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67화 / 7장 흐려지는 하늘
장편소설 빛의 여정 67화 / 7장 흐려지는 하늘
로이딘 일행은 말을 계속 달리며 길 따라 계곡 따라 동부 아나티리캄으로 향하고 있었다. 헤르논 국경 인근이라 그런지 왕래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상단들이 그들을 스쳐 지나갔는데 마차 3대와 무장한 사람들이 말을 타거나 걸으면서 짐꾼과 마부를 보호하며 지나가고 있었다. 마차에는 뭐가 실렸는지 힐끗 보고싶었지만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는 바람에 구경할 수 없었다. 무장한 이들은 로이딘 일행을 보며 경계하는 눈초리를 보이다 이 후 제 갈길들을 갔다. 로이딘 일행은 말을 타고 맞은 편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는 재미로 시간을 떼우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짐을 지고 지팡이를 들고 걸어가는 사람이 보였다. 행색을 보아하니 딱 순례자인듯 했고 그가 어느 신을 믿고 있는 지는 알 수 없었다. 그가 지나가 보이지 않는 무렵에 시테온이 제법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주었다. "숲길을 지나가는 저런 사람들이 혼자 아니면 극 소수로 돌아다닐 수 있는 이유가 있더라고"
로이딘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방금 저 사람, 순례하는 사람 아냐? 돌아다니는 이유?"
시테온이 말했다.
"돌아다니는 이유가 아니라 돌아다닐 수! 있는 이유 말이야. 베일런이 저번에 지팡이 관련해서 이야기를 해주었거든. 강도가 들이 닥쳐도 나무 지팡이만큼 효율적인 무기는 없다나? 길이가 길다보니 검이든 도끼든 다가올 수 없다 하더라고"
로이딘이 말했다.
"대신 다룰 줄 아느냐가 관건 아냐?"
시테온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오히려 무기를 다룰 줄 모르니 모두들 지팡이를 겸사겸사 쓰는거고 기니까 휘두르다 보면 쉽게 다가올 수 없게 하는거지"
헤르논의 경비대도 말을 타고 가면서 어디론가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으레 국경에서 볼 만한 소란스런 움직임랄까? 그리고 마침내 경비초소에 다다르게 되었는데 이곳을 통과해야 숲 속 한 가운데에 있는 일반 도로를 이용할 수 있었다. 서로 오고가는 상단들이나 순례자들도 많이 보였다. 초소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조용했고 주변의 나무들에서 새의 지저귐이 들려오고 있었다. 도착한 로이딘 일행에게 경비병은 쳐다만 볼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손짓으로 넘어가라 지시했다. 지은 죄도 없는 데 무언가 뜨끔했던 로이딘 일행은 이윽고 동부 아나티리캄에 발을 붙였다. 레도룬으로 가려면 이틀은 더 가야 했기 때문에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가면서 청설모인지 다람쥐인지 모를 작은 생물이 로이딘이 타고 있는 말 앞으로 쌩하고 가로 질렀다. 숲 속의 향기를 가득 느끼며 해가 저물 때까지 말들은 멈추지 않았다.
얼마 후 밤이 되어 도착한 여관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로이딘 일행은 옆 테이블에서 상인들끼리 주고받는 대화를 듣게 되었다.
"작.살. 그 누구지 반란군 대장 말야. 그.. 아 부로다치? 그 인간 죽고나서 마을들이 작살이 났다고"
듣고 있던 다른 상인이 답했다.
"나도 오는 길에서 다 타서 까매진 마을들도 보이더구만. 무서워서 살겠나 그래"
루네가 조용히 속삭였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모양인가 봐"
로이딘과 시테온은 서로 눈만 잠시 맞춘 채 조용히 수저를 들었다. 열심히 달려와 고된 루네와 시테온은 저녁을 먹고 바로 곯아 떨어졌다. 로이딘도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일까? 아니면 귀신이 흔드는 것일까? 그렇게 주문을 외우며 머리를 정리했다.
여관에서 나와 다음 날 오후까지 말의 호흡에 따라 걷고 달려오다가 전날 밤 상인들이 이야기 했던 광경이 무엇인지 대번에 알게 되었다. 루네가 먼저 숲을 빠져나오며 넓은 들판을 보게 되었는 데 연기가 아직도 올라가는 새까만 마을이 저 멀리 보였던 것이다. 눈이 커진 루네가 급히 로이딘과 시테온을 불렀고 그들도 그 광경을 지켜보게 되었다.
시테온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쓸고 간 모양인데"
루네가 미간을 찌뿌리며 답했다.
"누가 이 짓거리를 계속 하는 거야? 말한대로 아보 교단 걔네들?"
로이딘이 착잡한 표정으로 답해주었다.
"여긴 이단추적대의 본부가 있잖아. 추적대원들의 짓이거나 완장차고 돌아다니는 광신도들 짓이겠지"
루네가 문득 자신이 매고 있는 화살통을 앞쪽으로 돌려 고개를 내리며 안을 살펴보고 있었다.
"야잇. 그러면 우리도 작살내줘야 하는 거 아냐? 혹시 모르니 준비들 해"
시테온이 말했다.
"그건 그렇지만 아직 아냐 베일런이 말했던 걸 까먹은거야? 싸우지 않는다. 될 수 있으면"
로이딘이 정정해주었다.
"아니지 아니지. 무조건 생존을 말했어. 그래서 싸우지 말고 도망치거나 생존하라. 최후의 수단으로만 싸워라 몰라?"
루네는 아랑곳하지 않고 화살통을 다시 뒤로 돌려 매더니 마치 앞서가는 장군이 군사들에게 명령하는 것처럼 팔을 앞으로 휘둘러 손짓하며 달렸다.
점점 가까이 갈수록 파괴의 몰골이 보이기 시작했다. 간신히 건물의 틀만 유지한채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다타버린 집들은 불쾌하지만 따스한 온기와 함께 익숙한 탄 냄새가 느껴졌다. 타닥타닥하며 불씨가 보이다 꺼지기를 반복하는 기둥들, 하얗게 태워져 흩어지는 재들이 비가 내리듯이 바람따라 사르르 내려 앉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로이딘 일행은 마을 바깥 길로 자연스레 가게 되었는 데 약탈이나 타 죽은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자 시테온이 가다말고 "잠시만! 보고 올게"라고 외치더니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어느 민가에서 말을 끌고 살펴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오더니 로이딘과 루네에게 말해주었다.
"아니 코빼기도 안 보여. 불 지르고 도망친 건가? 아니면 모조리 잡아가고 불을 지른건가?"
말해주어봤자 로이딘과 루네도 알 턱이 없었기에 다시 다른 말이 걷는 속도대로 걸으며 합류했다.
이들은 아직 몰랐다. 동부의 아나티리캄 이단자들 대부분은 생매장으로 어떻게든 끌고 가 묻어 버리는 아보의 형제들의 방침을. 심문 할 자격이 있고 그 후 이단으로 판명이 된 자들만 화형대에 오를 자격이 있었다. 그들은 최근 신의 축복이라 여기는 이그네움 때문에 또한 영원한 추위 덕택에 불을 보다 소중하게 다루고 있었다. 화형을 한다는 것은 가뜩이나 없는 땔깜에 불을 소모하여 형을 집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구경하는 대중을 상대로 귀족이나 널리 알려질만 한 인물만을 대상으로 했다. 그외의 사람들은 자연 정령인 아보께 환원하여 땅을 정화한다는 이유로 묻어버리고 있었다. 그러한 환경이 안된다면 그제서야 창칼로 주민들을 쓰러 뜨리고 있었다.
68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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