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48화 / 5장 전투 수도원
장편소설 빛의 여정 48화 / 5장 전투 수도원
전투 수도원에서 일상을 적응하는 데엔 꽤 힘이 들었다. 로이딘 일행은 주어진 일정에 맞추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했고 개인적인 시간은 오로지 주문을 익힐 때에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로이딘은 계속되는 예배와 수업들이 들어보기만 한 신학교의 일정과 비슷하지 않을 까 싶었다. 베일런과의 1대1 강습을 제외한 수업시간에는 피데라교단인 피데라시스와 피데라의 역사를 배우고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들을 듣게 되었는데 몰려오는 졸음을 억지로 참아내야 했다. 그렇게 일주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한 문장 내지는 두 문장으로 이루어진 주문을 몇 십, 몇 백번을 외우고 외쳐야 만 했다. 식사시간이나 수업시간에 만날 때의 루네는 적응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어 보였지만 시테온은 로이딘보다 훨씬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는 주문을 외우기에 앞서 필수 단어인 피데라에 대한 이름을 외치고 예배를 드리는 데 슬슬 거부감이 생길 참이었다. 한 번은 짜증스럽게 포크를 내려놓더니 두 말하지도 않고 자기 방으로 들어 가버리는 시테온을 보고 로이딘은 걱정이 되었다. 로이딘은 남은 루네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테온이 괜찮나, 조금 걱정이 되는 걸?"
"아마 초반이라 그렇지. 슬슬 적응할 껄?"
루네가 시테온이 나간 입구를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허나 확신 없는 루네의 말에 로이딘은 더 동요 되었고 모든 일정을 마친 밤에 로이딘은 시테온의 방문을 두드려보았다.
"시테온? 시테온 안에 있어? 얼굴 좀 보러왔어"
대답이 없는 시테온의 방. 잠시 시간을 둔 로이딘은 다시 방문을 살며시 두드려 보았다. 그러자 벼락같은 목소리로 방 안에서 소리가 울렸다.
"아 좀 꺼지라고!"
로이딘은 순간 충격을 먹었고 시테온이 힘든 게 분명함을 알아차렸다. 그는 방문을 열어 젖혀볼까 하다가 용기가 나질 않아 생각을 정리하러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눈은 감았지만 의식은 생생히 살아있는 채로 여러 가지 생각에 생각이 물리는 밤을 보냈다. 다음 날이 되자 식사시간엔 시테온이 보이지 않다가 베일런과의 훈련시간에만 모습을 비추었다. 시테온이 먼저 훈련을 받고 나가자 베일런과 마주친 로이딘은 시테온의 상태를 이야기해주었다.
"시테온이 힘들어 하고 있어요. 예배와 주문으로 피데라에 대한 일방적인 숭배가 문제가 되는 것 같아요"
베일런이 그 말을 듣고 잠시 침묵했다. 옆에 있던 의자에 그가 살며시 앉으며 눈을 감고 말했다.
"시테온의 감정이 내가 황금 치유교에 그동안 헌신했을 때의 감정과 다르지 않을 거야. 시테온의 테오메자는 나의 피데라고 시테온의 피데라는 나에게는 물러스일테지."
로이딘은 신앙적 압력에 놓인 시테온을 구출하려 베일런에게 답을 구했다.
"그러면 어떡해야 하나요? 가서 말씀 좀 해주시는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내가 가게되면 일시적으로만 괜찮은 척 할거야."
"그럼 어떡하죠?"
베일런이 로이딘을 바라보다 시선을 돌려 하늘을 향했다. 로이딘도 그의 시선을 따라 하늘을 바라보았다.
수도원의 높은 종 탑을 한 바퀴 돌며 금강앵무새 세라가 날아오고 있었다.
"소중한 말 동무가 도움을 줄 수 있겠지. 내가 헤르논에서 그간 그래왔거든."
세라가 내려오자 베일런이 마치 사람에게 대하듯 로이딘에게 전해들은 시테온의 상황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그러자 세라가 놀랍게도 작은 머리를 끄덕이며 긍정의 답을 내놓았다.
"인간들은 나약하지만 세라가 옆에 있으면 이겨낼 수 있지."
"그래 세라. 네가 시테온의 방 창문으로 가서 그를 도와주렴."
베일런의 요구에 세라가 금새 다시 창공으로 날개짓을 했다. 이 광경을 본 로이딘은 루네와 만났을 때 그대로 이야기 해주니 동공이 커지며 신기해 하는 표정이었다.
"진짜?! 베일런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시테온도 괜찮아 질거야."
그날 밤. 시테온의 방 안은 정신이 반쯤 나간 자의 방처럼 더러웠다. 열이 받아 이리저리 찢긴 옷 하나가 널 부러져 있었고 책상 모서리는 살짝 금이 가 부수어져 있었다. 그리고 검은 핏자국이 묻어 있었는데 스트레스를 너무나 받아 강하게 내리친 모양이었다. 사방팔방 물건들이 나부껴져 있었다. 그는 고독히 침대에 앉아 사색에 잠겨 있었다. 그의 눈은 퀭했고 이마는 상처를 입었다. 아마 테오메자에 대한 기도를 올리면서 너무 힘을 주었나 보다. 창문에 푸다닥하며 무언가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멍한 그의 눈동자가 창문으로 향했다. 그는 테오메자의 계시로 착각한 모양인지 창 가로 힘 없이 걸어가보았다. 그러자 거기엔 익숙한 생명체가 앉아서 창문을 콕콕 쪼고 있었다. 나무창을 열어제낀 시테온에게 세라가 날아들어 그간 환기가 안되었던 방안을 새로운 공기로 채워 넣으며 덩달아 시테온도 정신을 갑자기 차리게 만들었다.
"안녕하신가! 고독의 현자여?"
날개짓에 놀란 시테온이 두 손을 휘저으며 격한 포옹을 하려는 세라를 밀쳐 냈다. 시테온이 책상에 자리잡은 세라에게 말했다.
"뭔 일이야? 세라. 오랜만이긴 하다만."
세라가 눈치껏 로이딘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고 베일런이 상태를 어림 진작 한 것처럼 파악해서 세라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러자 시테온은 놀라며 자신의 힘든 상황을 긍정했다.
"테오메자. 피데라. 테오메자. 피데라! 하루에도 누구를 향해 고개를 들고 내려야 하는지 미쳐버릴 것 같더군. 나는 빛의 신인지 뭔지 더 이상 역겨워서 주문을 외치기도 싫어! 세라"
세라가 그가 어떤 말을 하든 간에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비슷한 내용의 불만을 토로하는 시테온의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다 세라가 부리를 움직였다.
"역겹고 지겹고 테오메자보다 못한 약해 빠져버린 신 피데라의 소굴에 더 이상 있기도 싫고 머리가 아프다는 거잖아? 그래. 가만히 있어보자. 혹시 피데라시스들이 테오메자를 욕하거나 부정했었니?"
시테온이 세라의 물음에 뭔 말인지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그건 아냐"
"내가 여기 있으면서 피데라시스들은 다른 신을 부정하지 않는 모습을 계속 봐왔는 데, 너 여기 수도원을 전부 둘러보긴 했니?"
시테온은 또 그게 뭔 말인지 싶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세라가 다시 말을 했다.
"역사 수업때 졸았던거면 인정할게. 여기 전투 수도원은 다른 교단 출신이나 신자들도 기도 할 수 있게 끔 따로 마련된 만신전이 있어. 물론 여기가 피데라의 수도원이라 중앙 건물엔 피데라의 신전만이 자리했긴 하지만 여자 기숙사 근처에 성 아나트라가 다른 출신의 자매들을 위해 만든 건물이 또 있단 말야. 지금은 모두가 사용하고 있는 장소야."
시테온의 흐려진 눈동자에 생기가 돌아오는 듯 했다. 그의 마음이 또 다르게 동요했기 때문이다. 세라가 쐐기를 박았다.
"너 처럼 훈련과정에서 힘든 사람이 한 둘이 아니였다고. 온갖 불만과 논쟁, 신학적 딜레마등을 해결하기 위해 골머리를 써야했고 피데라시스들은 절대 기준을 지키는 한 다른 신을 피데라의 양면 혹은 다른 모습으로 파악하려고 할애했어."
세라가 말하는 절대 기준이란, 인간의 생명을 소중히 하고, 신의 피조물을 소중히 하는 성격의 신이라면 피데라의 다른 모습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마치 밖에서는 농부요 집 안에서는 아버지인것처럼.
시테온은 세라의 말을 뒤짚고 싶어도 뒤짚을 수 없었던 것이, 자신의 스승이었던 텝 오부자 중 한 사람도 비슷한 말을 했기 때문이다. 아나티리캄의 무당들인 텝 오부자들은 신의 형상에 대해 지혜를 공유하고 있었고 구전으로 그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왔다. 그 중 중요한 가르침 중 하나가 지금 세라가 말한 것과 일맥상통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무언가 응어리 진 걸 풀 모양인지 시테온이 세라와 신학적인 성격의 논쟁 내지는 의견을 주고 받았다. 세라는 마치 신학자처럼 막힘없이 이야기를 해주었고 심지어 다른 신들을 믿는 자들과 텝 오부자들의 특징들도 잘 알고 있었다. 시테온은 점차 의문을 푸는 과정에서 재미를 붙이는 과정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절대 기준? 우리 쪽에선 만물의 조화라고 불러. 내 스승님이 그때 피데라도 언급을 하셨지. 불로야와 아보도 마찬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테온은 새로 알게된 점이 있었다. 비교적 동부의 신들이 조화와 평화를 선호하는 이유는 과거의 대륙에서 벌어졌던 피비린내나는 전쟁이 유난히도 동쪽에서 심하게 일어난 결과였단 사실을.
"내가 인간이 아니라서 다행이지만, 인간은 자기와 동일한 사람들이 죽어나야 정신을 차리는 거 같아. 그리고 얼마 못 가서 그 지혜의 혈통이 끊겨버리지. 욕심 때문에!"
입이 만만치 않은 앵무새의 반박에 인간인 시테온이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 날 밤의 토론은 결코 설득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딜레마에 처한 한 인간을 앵무새가 완벽히 해결해 준 사례로 남을 것이다. 세라는 새벽 어느 시점에 날개를 슬슬 펼치며 날아가기 직 전에 자신이 똑똑한 이유에 대해 알려 주었다.
"너와 아주 똑같은 인간을 위로 해준 바 있어. 유일한 친구로 같이 지내며 나의 지식을 풍부히 해주기도 했지. 그게 누구? 피데라 사제이자 황금 치유교단의 베일런~"
그러고선 부리로 딱딱거리며 마지막 인사를 한 채 창문으로 빠져나갔다. 시테온은 검은 공기에서 가르는 날갯짓을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그의 표정은 이전과 다르게 굉장히 평화로워 보였다.
49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당신의 좋아요, 구독은 작가에게 창작의 에너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