보았다. "피데인티, 피데라여 피조물이 빛으로 어둠을 뚫게 하소서" 한 동안 그것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눈이 아파 깜빡이며 문질렀다. 이번에는 눈을 감고 조용히 그 주문을 되뇌어 보았다. 몇 번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의식이 잠으로 빠져들었다. 정신 차리고 두 눈을 뜨니 쌍꺼풀이 져 있는 것 같았고 눈덩이가 무거웠다. 그는 혼잣말로 궁시렁 거렸다.
"이 문장만 주구장창 반년을 외워야 한다니....말이 안 돼"
차라리 기도문이라던지 책 한 페이지를 뜯어서 주었더라면 읽는 순간 순간 집중할 수 있었겠지만 계속 짧게 끝나는 구절에 대한 반복은 잠만 가득 몰려오게 했다.
그는 갑자기 간만에 몸을 써서 그런지 피곤이 몰려와 침대로 갔다. 그리고 냅다 누웠다. 코 위의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자신의 주문을 외워보았다. 한 번 더 외워보았다. 그리고 한번 더. 그리고 의식이 사라졌다.
한편 루네는 자세를 굉장히 잘 잡고 있어 베일런에게 칭찬을 듣고 있었다.
"로이딘보다 훨씬 낫다야!"
그녀는 로이딘과 같은 자세로 허수아비를 바라보며 주문에 집중하려 애썼다.
"아엘리아, 피데라여 당신의 피조물이 폭풍처럼 몰아치게 하소서"
자세는 통과였지만 주문이 지적을 받았다. 베일런은 발음에 유의해야 한다는 까탈스러움을 첨가했다.
"아엘리아를 외칠 때 고대 북부어 중 하나거든? 그래서 아 쉬고 엘리아 해서도 안되고 아엘 쉬고 리아 해서도 안돼"
"네? 그럼 어떻게 외쳐야 해요 혀 아플 것 같은데?"
루네가 엄살을 피웠지만 베일런은 다시 설명해주었다.
"아엘리 짧게 쉬고 아 해야 맞아. 왜냐하면 아엘리"야"라고 외치는 경우도 있어서 무효가 된다고. 생각해봐 발음 하나 차이로 전쟁터에서 주문이 안 나와 목이 날아간 전우들이 얼마나 많은 지 아니?"
그녀는 다시 발음을 교정받고 주문을 외쳤다. 그러자 이번에는 자세가 삐뚤어졌다. 한쪽을 고치니 다른 한쪽이 부실해지는 것을 여러 번 봐주어야 했고 첫 출발은 로이딘보다 좋았으나 결국엔 베일런이 보기에는 모두 초보자였던 것이다.
루네가 물러가고 세번째 학생인 시테온이 얼굴이 부은 채로 참석했다. 베일런이 가는 대신 다른 연습생을 시켜 깨워야 했고 베일런은 인내심을 발휘했다. 시테온은 죄송한 줄도 모르고 일단 자세부터 잡으려 했다.
로이딘과 루네에 비해 시테온의 자세는 너무나 형편없었다. 약간 화가 쌓인 베일런이 신경질적으로 대하려 하다가 가라 앉히기를 반복했다. 자세를 잡고 이번에는 주문을 외치는 시간이였다. "레피오, 피데라여 당신의 피조물을 온기로 살피소서" 기대를 안 하고 있던 어두운 표정의 베일런이 완벽한 발음에 귀를 의심했다. 베일런이 다시 한번 외쳐보게 했다. 다리가 살짝 떨리는 것 같았지만 허수아비를 향해 완벽하게 주문을 말했다.
"앞 선 두 학생보다 월등한 발음이군 그래"
베일런이 칭찬했다. 어깨가 하늘에 솟을 듯한 시테온은 거만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지만 후달리는 다리를 다시 교정해야 했다. 시테온에게도 마찬가지로 주문 연습의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해 베일런은 설명했다.
"시테온, 너는 가장 위급한 순간에 누군가를 살릴 마지막 희망이야. 숨 한번 내 쉴 시간이라도 주문을 놓친다면 누군가는 이미 세상을 떠날거야. 전투에서 피를 너무 흘려 얼굴이 창백해진 예전의 내 전우가 기억나는 군. 아무튼 너의 주문에 앞으로의 승전보 주인이 누가 될 지 모르니 집중하도록"
시테온도 어느새 훈련을 다 마치고 갈 길을 갔다. 오늘의 교육을 마쳐 가장 피곤한 이는 베일런이였다. 그는 두 눈을 만지며 아무도 없는 연습장에서 기지개와 하품을 크게 내쉬었다. 그가 허수아비 상태를 한번 점검해보고 연습장을 나가려는 데 연습장 2층의 테라스에서 누군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형상에 깜짝 놀라 긴장한 베일런은 자세히 올려다 보았다. 다름 아닌 수도원장 얀자였다.
"아니 원장님. 여기서 뭐하고 계십니까?"
베일런이 물었다. 그러자 수도원장 얀자가 되물었다.
"새로운 친구들이 어떤가 하고 보고 있었네. 베일런 어떤가? 기대되는 친구들인가?"
베일런이 잠깐 손을 비비며 시선을 다른 곳에 두다가 답했다.
"수많은 호밀 알 중 하나 뿐인 것 같습니다."
베일런의 대답에 웃으며 얀자가 말했다.
"허허, 기대 이하였던가 보군. 아까 보니 상당히 부실하긴 했다만 그래. 그렇지."
베일런이 얀자에게 물었다.
"원장님, 이 세 친구가 잘 해낼 수 있을 까요?"
"낸들 아나? 오직 피데라께서만 아시겠지. 허나 호밀 알 중 하나라니 기분이 좋구만?"
"예? 아니 왜요?"
베일런은 자신의 기대이하란 발언을 좋게 해석하는 원장이 궁금했다. 얀자가 답했다.
"위대함은 거창함에서만 나오지 않으니까."
48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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