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연인

광주고등학교 교가 작곡

by 이순미
이원정 교감 광주고등학교 교가 작곡, 1968.11.01.

아버지는 광주동중 교가도 함께 작곡했을 것이다. 하지만 광주 동중은 1972년 1월 14일 제17회 최종 졸업식을 끝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아버지의 연인 이봉선, 광주, 1958~1960.

1927년 경북 경산 태생. 일제 당시 정신대를 피해 일찍 결혼했으나 자녀를 생산하지 못하고 친정으로 돌아왔다. 우연한 기회에 전남 광주 요정에서 잠시 일했다. 친정으로 돌아와 친정언니 과수원에서 몇 년 일하다 다시 광주에 갔다. 광주에서 아버지를 만남.

아버지는 당시 유부남이자 교회 찬양대 지휘자였는데, 아내가 성당에 다니는 것이 못마땅해서였을까?

이봉선은 아내 손태희보다 화통하고 매력적이었을까? 손태희는 TJ유형이었다. 홀어머니의 무남독녀 외동딸이고 기본적 신뢰와 소통능력이 빈약한 TJ유형이었으리라 본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차돌 같은 성격이 불만이었을지도 모른다. 목사며느리였던 아내가 성당에 나가기 시작한 것도 불만이었을 것 같다.

지금까지 나는 아버지가 바람둥이여서 이혼에 이르게 되었다고만 생각했는데,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두 사람의 종교적 갈등도 이혼의 한 원인이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의 잦은 출산에 낙태하라고 종용한 아버지. 아버지 말 듣고 낙태 후 아버지에 대해 크게 실망하고 낙태에 대한 죄책감을 천주교 고해성사로 해결한 어머니. 천주교로 개종한 며느리가 못마땅한 할머니. 입장 차이가 얽히고설켜 부부의 결혼생활이 파탄에 이르게 된 것 아닐까? 어머니는 내가 태어나고 부부사이가 나빠졌다고 내가 스무 살 무렵에 말했다. 나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 아기였던 내가 부모의 이혼을 책임져야 하지?




아버지 이원정, 연인 이봉선, 이봉선의 동생 대구여고생 이매자, 1958~1959.

이봉선은 레이스천 저고리에 속이 비치는 치마를 입었다. 금브로치와 반지도 특별하다. 아버지의 분위기와 옷차림 또한 예사롭지 않다.



아버지와 연인 이봉선, 목포, 1959.

1959년 어머니와 이혼 후 연인과 목포 할아버지 묘에 인사한 후 바다 유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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